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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30. 2018

전교조 학술연구모임 학교학회에서 집단연구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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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보이드는 명저 <서양교육사>에서 18세기 유럽 교육이 “활발한 사변과 무기력의 대조”라는 17세기적인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그만 마을 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종류 여하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교육기관이 쇠퇴와 타락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국 교육을 200년 전의 유럽과 비교하기는 무리이겠습니다. 전국적으로 1000여곳을 넘는 혁신학교가 10년 역사를 바라보면서 다종다양한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이전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혁신적인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학교와 수업을 혁신하려는 교육 시스템 안팎의 요구와 의지와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동시다발적으로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여느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육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의 논리에 따라 작동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교육 분야만큼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의 각축이 비교적 건강하게 이루어지는 곳도 별로 없다고 봅니다. 보이드가 “이것은 분명 암담한 그림”이라고 탄식한 18세기 유럽 교육에 비해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는 한국 교육은 절망보다 희망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기에 더 합당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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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희망과 가능성을 노래하는 이들의 장막 뒤에서 탄식하고 절망하는 이들을 봅니다. 학교 혁신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일선 교사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려옵니다. 학교와 교실의 배움에서 도망치는 아이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 사회를 배우고 그에 물들어 갑니다.


교육정책과 교육제도 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더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초‧중등학교 교장, 교감, 교사와 대학 교수 12만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국내 최대 교원단체는 교장제도의 극히 일부분을 원상회복하려는(?) 정부를 향해 ‘대정부 투쟁’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 제도의 강력한 지배자가 바로 그들 자신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기득권은, 그것을 보장하는 정책과 제도를 쉽게 놓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태를 낙관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강한 의지로 무장한 혁신주의자 교사들과 열정이 가득한 이상주의자 교육운동가들이 그들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리라 믿습니다. 시대착오적인 반동이 어느 때고 불시에 찾아올 수 있으나, 아직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 조류의 거대한 흐름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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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회’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는 첫 번째 집단 연구 작업을 제안합니다. 이 연구 과제를 통해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조그마한 힘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의 현재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나아가고 싶은 미래를 구상하는 데 디딤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집단 연구 작업의 과제 이름을 ‘학교 문화와 언어’로 정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조회’라는 말을 씁니다. 100년 전 일제 강점 치하의 학교에서는 조회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조회라는 이름으로 연상되는 교실 풍경은 시대와 학교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학교의 조회를 묘사하는 것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학교 경영 목표’니 ‘추구하는 인간상’이니 ‘급훈’이니 하는 것들로 학교 문화의 일단과 당대의 교육철학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며칠 전 30년 전에 졸업한 고등학교의 졸업앨범을 펼쳐보았습니다. 교장실 사진 한켠에 박힌 ‘추구하는 인간상’ 첫 자리가 “반공 방첩 정신에 투철한 애국인”으로 채워져 있더군요.


놀랍게도 그 바로 다음 자리에 요즈음의 ‘자기주도적인 학생’을 연상시키는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공부하는 학습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 언명과 실제 사이의 (틀림없을) 괴리에도 불구하고 묘한 상상이 일었습니다. 교련복 단체사진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군사독재 시절에 학교가 왜 ‘주체적인 학습인’을 요구했을까요.


우리가 집단 연구 과제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무척 다양합니다. ‘교무회의’의 통시태와 공시태를 살펴 학교 회의 문화와 의사결정 시스템을 더 치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과서’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만들어온 교육 활동의 색깔을 가늠해 보고, 시대별로 서로 다른 냄새를 풍겼을 ‘수업’을 보면서 학교교육의 큰 흐름을 간추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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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회의 집단 연구 작업을 다음과 같이 진행했으면 합니다


(가) 각자 다루고 싶은 소재를 선택한다.
(나) 연구(집필) 목적과 방향, 방법 들을 구상한다.
(다) (가)~(나)를 바탕으로 온라인 토론을 거쳐 전체 연구 개요를 마련한다.
(라) (다)를 바탕으로 연구 초고를 준비한 뒤 추후(여름방학 예정) 있을 오프라인 세미나를 진행한다.


학교학회의 집단 연구에 함께해 주십시오. 댓글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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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내 현장 조합원들이 주도하는 학술 연구 모임입니다. 협력과 연대에 기반한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학교와 교육의 안팎, 학생과 교사의 모든 것에 관한 연구와 글쓰기, 저작 활동에 관심 있는 전교조 조합원과 초‧중‧고교 교사 모두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전교조 직접민주주의 플래폼 ‘빠띠’(https://eduhope.parti.xyz)와 페이스북에서 ‘학교학회’를 검색해 가입하시면 됩니다. 더 궁금한 내용 있으시면 제게 문의하시면 됩니다.(010-7540-074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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