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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25. 2019

돈과 욕망으로 굴러가는 어느 학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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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산고 문제가 이슈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부끄럽다. 상산고는 우리나라 헌법에 따른 공교육 철학을 정면으로 위배한 ‘괴물’ 학교다. 다양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달고 출범했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철저한 입시 교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자사고에 어떤 철학이나 정신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주로 돈과 욕망으로 차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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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우리는 지금 지역 인재를 넘어 국가의 동량을 키우고 있다고, 양심과 지성과 능력을 두루 겸비한 탁월한 능력자들을 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훌륭한 교사진과 잘 짜인 커리큘럼에 따라 그 일들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렇게 멋진 교육을 통해 키운다는 학생들의 역량이나 태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당신들의 이른바 ‘상산 교육’을 통해 기르는 역량과 태도가 정녕 그런 기여에 합당한 측면을 갖고 있는가.     


교육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교육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시험을 치러 학생들을 뜨겁게 경쟁시키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거나 활동에 참여하고, 사회의 질서와 규칙을 내면화하기 위해 훈육하는 일들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사람이 되는 일이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로서의 교육의 본질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과다나, 교육자들이 이들 문제를 놓고 목청 높여 외치는 주장의 선후와 주종이 서로 뒤바뀔 때 교육이 더는 교육이 아닌 것이 된다고 믿는다. 


사람이 되는 일보다 경쟁하는 일의 비중이 더 클 때 배운 괴물들이 만들어진다. 사람답게 되는 일보다 지식 습득과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될 때 학생은 영혼을 잃은 전문가 기계가 된다.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기계적인 징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는 학교에서 사유하지 않는 착한 범죄자들이 나온다.     


3     


상산고, 나아가 자사고 문제는 교육의 기회 균등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와 얽혀 있다. 우리는 교육의 기회 균등을, 어느 누구든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회 균등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기회 ‘독점’이 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 ‘박탈’이 될 수 있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교육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암적 해석이다.     


영국 철학자 리처드 스탠리 피터스는 《윤리학과 교육》에서 평등의 정당화 문제를 논하면서 교육의 기회 균등에 관한 주장을 보다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기회 균등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받는 사람이 교육의 기회와 관련 없는 조건(예컨대 재산)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전주 상산고 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이해한다. 상산고는 한 해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낼 수 있어야 입학할 수 있는 학교다. 학업 능력이 있더라도, 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감당할 경제력이 없으면 입학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 포기자들을 위해 사회적 배려자 전형을 실시할 만한데, 상산고는 그들을 우대하는 전형을 자신들의 ‘재량’에 따라 거부했다. 성적 좋은 부자집 자식들만 받겠다는 뜻 말고 달리 어떤 뜻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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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경제력이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교육의 기회 균등을 침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 최소한의 상식론과 정의론이 통용되는 국가와 정치 체제라면 그러한 요소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구동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며, 정치가 정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기실 상산고는 사설 입시학원이 아니라 공교육 기관이다. 사설학원이라면 철저하게 ‘돈의 논리’에 따라 교육의 기회 균등 문제를 처리한다. 돈이 있으면 등록하여 공부하고, 돈이 없으면 입맛만 다시면 된다. 상산고는 명색이 공교육 기관인 학교이므로 달라야 한다. 돈이 있으면 학교에 등록하여 공부할 수 있다. 돈이 없는 학생은? 입맛만 다시는 것을 볼 게 아니라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공교육 기관으로서 학교가 기꺼이 떠안아야 할 공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산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상산고 입시 전형에서 사회통합전형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며 전북교육청의 재지정 심사 결과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돈 있는 사람만 받아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하등 부끄러움이나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함을 보여주는 처사다. 그들의 그런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배운 괴물들과 영혼을 잃은 전문가 기계와 무사유의 착한 범죄자들을 만들어 내는 일등공신이다.     



* 제목 커버 사진은 <연합뉴스>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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