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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17. 2019

싸움의 전선

1


광주 배이상헌 선생님이 겪고 있는 일의 시말은 단순하다.


2


중학교 <도덕> 교과과정에 따라 성윤리 단원 수업을 했다(2018학년도 2학기). 학생(학부모)이 수업 중 교사의 설명과 영상 자료가 ‘불쾌감’을 주었다며 국무총리실에서 관리하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6월 25일). 교육청이 학교 1학년 대상 전수 설문조사(6월 26일), 2, 3학년 대상 전수 설문조사(7월 8일)를 실시하였다.


이 두 차례의 설문조사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의문이 있다. 두 설문조사 사이의 시차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통상 학교 설문조사는 사실 누설이나 왜곡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학년을 대상으로 동시에 실시하기 때문이다. 민원 내용이 1~3학년 전체 학생 대상의 수업과 관련되었다면 1~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실시하는 것이 맞다.


여기에서 두 번째 의문이 나온다. 1학년 설문조사 이후 2, 3학년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최초 민원 제기 내용상의 해당 학년이 1학년이었을 가능성, 그런데 1학년 설문조사 결과 특별한 혐의점이 없어 2, 3학년으로 추가 확대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명백한 ‘표적 살인’ 행위에 해당한다.


3


민원 접수 사실을 통보 받은 광주시교육청(광주교육청)이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교장을 통해 교사 수업 배제 지시를 내리고, 수사기관 수사 의뢰를 한다는 내용의 통지를 한다(7월 10일). 이후 광주교육청은 수사 의뢰 사실을 근거로 직위해제 조치를 강행했다(7월 24일). 그 과정에서 배이 선생님은 교육청 소명 절차를 전혀 보장받지 못했다.


배이 선생님은 학교교권보호위원회(학교교권위)와 학교성희롱성고충심의위원회(학교성고충위)에 회의 개최 요청을 했다(7월 15일). 학교교권위는 교권 침해 정황이 충분히 인정된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시교권침해위원회(시교권위)를 열 것을 요청하기로 결정한다(7월 19일). 그런데 시교권위는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학교성고충위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음” 결정을 내렸다(7월 25일). 그러나 광주교육청은 7월 9일 자로 학교에 보낸 “00중학교 사안조사 결과 조치사항”상의 “행위교원(글쓴이-배이 선생님)에 대하여 학교성고충위를 개최하여 심의, 의결하”라는 내용을 무시한 채 학교성고충위의 결정을 듣지도 않고 그 바로 전날인 7월 24일에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4


나는 “배이상헌 교사 사태”를 ‘스쿨미투’ 차원에서 이해하고 규정하려는 관점에 반대한다. 이번 사태는, 국가교육과정과 교과교육과정에 따라 충실하게 성윤리 수업을 실시한 한 도덕 교사를, 그가 민원 대상이 되었다는 이유로 ‘성비위자’로 지레 낙인을 찍고 일사천리로 수업배제와 직위해제 조치를 강행한 광주교육청의 ‘행정 폭력’과 ‘교육권 침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배이 선생님과 공식 대응 모임에서 학생들이 수업 중에 느꼈을 ‘불편함’을 무시하거나, 학생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그 어떤 위협적이고 위력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관되게 교육청이 무리하게 밀어부친 민원 처리 방식, 구체적으로 민원 처리 시 해당 교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교원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시행령>상의 조항을 지키지 않은 점, 교육부 매뉴얼상의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점 들을 지적하며 교육청(교육감) 사과와 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아래 첨부하는 사진 속 피켓에 적힌 문구들을 보기 바란다.)

5


이번 사태에 ‘싸움’의 전선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교사 대 학생’, ‘페미니즘 교육 대 반페미니즘 교육’, ‘남성 대 여성’ 들이 아니라 ‘교사 대 교육청’의 구도 차원에 걸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직 그것이, 자신의 명함에 “성평등의 새 미래”를 새겨 넣고 대동 세상을 꿈꾸었던 배이 선생님과, ‘불편함’을 호소하며 민원을 넣은 학생(학부모)과, 배이 선생님과 함께 성윤리 수업을 한 나머지 대다수 학생과, “배이상헌 교사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수업 공포’와 ‘민원 공포’에 떨고 있는 이 땅 45만 교사들의 교육권을 지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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