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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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마’는 미국의 유명 부인과 의사 로버트 디킨슨 박사가 조각가 아브람 벨스키와 합작해 탄생시킨 조각 작품이다. 1만 5000명에 이르는 미국 젊은 여성들에게서 수집한 신체 치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전형적인 미국 여성상이라고 한다.
1945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지역신문에서 노르마와 신체 치수가 근접한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를 열었다. 대회 결과 극장 출납원으로 일하는 마사 스키드모어라는 이름의 늘씬한 흑갈색 머리 백인 여성이 우승자로 결정됐다고 한다.
특기할 사실은 9개 심사 항목의 신체 치수 중 5개 항목에 한정한 경우에서도 평균치에 든 여성 수가 3864명 중 40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체 9개 항목에서 평균치에 가까운 여성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에서 평균 체격의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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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활동을 하면서 ‘평균’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 교사가 있을까. 나 역시 교사로서 말썽꾸러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내 안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평균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 녀석은 또래들이 보이는 정상적 경로를 벗어나 있군. 평균에 못 미쳐.’ 그때 나는 (나도 확신하기 힘든) 학생들의 정상적인(?) 발달 경로를 절대시하면서 평균주의자가 되어 있는 나를 본다.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 미국 하버드대학교 개개인학 연구소장은 평균주의가 개개인성의 등한시라는 개념을 중심 지침으로 채택한다고 주장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 말썽꾸러기 학생을 평가할 때 그가 갖고 있는 상대적으로 탁월한 측면, 예컨대 뛰어난 임기응변력과 유창한 언어 구사 능력, 적극적 태도 들을 자주 무시한다. 그리고 그가 여러 측면에서 들쭉날쭉하게 갖고 있는 특성이나 능력을 간과하면서 ‘시험 점수’라는 일률적인 잣대로 그를 판정한다.
로즈 소장은 평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빗대 ‘평균의 은밀한 독재’라고 표현했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평균적인 학생 성적과 비교하여 점수와 등급을 매긴다. 입사 지원자들은 자질과 경력과 인성 점수가 지원자 전체의 평균 점수와 비교된다. 평균 점수와 상대 비교에 따른 신용 점수가 우리의 재정적 기회를 좌우하기도 한다. 평균은 거의 일평생 동안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그런데 로즈 소장은 평균적 인간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평균적 얼굴이나 평균적 신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년 동안 신경과학계 연구의 지침이 돼온 평균적 뇌 식의 가정은 틀렸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반직관적 전제를 강하게 주장한다.
“평균적 인간을 바탕으로 삼아 설계된 시스템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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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소장에 따르면 평균주의자들은 ‘종합 후 분석’을 주된 연구 방법으로 쓴다. 여러 사람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뒤 그 그룹의 패턴을 살펴보고, 그다음 이 그룹 패턴(평균이나 통계치)을 활용해 개개인을 분석하고 모형화한다. 반면 개개인의 과학은 ‘분석 후 종합’을 중시한다. 개개인별 패턴을 취합해 종합적 통찰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개개인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역동적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른바 개개인학(science of the individual)이다.
개개인학은 평균을 개개인의 이해를 위한 주요 도구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 로즈 소장은 개개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평균이 아니라 개개인 자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 등 주요 3원칙이 적용된다.
들쭉날쭉의 원칙은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 거의 모두 다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보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선수들을 가장 높은 득점 평균의 조합으로 구성한 미국 뉴욕 닉스 팀이 4시즌 내내 최하위권에서 헤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로즈 소장에 의하면 선수들의 다차원적 농구 재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팀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최강의 득점 평균만을 고려해 이루어진 닉스 팀 선수들은 농구 경기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5가지(득점, 리바운드, 공 가로채기, 어시스트, 블로킹) 중 4가지가 없는 채로 경기를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들은 각자 자신의 득점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된 바람에 제대로 된 공격도 펼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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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의 원칙과 경로의 원칙은 인간에 관한 특성론(유형화)과, 이 특성론을 뒷받침하는 본질주의 사고(essentialist thinking)와 관련된다. 특정한 성격 유형에 따라 사람의 특성이나 정체성을 알 수 있다고 보는 사고 방식이 본질주의다. 로즈 소장은 이러한 본질주의 사고가 유형화의 결과이자 원인이라고 본다.
유형화는 우리가 누군가의 성격 특성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을 특정 유형으로 분류해도 된다고 여기고, 이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결론지을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다. 그런데 본질주의 사고가 인간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개인성의 원칙인 맥락의 원칙이나 경로의 원칙을 철저하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맥락의 원칙은 어떤 사람의 행동이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성은 없다거나, 맥락과 분리시킨 성품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라는 로즈 소장의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다음과 같은 변형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판단해 보라.
셀레스트 키드라는 뇌인지학자가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을 변형해 실시했다. 한 그룹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는 ‘신뢰할 만한’ 상황 속에 놓이게 하고, 또 다른 그룹의 아이들은, 예컨대 미술 프로그램 중에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어른이 새로운 화구 세트를 가져와서 부러지고 닳은 크레용을 바꿔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잠시 후에 빈손으로 돌아오는 식의 ‘신뢰하기 힘든’ 상황 속에 놓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신뢰 상황군에서는 3분의 2에 가까운 아이들이 최대한도인 15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는 기존 마시멜로 실험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신뢰하기 힘든 상황군의 아이들 절반은 어른이 나가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끝까지 참은 아이는 1명뿐이었다. 마시멜로 실험이 대중적으로는 자제력이나 인내력이 본질적 특성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맥락적임을 보여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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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의 원칙은 다음 두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 똑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둘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경로의 원칙과 관련하여 내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대목이 “빠를수록 더 똑똑하다는 거짓말”이었다. 교육 분야에는 ‘더 빠른 것=더 훌륭한 것’이라는 가정이 널리 퍼져 있는데, 그 장본인이 에드워드 손다이크였다. 손다이크는 20세기 초반의 산업 표준화를 상징하는 테일러주의를 학교교육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용한, 교육심리학과 교육심리측정학 분야의 주창자였다.
손다이크는 영재와 구제 불능아를 구분하여 우등생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학교의 목표는 모든 학생을 똑같은 수준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타고난 재능 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었다.
로즈 소장은, 교육 역사상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이 교육이 학생의 실력을 변화시키는 데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으며, 우등생과 열등생을 구분하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고 믿은 사실을 지적하며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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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등급제(forced ranking)나 등급 매겨 내쫓기(rank and yank)와 거의 유사한 ‘스택 랭킹’(stack ranking; 해마다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해 하위 10퍼센트를 해고하는 제도. 평가 점수에 따라 직원들을 층을 쌓듯이 서열화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임)으로 악명이 높았던 마이크로 소프트 사는 스택 랭킹에 의존했던 시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스택 랭킹의 밑바탕에는 평균주의 개념이 깔려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 사가 평균주의 철학에 기반한 스택 랭킹을 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가 비대하고 요식적인 집단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기존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며 억압하는 관리자들에게 도리어 보상을 하는 의도치 않은 사내 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등급화가 개개인에 대한 효율적 평가 방식이자, 한 가지 일에 특출하거나 유능한 사람이 대부분의 일에서 특출하거나 유능하다고 본다. 중·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들이 능력 있는 학생이라고 보는 식이다. 로즈 소장은 이 책에서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관점을 근본에서 뒤틀어버린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교육자라면 일독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