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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11. 2018

1억 달러짜리 실험: 미국 뉴어크 공교육 개혁

데일 루사코프의 <프라이즈(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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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루사코프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쓴 <프라이즈(Prize)>에는 두 개의 부제가 달려 있다. 영문판 부제는 “누가 미국교육을 쥐고 흔드는가”, 한국어판 부제는 “교육이 미래라고 믿는 당신에게”이다. 교육 생태계를 둘러싼 정치 동학의 영향력을 상상하게 하는 문장들이다. 교육은 정치이므로 그것을 “쥐고 흔드”는 핵심 세력이 존재한다. 교육은 미래가(미래뿐) 아니라 현재의 삶을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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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코프 기자는 이 책에서 2010년 9월 24일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가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시에 교육개혁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으로 1억 달러(1200억 원)를 투입한 뒤 5년 동안 벌어진 일을 낱낱이 기록하였다. 정치, 교육, 사회정책 분야에서 기량을 닦은 베테랑 기자답게 사안의 표면과 이면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안목이 두루 돋보인다.      


책 전체는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는 2009년 12월부터 뉴어크에 새 시장이 등장하면서 프로젝트를 둘러싼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는 2014년 5월까지 뉴어크 교육 생태계에서 발생한 주요 국면을 따라 순차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단순한 연대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등장인물이 명멸하는 역동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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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거금으로 시작된 이 놀라운 프로젝트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더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코리 부커 뉴어크 시장. 더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속한 정당이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둘을 하나로 묶은 주제는 형편없이 추락한 뉴어크 시를 위한 ‘공교육 개혁’이었다. 

    

그런데 내게 ‘공교육 개혁’이라는 공통 주제는 그들이 대외 과시용으로 내세운 허울 좋은 명분처럼 보인다. 그들은 공교육 개혁보다 (전국적인 유명 인사나 더 큰 권력자가 되는 것과 같은) 정치적 야심이 더 컸던 것 같다. 저자의 기본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젝트가 삐그덕거리고 지역 여론이 악화했을 때 개혁의 설계자이자 선봉장을 자임했던 이들은 각자 갈 길을 가기에 더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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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기금이 한시적으로 투입된 ‘공교육 개혁’ 프로젝트에 대하여 사람들이 당연히 떠올릴 법한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져 보자. 프로젝트 ‘실험’은 성공했는가. 저자의 펜은 직설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나는 실패 쪽에 가까운 내용(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은 미뤄 두자. 누군가에게 실패는 다른 누군가에 성공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을 더 자주 보여 준다고 보고 싶다.     

 

실패(처럼 보이는) 요인의 핵심이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일까. 나는 저자가 책 곳곳과 ‘후기’에 남긴 몇몇 대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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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주커버그의 돈이 현장에 투입되면서 ‘실험’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4년 동안 이른바 “교육개혁가들은 뉴어크 주민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청중은 늘 다른 어딘가에 있었다”(334쪽). 저자는 책에서 크리스티 주지사와 부커 시장이 불러들인 사람들이 모두 뉴어크(또는 뉴저지) 바깥에서 왔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둘째, 교육 개혁은 교육 외적인 정치 문제와 교육적인 과제가 함께 움직일 때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돈과 권한을 쥔 권력자들이 주도하는 외부 힘에 의한 충격 요법은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변화”(334쪽)를 가져올 뿐이다. 그것은 개혁의 궁극적인 수혜자이자 목표 대상이어야 할 ‘아이들’과 ‘교실’을 위기에 빠뜨린다.     


“교육개혁에 관한 전국적인 대화에서 진짜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중심에 두자는 것이다. 교육개혁을 둘러싼 이념적인 대립 때문에 정작 아이들은 뒤로 내팽개쳐져 있다 교육개혁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의미이다.” (346쪽)   

  

셋째, 개혁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넓고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주커버그와 크리스티와 부커 등 뉴어크 ‘실험’의 주인공들은 교사들과의 새로운 계약 체결, 새로 도입한 엄격한 수준의 교사 평가와 훈련 시스템, 시 전체적인 학교선택권 확대 정책 들을 도입하였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 향상도를 기준으로 삼아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서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커의 뒤를 이은 라스 바라카 뉴어크 시장은 2015년 12월 지역사회 학교 구상을 승인하였다. 이 구상은, 예의 실험을 총괄한 뉴어크미래재단이 강조한 “교사 책무성 강화, 차터스쿨 확장, 교육청 경영개혁 같은 전국적인 교육개혁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것들을 반영한 의제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심장한 신호탄”(351쪽)이었다. 그것은 학업 성과 정책뿐 아니라 (지역의) 사회적 조건이 학교 실패의 핵심에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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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유성상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이 책의 주제가 “‘교육개혁의 길’을 따져 묻는다기보다는, ‘교육개혁을 둘러싼 정치지형과 교육개혁의 정치역학’을 보여준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교육계 내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차원의 문제가 소용돌이치는 곳이 교육 생태계다. 이 책이 교육을 위한 정치, 정치를 위한 교육의 영감과 통찰을 전해줄 것이다.  


   

* 《프라이즈(Prize)》(데일 로사코프 씀 ․ 유성상 옮김 | 박영 스토리 | 2017.4.3. | 378쪽 |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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