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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06. 2019

학교 민원 공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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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2학기에 광주광역시 소재 효천중학교 도덕 교사인 배이상헌 선생님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도덕》 교과서 ‘성윤리’ 단원 수업을 했습니다. 국가교육과정에 따르면 중학교 ‘성윤리’ 단원은 ‘성과 사랑의 의미’, ‘성윤리’, ‘이성교제’ 등을 내용 요소로 하는 단원으로, 《도덕》(1, 2) 교과서 전체 23개 중단원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배이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성교육 영상물인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시청하게 하고, 성윤리와 관련한 설명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학생이 ‘불편한 감정’을 느낀 대목이 있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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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접수됩니다. 이를 통보 받은 광주광역시교육청(광주교육청)이 1학년 대상 전수 설문조사(6월 26일), 2·3학년 대상 전수 설문조사(7월 8일)를 실시합니다. 이틀 뒤인 7월 10일 교장이 배이 선생님에게 수업배제 지시를 내리면서 ‘성비위’ 혐의자로서 수사기관 수사 의뢰 예정 사실을 통보합니다. 배이 선생님이 그 이유들을 묻자 학교장은 ‘모른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7월 15일, 배이 선생님은 학교교권보호위원회(학교교권위, 위원장 이영주 변호사)에 자신의 교권 ‘침해자’를,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교원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 특별법 시행령》) 제7조 제1항, 제2항에 근거 민원 처리 절차를 지키지 않은 ‘광주교육청 성인식 개선팀’으로 명기한 학교교권위 개최 요청서를 보냅니다. 7월 17일에는 학교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학교성고충위) 준비 일환으로 성고충상담원이 배이 선생님을 상대로 1시간 30분 동안 소명 과정을 거칩니다.     


7월 19일에 학교교권위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학교교권위는 광주교육청의 일련의 행정 조치에 대하여 배이 선생님에 대한 교권 침해 정황이 충분히 인정된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시교권침해위원회(시교권위)를 열 것을 요청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광주교육청에서는 현재까지 이번 사안이 시교권위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인지 여부를 놓고 자문을 받고 있다는 답변만을 내놓으면서 시교권위 개최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7월 25일, 학교성고충위가 개최되어 이번 사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음” 결정을 냅니다. 그런데 광주서부교육지원청에서는 그 전날(7월 24일) 배이 선생님에게 직위해제 통보서를 보냅니다. 학교성고충위에서 성 관련 비위 사건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직위해제를 내린 것입니다. 7월 9일 광주교육청에서 학교에 보낸 “00중학교 사안조사 결과 조치사항”에 따르면 행위교원(배이 선생님)에 대하여 학교성고충위를 개최하여 심의, 의결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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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육청에서 배이 선생님에 대하여 학교성고충위의 심의, 의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직위해제를 한 것은 수사기관 수사의뢰와, 이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3 제1항 제6호(“성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위행위로 인하여 감사원 및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자로서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자”)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광주교육청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과정을 추론해 보면, 일방적인 민원 내용에 근거하여 배이 선생님이 남녀 중학생들에게 ‘성적 학대’를 한 것을 ‘사실’로 규정한 뒤, 이것이 《아동복지법》을 위반했으므로 수사 대상이기 때문에 수사 의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광주교육청은 당사자인 배이 선생님에게 관련 사실들에 대해 소명을 하게 하거나, 교육부 매뉴얼상의 절차에 따라 학교 내에서 소정의 과정을 거친 뒤 성 비위 여부에 대한 판단 결과를 받아 보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교육청은 시종일관 배이 선생님을 교육부 매뉴얼에 따라 직위해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안의 실무를 담당하는 광주교육청 성인식개선팀 담당자들은 ‘우리는 교육부 매뉴얼에 따라 했을 뿐이다.’는 내용 취지의 표현을 되풀이해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육부 매뉴얼에서 ‘가해 교직원’에게 직위해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곳은 한 군데뿐입니다. 학교성고충위 심의(사안 처리 흐름도상 제4단계) 결과 교직원에게 내릴 수 있는 조치의 종류 중 하나로 직위해제를 명기해 놓은 대목입니다. 따라서 매뉴얼에 따라 직위해제를 했다는 광주교육청의 말은 거짓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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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개괄적으로 설명한 사건 경과에 따른 교육청 조치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교육부 매뉴얼에 따르면 학교 성 관련 사안 해결의 총지휘자는 학교장입니다.(교육부 매뉴얼 21쪽 참조) 그런데 이번 사안에서는 광주교육청이 최초 민원 접수 기관이라는 이유로 관련 교원인 배이 선생님을 상대로 한 소명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성비위자’로 규정한 뒤 수사기관 수사 의뢰를 하고, 이를 근거로 일방적으로 직위해제 조치 결정을 내리는 등 사안 해결의 ‘총지휘자’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이는 광주교육청이 단순히 교육부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넘어 학교장의 성 관련 사안 해결 지휘권을 침해하는 등의 직권남용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나) 광주교육청은 배이 선생님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안 전개 초기 배이 선생님이 학교장으로부터 교육청이 공문을 통해 내린 수업배제 조치 통보를 받은 뒤 광주교육청 성인식개선팀 실무 담당자(장학사)에게 소명 절차 부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담당자는 “성인식 개선팀은 피해자를 위한 조직이므로 교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라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다) 《교원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 특별법 시행령》 제7조 제1항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원에 대한 민원, 진정 등을 조사하는 경우에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당해 교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인사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법 동조 제2항, 제3항에 의하면 민원이나 진정을 조사하는 경우 당해 교원의 수업활동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이를 전혀 따르지 않았습니다.     


(라) 《교원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 특별법 시행령》상의 관련 조항이나 교육부 매뉴얼상의 성 관련 사안 처리 절차에 굳이 기대지 않더라도, 민원을 통해 교원의 성 관련 비위 사실을 인지한 교육행정기관이 취해야 할 태도의 핵심은 일체의 추단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구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광주교육청에서는 당사자 교원에게 최소한의 소명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학교성고충위 결정을 받아 보기도 전에 수업배제와 수사기관 수사 의뢰, 직위해제 조치를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민원인이 제기한 민원 내용의 진실성은 모든 당사자의 세세한 소명과 철저한 주변 조사 과정을 거친 뒤 제반 관련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바탕 위에서 내려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라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억울함을 느끼는 교사가 나오지 않도록 더욱 더 ‘진실’을 확인하는 데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적 책임을 맡은 교육행정기관의 정의로운 행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광주교육청은 최소한의 상식적인 절차도 지키지 않은 채 민원 내용을 ‘진실’로 전제한 뒤 평생 학생자치와 학생생활교육과 학생인권교육과 성평등교육에 매진하고 헌신해 온 교사를 ‘성적 파렴치범’으로 모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마) 광주교육청에서는 배이 선생님이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대내외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피해학생의 ‘2차 가해’를 우려하면서 자제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학교성고충위에서 만장일치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음” 결정을 내린 것에 비춰 볼 때 모순적입니다. 2차 가해는 최초 사안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임을 전제로 할 때 성립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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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배이 선생님에게 난데없이 불어닥친 ‘태풍’의 진원은 학생들과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접촉이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체 학년 학급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수업 중에 일부 학생에게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주었을 만한 수업 자료나 교사의 수업 중 설명 맥락 등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안을 평범한 상식인의 관점에 기대 판단하면 성 비위 관점에서가 아니라 수업장학의 차원에서 접근해 해결했어야 할 사안으로 보는 것이 온당합니다. 그런데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보장해 주어야 할 교육행정기관인 광주교육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중학교 국어 교사로서 저 자신을 “제2의 배이상헌”이라고 규정합니다. 나처럼 생각하는 전국의 ‘김이박최정 선생님’들이 적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들은 지금 배이 선생님이 감당하고 있는 모진 태풍이 그에게만 닥친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수업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전문가는커녕 언제든지 민원의 날카로운 화살촉을 두려워하면서  “교과서 저자의 앞잡이”처럼 살아야 하는 하찮은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수업 혁신이니 교과 재구성이니 전문적 학습 공동체니 하는 말이 창백하고 모멸스럽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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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이 선생님이 겪고 있는 일을 교사의 교육권과 교육 전문성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습니다. 법률적으로(!) 교육은 전문성의 영역에 속합니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합니다.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나 교원의 전문성과 신분은 법적으로 보장됩니다. <헌법> 제31조 제6항(일부)에서는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원의 전문성과 신분(<교육기본법> 제14조 제1항: “학교교육에서 교원(敎員)의 전문성은 존중되며,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는 우대되고 그 신분은 보장된다.”), 교권(<교육공무원법> 제43조 제1항: “교권은 존중되어야 하며, 교원은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은 법률에 의해 존중되고 보호 받아야 합니다. 정부(통계청)가 관리하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서는 교사가 ‘교육 전문가’이며 교직이 ‘전문직종’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한 《한국직업사전》에서도 교직은 전문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여름의 ‘민원 공포극’에서는 교육권과 교사의 자율성, 전문성을 규정한 이 모든 법률적, 행정적 근거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교사들이 스스로 “제2, 제3의 배이상헌”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수업을 하는 한 전문성에 기반한 교사의 자율적인 교육활동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사안을 전해 들은 한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과서를 달달달 읽어 가며 수업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가 교과서 바깥의 이야기를 무서워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그 선생님이 한 말이 결코 지나친 엄살이나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제목 커버 사진은 교육 평론가 노영필 철학 박사가 <전남일보>(8월 5일 자) '교육의 창'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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