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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21. 2018

그 시기는 여름을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15회 전교조전북지부 참교육실천 한마당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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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 참교육실천 한마당(참실 한마당)에 다녀왔다. 전교조 조합원 교사를 중심으로 일반 교사, 교‧사대 예비교사, 학부모, 학생 등 연인원 330명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알찬 시간을 보냈다.     


전교조 전북지부 참교육실(실장 이윤미)은 이번 참실 한마당을 크게 바꾼 틀 속에서 진행하였다. 행사 시기를 4월로 바꾸었다. 작년까지는 바쁜 학년말이나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에 진행했다. 당연히(?) 참여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번 행사에서는 또 전교조 전국 참실 형식을 원용하여 주제마당과 교과‧급별마당을 분리하여 일정을 잡았다.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전체 강연 형식으로 진행한 개막식도 기조를 바꾸었다. 학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교육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예비교사팀 노래 공연과 중학생 뮤지컬 공연, 2030세대 교사들의 개그 특집 꼭지 들이 개막식 특유의 딱딱하고 근엄한 풍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학교 선생님들의 절실한 고민을 유쾌하게 그린, ‘김총각’ 선생님과 ‘김부끄’ 선생님이 등장한 2030 교사 개그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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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실 한마당에는 모두 43개의 마당이 개설되었다. 나는 오전에 개설된 22개의 주제마당 중 하나인 ‘학교학회’와, 오후에 개설된 21개의 교과마당 중 하나인 ‘중등국어’ 분과에 참여했다.     


학교학회 마당에는 선생님 13명이 오셨다. 전교조 조합원 1인 분회 학교에서 생활인으로서의 노동자 의식을 놓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전교조에 가입한 뒤 꿋꿋이(?) 지내고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 주변 선배 전교조 교사의 지지와 응원과 조언 등에 힘입어 함께 오신, 같은 초등학교 소속의 젊은 남녀 선생님, 올해 처음 학년부장을 맡으면서 지난날 자신을 돌아보며 여러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선생님 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른바 ‘황금학년’인 3학년을 맡고 계신 선생님은 교육과정과 학교 민주화에 관심을 두면서 고군분투하고 계신다고 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2년째 맡고 계신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하다가 ‘토요일에 출근 안 하시냐’는 질문을 받으셨다. 우리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교 3학년 담임 교사의 야만적인(?) 일상을 놓고 한참 동안 대화했다.     


전교조 조합원 경력 17년차인 한 선생님은 선배 교사로서의 배움의 자세를 강조하셨다. 후배들의 질문과 그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교직 9년차로, 첫 부장 일을 맡게 된 선생님은 동학년 교사들과 협의하면서 수업을 꾸려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하셨다. 후배 교사들을 챙기면서 자신만의 ‘터닝 포인트’를 맞아보고 싶었는데, 그것이 잘 안 되더라는 말씀에 크게 공감하였다.     


한 연구소에 소속해 있으면서 연구년을 보내고 계신 선생님은 교원업무와 관련한 정책과 제도를 깊이 살펴보고 싶다고 했다. 학교 방문 일정을 잡아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열정과 의지가 느껴졌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교사들이 부럽다고 하신 또 다른 선생님은, 조금씩이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밀당하는 장면이 꿈에 정기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 선생님에게서 이미 어떤 색깔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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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회 대표 발제는 하늘빛 전주 신동초등학교 선생님과 문병현 전주 중앙여자고등학교 선생님께서 해주셨다. 하 선생님은 실제 교직경력 5년차 미만의 교사에게 집중되는 임상장학의 문제와 지역 교대 출신 교사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만들어가는 파행적인 학교 문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교대 양성과정의 한계나 문제점에 관한 이야기도 심도 있게 나누었다.      


하 선생님을 비롯해 몇몇 선생님이 임상장학을 고경력 교사가 먼저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나눔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로가 교실 수업 문을 열기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거부하는 분위기의 심각성을 떠올릴 때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나는 우리 교사들, 특히 선배 교사들이 “학교의 폭력은 낮은 곳으로 향한다”라는 하 선생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교에서 선배 교사와 후배 교사가 갑을‧주종관계처럼 엮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 내 위계 서열이나 수직적인 문화 들의 영향 탓이 크다. “우리 때는 더했어”라는 선배 교사들의 피해의식(?) 역시 강력하게 작동한다.     


선‧후배 교사 간 관계는, 때로 멘토와 멘티가 그런 것처럼 이끌고 이끌리는 관계 구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 같다. 교‧사대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교대 양성과정에서 거의 접해보지 못한 학교 시스템 안으로 내던져진 신규 저경력 교사에게 선배 교사의 지원과 격려와 조언은 분명 필요하고, 실제로 유효하게 작동하는 면이 있다.      


다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교사 간 관계가 경력의 다과와 선‧후배 관계와 직위의 상하를 넘어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동료 관계의 망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육 전문가로서의 직업 윤리나 직업 의식을 각자 더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도 있다.     


교대 양성과정의 문제와 관련한 대화에서 내가 가장 ‘쇼킹’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떠돌던 임용시험 ‘족보’가 2018년 현재에도 여전히 인기리에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교대 4학년 학생들에게 족보를 보여주자 “어머 좋아요. 그거 저 주세요.”라며 반색했다는 이야기가 지금 우리나라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시험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형식적인 수업 지도안 구안과 그에 따른 정형화한 수업을 고민하는 예비교사들에 대한 성토(?)도 있었다. 틀에 박힌 수업 모형이나, 이를 원용한 수업 지도안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그것을 절대화하면서 형식화의 길을 걷기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수업이 모형이나 기법이나 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혁신학년을 운영하던 한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상투적인 수업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때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실습을 나온 교대 4학년 학생에게 다양한 수업 방식을 고민해 실천할 것을 제안했을 때 그가 이를 단칼에 거부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예비교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 단호한 철학을 만들어낸 시스템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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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현 선생님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지내는 선생님들의 일상과 교실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발제문을 준비해 오셨다. 하 선생님 발제와 토론이 길게 이어지면서 문 선생님의 발제는 짤막하게 이어졌다. 그 짧은 시간의 발제가, 내게 여러모로 충격적이었고 인상적이었다. 문 선생님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시를 빼버리면 남는 게 무엇일까요?”     


문 선생님은, (남아서) 눈에 보이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14년 동안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오롯이 떠올랐다. 깊은 침묵의 정적만이 흐르는, 서로 고립된 섬이 둥둥 떠 있는 듯한 교무실은 마치 철옹성 같은 교과의 벽에 가로막혀 소통이 멈춰버린 황무지 같았다.     


나는 고등학교 교무실과 교실을 지배하는 그런 황량한 분위기가 속물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욕망에 충실한 우리는 할 말이 많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진지함’에 대해 말씀하신 문 선생님의 의견에 큰 인상을 받았다.      


문 선생님은 교사들 사이가 진지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문 선생님의 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교육의 근본 정신이나 철학 같은 진지한 대화 주제가 사라진 자리를 대입 성적, 공정한 평가 방법 따위가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교사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 사이가 뜨거워지는 때는 업무 문제로 갈등이나 대립이 생길 때뿐이다.     


이미 다양한 색깔을 가진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다. 대학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학생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 대학을 안 가고 곧장 사회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교육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들은 학교와 교사를 무능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고교 교사들은 대입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다. 유능한 교사는 대입에 얼마나 능통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것이 진정한 능력일까. 함께한 많은 선생님이 문 선생님의 이런 문제제기가 묵직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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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교조 참교육 실천대회의 기본 정신을 ‘교육 연대와 공유와 협력’에서 찾고 싶다. 10년역사를 자랑하는 전국적인 혁신학교 시스템의 정립과 최근의 교사연구공동체 문화의 점진적 확산이 교사들의 교육 연대와 공유와 협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번 참실대회가 그런 기반을 더 탄탄히 다지면서 참여한 교사들에게 귀한 자극을 준 장이 되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오늘 학교학회 참여자들은 예비교사들과의 연대와 공유와 협력을 다짐했다. 그 시기는 여름을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교직에 들어서는 교‧사대출신 예비교사들을 만나 연고주의와 형식주의와 대입전체주의(?)에 포박되어 굴러가는 학교와 교실의 생생한 민낯을 전하면서 함께 힘을 합쳐 나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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