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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27. 2018

김상곤 교육부 장관님, 현장으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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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교육부장관님, 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18년째 교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교육 적폐 청산과 새로운 교육 시스템 마련을 위해 주야로 크게 애쓰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작금 우리나라 학교의 일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핵심 교육 주체 중 하나인 교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어보셨는지요. 그 이야기들을 아주 조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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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은 저는 31명의 학생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2학년과 3학년 각각 5개 학급의 학생 300여 명을 매주 만나면서 주당 15시간 수업을 했습니다. 중고교 교사에게 15시간 수업은 매우 예외적입니다. 대개는 20시간 안팎을 담당합니다.

수업은 2학년 10시간, 3학년 5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22명으로 이루어진 동아리반 교육 1시간, 34명이 신청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 1시간을 보태 모두 17시간의 수업 시수를 담당했습니다.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만, 제가 만난 300명의 학생 모두는 각자의 고유한 삶과 세계관을 가진 소중한 개인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색깔에 맞게 저에게 올바른 교육적 대우를 받으면서 우리 사회의 온전한 시민이 되기 위해 변화하고 성장해야 하는, 남의 집 귀한 자녀들입니다.     


부끄럽게도 그들 각자를 그렇게 대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학년 초부터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 학생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제 게으름 탓이 크겠지만 조회 시간 10분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짧았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주고받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머리와 가슴에 깊은 사색과 성찰이,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정제된 언어가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학생이 너무 바쁘고, 지나치게 주눅이 든 채 살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학생들이 그렇게 된 원인의 많은 측면이 우리 사회와 어른들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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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의 문제가 학생들에게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맡은 반에 단골로 지각을 하는 학생이 몇 명 있었습니다. 교실에 느지막이 들어설 때 한두 마디라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려고 했습니다. 모두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하기 어려웠습니다. 교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그날 해야 할 수업을 위해 교과서와 활동 자료들을 미치 챙겨보고, 그 사이 업무나 학교 일(행사, 프로그램) 등으로 이런저런 회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과 차분하게 한두 마디 이야기 나누는 일조차 버거워지곤 했습니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면 내부 통신망을 통해 들어온 메시지가 수개씩 쏟아집니다. 간단한 일정 통지부터 업무 처리 알림까지 다종다양한 수준의 업무 내용을 담은 메시지들이 눈을 어지럽혔습니다. 이제 오십에 이른 나이 탓일까요. 요 몇 년 전부터는 아침이나 오전에 통계 보고 같은 단순한 공문 처리 하나만 하고 나도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곤 했습니다.     


장관께서는 알고 계시는지요. 교육부와 교육청을 통해 단위 학교에 도달하는 공문이 1년 기준으로 2만여 건에 가깝습니다. 교장 근무 평정이나 교원성과급 등급 산정과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권장(이라 말하지만 의무로 통용되는) 연수 시간 60시간이나 80시간을 이수해야 하는 일이 교사들에게는 무시 못할 한 해 살림살이입니다. 지금 교사들은 이런 말을 자조적으로 주고 받습니다. 공문을 처리하고, 인터넷으로 원격 연수를 듣는 사이사이 수업을 해치운다고요.     


장관님, 저는 교사들이 온종일 컴퓨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보고하는 일이 교육(수업)이 아닌 것과 관련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사들이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교육 전문가로서 자신의 능력과 경륜이 쌓여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교사가 수업을 잘 못해도 크게 문제삼지 않지만 그가 업무를 제때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면 무능하고 불성실한 교사로 낙인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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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거대한 침묵의 공간입니다. 신뢰에 기반한 협력 관계가 단절된 교무실은 그 어떤 일에도 묵묵하게 처신하고 매뉴얼과 관행에 따라 제 할 일만 하는 교사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벌떡 교사’의 목소리는 허공을 잠시 맴돌다 사라집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의 교무실과 교실에는 19세기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근대학교의 시계 소리가 여전히 울려퍼집니다. 규율과 질서의 미덕이 과잉 유포되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 하나쯤은 기꺼이 소외되거나 희생될 수 있다는 식의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학부모가 학생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는 교사가 훌륭하다고 평가합니다. 저는 이런 분위기가 정말 두렵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일들입니다. 장관께서는 현행 국가교육과정의 핵심 성격 중 하나가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자주인, 창의인, 교양인, 민주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위해 여유와 배려와 신뢰가 넘치는 학교문화와, 학생과 교사가 학교에서 제 삶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게 하는 참여와 숙의 기반의 학교 민주주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문화와 시스템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학교 자율을 이야기하고, 교육 권한 배분과 이양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학교 현장은 조용합니다. 교사들은 마치 자율보다 구속과 통제를 더 원한다는 듯 교육청과 교육부를 향해 더 정확하고 세세한 지침과 요령과 매뉴얼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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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직 입직 초기부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가입하여 활동해 왔습니다. 틈 날 때마다 정부 당국의 교육정책과 교육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새 정책과 제도가 나오면 부정적으로 보기 바빴고, 문제나 한계를 찾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반대와 부정과 비판을 들무새 삼아 살아온 제 교직 삶의 마냥 성공적이었다거나 행복했다고 단언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반대하고 부정하고 비판하면서도, 저는 무시로 바뀌는 국가교육과정에 착실히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없이 서명을 하고, 조퇴 연가 투쟁을 하면서 몸부림을 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교원평가에 임하고 성과급 평정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전교조 교사인 제가 그랬으니 절대 다수의 비전교조 교사들 역시 더 두 말 할 나위가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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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는 그간 우리나라 45만 명의 교원들이 정부가 펼쳐 내놓은 정책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수행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부가 수준별교육과정을 강조하자 앞다퉈 수준별 수업을 했습니다. 교과교실제로 학생 선택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전국 곳곳의 학교가 교과교실제 정책을 받아들였습니다. 수업 혁신과 교육 혁신이 시대의 화두가 되자 너도나도 혁신의 전도사인 양 책상 배치를 바꾸고, 수업 중 활동 프로그램을 손보고 실천했습니다.     


자율학교와 혁신학교 지정을 받아 학교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양육과 돌봄을 아쉬워하자 기꺼이 그 목소리에 부응했습니다. 시대 흐름과 사회 변화에 따른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있는 시간 쪼개고 없는 시간 짜내어 안전교육과 인성교육과 진로교육과 인권교육과 통일교육과 독도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정부가 논술을 강조하면 논술을 힘주어 가르쳤고, 누군가 영어의 중요성을 말하자 영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가 상급학교 입시에 중요하다면서 내실 있는 운영을 당부하자 제자들을 위해 한 문장 한 글자라도 더 써 주기 위해 애면글면 네이스 화면을 쏘아보면서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학생 상담을 통한 힐링이 중요하다고 해서 연수와 스터디와 세미나와 강연을 다니면서 기법을 익히려고 애썼습니다. 학교폭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자 수업 사이사이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보살피려고 동분서주했습니다. 급식실 식사 예절과 온라인 언어 예절까지 학교와 교사가 책임지라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교사들은 점심 시간에 급식 당번을 정해 식사 지도를 하고, 카톡방에 들어가 학생들을 상대로 에스엔에스 소통 교육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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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나라 교육이 놀라운 성취와 성공을 거뒀을까요. 저는 속시원하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를 포함한 대다수 교사들은 정부 정책과 제도를 전면 거부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45만 명이나 되는 거대 직업 집단에 속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징징대는 목소리를 내놓는 것이 조금 민망합니다. 더구나 우리 교사들은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그 전문성과 자주성을 확실하게 보장해주고 있는 교육 분야 종사자들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한 가지는 꼭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가을이었지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장관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를 추진할 때 전국 방방곡곡의 현장 교사 목소리를 들어주실 것을 힘주어 말씀드렸습니다. 장관께서는 제 이야기를 들으며 꼼꼼히 메모를 하셨지요. 그런데 과문한 탓이겠지만 교육부가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별로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관님, 지금 45만 명의 교원들 중에 우리 교육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교사가 있을까요. 단언하건대 한 명도 없으리라 봅니다. 저는 장관님이 구상하고 추진하는 교육 시스템의 개변과 혁신에 현장 교사들만한 우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으로 오십시오. 와서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1700만 개 촛불의 힘으로 이룬 촛불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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