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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26. 2019

죽은 교사의 사회, 산 교사의 사회

교사 집단 연구 모임 학교학회 2019 집담회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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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6월 2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조합원 교사가 중심이 된 교사 집단 연구 모임인 학교학회 집담회를 다녀왔다. 지난 4월 집담회가 선생님들의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유예된 뒤 두 달여만에 가진 자리였다.


전국에서 선생님 여덟 분이 자리에 모이셨다. 광주 배이상헌 선생님, 전남 지항수 선생님, 부산 박동수 선생님, 대전 강정숙 선생님과 김현희 선생님, 강원 배희철 선생님과 안상태 선생님 들이시다. 우리는 전교조 대전지부 소회의실에서 총 6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밥 한 끼를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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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 집담회에서 안상태 선생님이 제안한, 어떤 ‘사업’이나 ‘실천 활동’이나 ‘연구 작업’으로 구체화하고 확대될 만한 아이디어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업과 실천 활동과 연구 활동을 한 문장 안에 병기한 것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아이디어의 복합적인 성격 때문이다.


안 선생님이 제안한 아이디어의 골자는 이렇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대학의 자율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라고 기술돼 있다. 그런데 각종 교육 관계 법령에서 강제하는 교육 관련 조항들 중에는 이 조항의 교육의 자주성이나 전문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처음 안 선생님이 예시한 법률은 <인성교육진흥법>이었다. 안 선생님은 이 법률에서 반헌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조항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헌법 소원을 제기해 보자고 했다.


우리는 그 일의 가능성, 성과, 의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 교사 집단 안에 미칠 영향이나 환기 지점 들을 놓고 논의했다. 쉽지 않고,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구에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를 그 일은, 일정한 목표와 계획과 성과를 전제로 하므로 ‘사업’이고, 참여 교사들 개인과 상호간 소통과 교류와 공유 행동을 필요로 하므로 ‘실천 활동’이며, 사안의 성격상 법률적 쟁점과 이에 따른 관련 선행 연구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므로 ‘연구 작업’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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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2015년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을 핵심 표적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우리나라 학교(모든 초중고교와 유치원, 재외국민 대상 한국학교 포함) 내 인성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을 보면 교육부장관이 ‘인성교육종합계획’(아래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게 해 놓았다. 이때 교육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고, 교육부차관·문화체육관광부차관·보건복지부차관·여성가족부차관·국회의장 추천 3인·인성교육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등으로 구성된 ‘인성교육진흥위원회’에서 심의하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 교육의 핵심 주체인 교사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교사의 교육활동 전반이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볼 때, 인성교육의 8대 마음가짐(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니 사람됨과 관련된 핵심 가치나 덕목이니 하는 것들을 따로 선정하여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하게 하는 것이 과연 교육의 자주성이나 전문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겠느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인성교육진흥법>이 <헌법>에서 규정한 교육의 전문성이나 자주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에 동의하고, 안 선생님이 제안한 헌법 소원 제기 활동을 실시해 보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전교조 본부를 중심으로 관련 전문가에게 법률적 자문과 의견을 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구체적으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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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회 집담회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지난 월요일 전교조 법률실에 전화를 걸었다. 집담회에서 진행한 논의들의 자초지종을 문제의식, 취지, 향후 계획 들과 함께 개괄적으로 말씀드리고 의견을 여쭈었다. 나름 의미 있는 답변을 들었다. 우리가 정한 표적이 법률적 문제제기의 대상으로 충분해 보이며, 교사 집단 안팎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고 했다.


법률실에서는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 구체적인 문건 형태로 보내 주면 사안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하고 세세하게 의견을 준다고 했다. 나는 지금 요며칠간 찾은 관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문건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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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실천하거나 탐구하거나 연구하는 활동은 ‘심각하고 진지한’ 일들이다. 심각하거나 진지하다고 해서 ‘재미’나 ‘흥미’가 떨어진다고 지레 오해하거나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느 누가 행군하는 개미 군단을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관찰하는, 길섶에 쪼그려 앉은 아이 머리에 재미나 흥미가 차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의 대상(현상)에 눈길과 관심을 주기 시작할 때 본격적인 실천 활동과 연구 작업을 시작한다. 실천가나 연구자는 그 대상에 최대한 밀착하고, 그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를 사랑한다. 이와 동시에 실천과 연구 활동은, 실천가나 연구자가 대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것을 차분하게 관조고 숙고하는 과정에서 더 오래 유지되고 깊어진다. 요컨대 우리가 실천과 연구 활동의 지속성과 깊이를 확보하려면 최대한 대상이나 현상 가까이 가서 관찰하되 그것들을 멀찍이서 냉철하게 살필 줄 아는 역설의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지난 주말 학교학회 집담회에 모인 8명의 선생님뿐 아니라 온라인 소통방에서 함께하고 있는 28명의 교사와 교육자들이 ‘심각하고 진지한’ 실천과 연구 활동에서 ‘재미’를 느낄 줄 아는 길섶 아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학교를 사랑하고 교육에 그윽한 눈길을 주는 동시에 학교와 교육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공간에서 학교와 교육을 조감할 줄 아는 역설의 지혜를 실천하는 교육자들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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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이 한 사회의 지성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이자, 진리와 정의를 지키는 최후 보루나 성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류 문명과 역사의 태동 이래 시궁창 같은 현실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민족이나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난 민족이나 국가는 어김없이 교육에 자신들의 명운을 걸었다.


그러므로 교육의 핵심 주체인 교사의 교육 활동 여하가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교사의 역할이 그 누구보다 강조되고 확대되어야 하며, 그 어느 때보다 새로워져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죽은 교사의 사회는 죽은 사회를 만든다. 말단 교육 관료의 정체성을 가진 교사가 주체인 교육과, 교육자나 실천가나 전문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교사가 주체로 움직이는 교육의 색깔은 다를 것이다. 전자는 죽은 사회를, 후자는 산 사회를 만든다. 우리나라 교사가 교육 행정 시스템의 말단 관료로서보다 교육자, 실천가, 전문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더 많이 갖추었으면 좋겠다.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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