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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4. 2018

부끄러움은 당신들의 몫이어야 한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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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사법 농단 수사팀이 최근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고용부) 장관과 정현옥 전 차관을 소환하여 조사했다고 한다. 이들은 고용부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팩스 한 장으로 법외노조를 통보할 당시 장‧차관 노릇을 한 사람이었다. 검찰 조사에서 두 사람은 당시 청와대에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문제점을 정리한 보고서와 편지까지 보냈지만 묵살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만시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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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한 2013년 10월 24은 ‘공안검사’의 대명사 김기춘이 74살의 나이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취임한 지 채 3개월이 되지 않은 때였다. 


우리는 그가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아든 뒤 비서실 직원들 앞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강철 같은 의지로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보위하라”라는 수령형 훈시를 늘어놓으면서 그 유명한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常食)화”라는 평소 지론(!)을 밝힐 때부터 이미 차가운 공안 정국을 예견하였는지 모른다.     


국정원의 선거 여론조작 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린 박근혜 정권의 목표와 의중이 그러하였다. 서늘한 전조가 있었다. 


그 해 여름 대통령 박근혜는 1972년 대통령 별장 청해대로 지정된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작은 섬 저도 백사장에서 막대기로 “옛 생각을 더듬으며”, “저도의 추억”을 쓰는 사진을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때 그가 쓴 ‘옛 생각’과 ‘추억’에서 서정적인 정서를 떠올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피비린내 나는 정치 테러를 직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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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완전한 정치적 ‘공작’ 차원에서 진행되었다고 믿는다. 국가최고정보기관인 국정원의 댓글 공작 탄로로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위해를 입은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들의 단단한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 전교조였다.    

 

이런 판단은, 고도의 정치적 감각이나 날카로운 정세 분석력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정치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풀어야 할 문제여야 했다.     


불행하게도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는 그렇게 펼쳐지지 않았다. 범정권 차원의 법외노조 공작이 본격화한 이후,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의 불법적 측면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가 전교조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법레기’들의 궤변이 나왔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해소하는 일, 곧 노조 활동을 하다 해직당한 조합원을 조합이 끝까지 끌어안는 것을 포기하는 일을 당연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는 (전교조와 달리) ‘합법의 틀 안에서 교원노조 활동을 하겠다’며 새 노조 깃발을 올리기도 했다. 정권이 내심 기대했을 법한 ‘분리 전술’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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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법률적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궁지에 몰린 정권이 자행한 정치적 탄압이었다. 실무 장관의 보고를 묵살하면서까지 강행한 전교조 법외노조 공작은 힘을 가진 최고 권력기관들의 음험한 뒷거래가 아니라면 결코 상상하거나 실행할 수 없는 비겁한 정치 테러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법적 해결’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2015년 6월 양승태 치하의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처분 집행정지 파기 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사실상 박탈한 사실, 대법원이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언급한 사실, 법외노조 소송 과정에서 고용부가 제출한 재항고 이유서를 대법원 직속의 법원행정처가 대필한 사실 등 총체적인 사법 농단을, 지금 정부는 철저히 묵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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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정치적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전교조에 대한 왜곡과 무지에 의한 맹신 때문일까. 그 어느 것이든 나는 부끄러움이 당신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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