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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10. 2019

154명의 조그만 이정표

학년 교과 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펴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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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교과 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낸다. 3학년 5개 학급별로 학생들이 매일 1명씩 돌려 가며 쓴 ‘날적이’ 글들과, 국어 수업 시간에 진행한 ‘책 깊이 읽고 서평 쓰기’ 활동을 하며 쓴 서평 글들을 함께 묶었다. 편집본으로 200쪽이 넘었으니, 최근 몇 년 새 나온 문집 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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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명의 날적이 공동 ‘저자’들은 부지런히 글을 썼다. 내 기억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자신이 날적이 공책 쓰는 순번이 되기를 기다리는 학생이 많았던 적이 없었다. 올해는 나날의 삶과 생각을 충실하게 묘사한 학생도 특별히 많았다. 두 쪽, 세 쪽을 훌쩍 넘긴 글이 반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많이 나왔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우여곡절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3반에서 쓰던 날적이 공책이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그 전에도 공책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생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찾곤 했다. 혹시나 몰라 이번에는 학급별로 책임 도우미를 정해 날적이 공책을 간수하게 하였다. 공책이 없어진 것을 알고 교실과 교무실과 집을 몇 번이나 뒤졌는지 모른다. 허탕이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쓸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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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깊이 읽기 서평을 읽는 맛을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  학생들이 쓴 짧고 긴 서평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책 읽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지난날에 대한 ‘고해 성사’가 담겨 있었다. 내 인생의 책, 멘토가 된 저자, 친구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 들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학생들의 부끄럽지만 용기 있는 고백담을 읽으며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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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적이 쓰기와 책 깊이 읽고 서평 쓰기 활동의 취지가 ‘경청’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날적이 공책을 받아 든 학생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앞 친구가 쓴 글에서 제목이나 주제로 삼을 단어나 구절을 고르는 일이다. 그러려면 친구의 글을 탐독해야 한다. 눈으로 하는 ‘경청’이다.      


책을 깊이 읽고 서평을 쓰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책에 담긴 저자의 목소리나 인물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면 책의 됨됨이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나는 학생들이 저자의 목소리와 인물의 말을 ‘경청’하면서 내 목소리와 말을 내세우는 일이 함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진실’을 조금이라도 깨달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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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문집 제작 과정에서 가장 힘든 원고 입력 작업을 여러 학생과 함께하였다. 학급별로 두세 명씩 자원과 추천을 받았다. 1반에서 박00과 유00과 이00, 2반에서 이00과 임00과 임00과 정00, 3반에서 김00과 이00, 4반에서 김00과 박00과 정00과 최00, 5반에서 이00과 주00이 함께하였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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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 공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모르지 않지만, 대표적인 공교육 기관인 학교보다 더 시민적 지성과 감성을 깊이 단련할 수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시민교육의 첫 자리에 놓일 수 있는 것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보다 더 중요한 교육을 알지 못한다. 이 조그만 책이 앞으로 이 땅 시민으로 살아갈 154명의 삶에 조그만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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