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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26. 2018

나는 교사가 1인 연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1


교사직에 들어서기 전 어느 연구원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주로 배우면서, 수박 겉 핥기 식이나마 서지학과 한문학을 수강하였다. 전공이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다양한 논문과 책을 챙겨 읽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여러 텍스트에 대한 요약문과 발제문을 준비하여 발표하면서 글을 보는 안목과 쓰는 감각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천성이 노둔하여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교직에 들어서자 학위 과정을 거치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대학원에 둔 적을 없애지 않고 계속 공부하였다. 때로 미친 듯이 논문 쓰기에 빠져드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빼어난 학문적 성과를 담은 논문을 써내지는 못했으나 전공 분야인 한국어문학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았다.


2


나는 교사가 남이 쓴 책과 글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자기 연찬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책이, 저자의 다채로운 경험과 폭넓은 사유와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면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과 사유의 수준에 따라 교사가 경험하는 성장의 질이 달라진다. 그런데 교사 성장에 좀 더 결정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성찰이라고 본다.


성찰은 메타적인 활동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있다. 나를 중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좀 더 높은 곳의 나를 떠올려 보라. 또 다른 나와 좀 더 높은 곳의 나는 나의 사고와 생각을 사고하고 생각한다.


나는 박사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경험한 책 읽기와 글 쓰기가 그러한 성찰의 묘미를 은연중에 안겨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본격적인 학문 연구자는 아니었지만, 교사가 스스로 주제와 목적을 정해 연구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3


유감스럽게도 학교 현장은 교사의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듯하다. 교사의 연구 역량은 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는 데 꼭 있어야 하는 자질로 간주되지 않는다. 대다수 교사는 학생 생활지도에 탁월하고, 수업만 매끄럽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교사들은 '학술'이나 '연구'를 어려워하거나, 되도록이면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학술과 연구 영역은 대학 교수나 전문적인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학술과 연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교사들의 모습을,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통해 방증할 수 있다고 본다. 많은 교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주어진 수업 시간을 적당히 채우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육행정 시스템의 말단 관리자 정도에서 찾는다. 우리 모두, 특히 학생들에게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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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적인 사고 능력으로서의 성찰은 그저 생겨나지 않는다. 학습이 되었든 연구가 되었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 궁리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유지할 때 조금씩 자리잡을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가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교사가 기본적으로 각자 1인 연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Professional Learning Community)'는 나중의 일이다. 아니, 교사 각자가 고도의 성찰 능력으로 무장한 1인 연구자가 될 때 교사들의 공동체는 학교 안팎의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전문적 연구 공동체(Professional Studying Community)'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교사 집단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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