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2018), <촛불 민중혁명사: 현직 기자의 광장 기록>,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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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중혁명사>(도서출판 말, 2018년 7월 17일)를 읽었다. “현직 기자의 광장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저자인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이른바 ‘촛불혁명’과, 그 출발점이 된 사건들 간의 인과적 연결고리들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책에는 박근혜 정권 출범 직후인 2013년 2월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 선고를 내려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2017년 3월 10일까지 전국 각지의 광장에서 펼쳐진 민중과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원경과 근경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저자가 핍진하면서도 건조하게 지난 4년여를 훑은 결과에 따르면 1700만 광화문 촛불의 시발점은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였다. 전남 보성에서 올라온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바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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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는 추천사에서 “원희복 기자는 ‘기레기’라는 시대적 고발 앞에서 새삼 기자의 초심과 소명, 그리고 신원의식을 깊이 되새기며 고백하고 있”다고 썼다. 또한 평범한 민중과 시민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울 때 “책임 있는 정당 대표와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대선 불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조작된 여론에 스스로 저항을 포기하고 국민들의 기본권 수호를 방치한 것을 기록했”다고 극찬하였다.
나는 아예 사실을 전달하지 않거나,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여 전달하며,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고, 권력에 아첨하고 굴종하는 ‘기레기’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준엄하게 견지해야 할 언론 철학과 기자 정신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지성적 관찰과 기록의 본보기라고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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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쪽(부록으로 실린 자료집 포함 438쪽)에 이르는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1장이었다. 제목이 “프롤로그‧전염의 공포”다. 공포의 시발점에 2013년 2월 25일 공식 출범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문제, 곧 국가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대통령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치명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나는 정통성 문제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가 2013년 7월 29일 여름휴가를 떠난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작은 섬 저도에서 “옛 생각을 더듬으며”, “저도의 추억” 등의 제목을 담아 에스엔에스(페이스북)에 올린 몇 장의 사진을 잊지 못한다. 그는 ‘옛 생각’과 ‘추억’을 생각하며 ‘반전카드’로 김기춘을 내놓았다. 공포의 출발이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취임 22일 만인 8월 28일 새벽 통합진보당 전‧현직 당직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작하였다. 이석기 의원 발 통합진보당 사태의 출발이었다.
두 달여 후인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이라는 내용이 담긴 법외노조 통보 처분서를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 팩스로 전송하였다. 1999년 합법화 이후 14년 동안 법내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하던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전락하였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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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과 전교조를 탄압할 때 쓴 핵심 무기가 ‘공포’였다. 박근혜는 부친 박정희의 미화에 방해가 되는 모든 세력을 분리하여 제거하기 위하여 증오와 혐오의 전략을 썼다. 곧 ‘종북몰이’라는 이름의 광품이 세상을 휩쓸었다.
“이 관제테러와 종북몰이에 야당을 비롯한 정치‧사회의 견제와 자정 기능은 맥없이 무너졌다.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면 종북으로 매도됐다. 이른바 ‘불신 종북’이다. 야당은 ‘나는 종북 아니다’라는 자기결백에 매달리고 자기 검열에 급급했다. 진보정당과 보수야당의 연대는 무너지고 진보정당은 내분까지 일어났다. 시민사회단체도 오해가 두려워 선긋기에 급급했다. 진보를 자처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학자나 비평가 역시 오히려 자기결백의 기회로 삼거나 아예 침묵했다. 지성의 사회적 성찰과 비판의 샘은 말라갔다.”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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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개인 블로그에 써 올린 여러 글들에서 독일의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프리드리히 마르틴 니묄러(1892~1984)가 쓴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시를 자주 인용하였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 나는 방관했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29쪽)
차별과 억압의 시스템에 눌려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신음이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시나브로 사위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대입제도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고, 박근혜 정권에 맞선 투쟁의 선봉에 섰던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다.
촛불혁명은 끝났는가. 연대와 협력이 서 푼짜리 공정성과 경쟁에 밀려 나가는 세상이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2016년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계승 "2016 전국노동자대회" 및 "제6차 총궐기대회"가 열린 서울광장 사진이다. 이날 대회에는 역대 모든 시위 기록을 경신한, 사상 최대의 100만 명이 모였다. 나는 전교조 동료 조합원 교사들과 함께 이날 행사에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