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동(2020),《세습 중산층 사회》(2020, 생각의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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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생인 조귀동 씨가 쓴 《세습 중산층 사회》(2020, 생각의힘)를 읽다가 ‘개천용지수’라는 다소 자극적인(?) 말을 만났다. 개천용지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자녀의 대학 지원→전문직 또는 괜찮은 일자리(대기업 초임 수준인 월 300만 원 이상의 일자리)’로 나타나는 교육을 통한 계층 세습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격차나 불평등을 설명하는 대목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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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용지수라는 말을 창안한 사람은 주병기 서울대학교 교수다. 주 교수는 2018년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에 제출한 보고서 <소득과 교육의 공정한 기회 평등: 우리 사회의 현실과 개선안>(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워킹페이퍼 DP201813)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학생이 최상위 학력을 기록할 확률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개천용지수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부모의 교육 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을 ‘최하위 환경’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소득 상위 10% 중에 최하위 환경 출신 비율을 전체 인구 중 최하위 환경 출신 비율로 나눈 값을 활용한 지수가 개천용지수다.
개천용지수 산출 원칙에 따르면 ‘개천에서 난 용’이 나오기 힘들수록 1에 가까운 값이 나온다고 한다. 달리 말해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이 자녀의 성과와 관련이 많을수록(불평등할수록) 높은 값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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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교수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자료는 2005년 중학교 1학년 학생 6908명이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국어, 수학, 영어 과목에서 얻은 성적을 모은 한국교육종단연구(KELS)였다. 자료 분석 결과 영어의 기회 불평등도가 아버지 학력 기준으로 0.739, 부모 월평균 소득 기준으로 0.723 등으로 가장 높았다.
이는 계층 간 기회 불평등이 없었을 경우 최하위 환경 집단(저학력이나 저소득 집단)에서 최상위 성적을 받아야 할 사람이 100이라면 아버지 학력 기준으로는 73.9명, 부모 소득 기준으로는 72.3명이 최상위권 진입에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 과목에서는 아버지 학력 기준으로 0.710, 부모 소득 기준으로 0.673이 나왔다. 국어의 개천용지수는 아버지 학력 기준 0.568, 부모 소득 기준 0.512였다. 국어→수학→영어로 갈수록 자녀의 학업 성취 결과에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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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교수는 또 아버지 학력을 저학력(중학교 이하), 중학력(고등학교 졸업 혹은 재학), 고학력(2~3년제 대학 재학 이상)으로 나누고, 가구 소득을 저소득(월 140만 원), 중소득(월 140만~350만 원), 고소득(월 350만 원 초과)으로 나눈 뒤 부모의 학력 집단별, 소득 집단별로 자녀의 국어, 수학, 영어 성적 분포를 살펴보았다.
고학력-고소득 집단과 저학력-저소득 집단의 차이는 수학 과목에서 가장 크게 나왔다. 고학력-고소득 집단은 자녀의 수학 성적이 90점대에 가장 많았고, 성적별로 비슷한 분포 양상을 보였다. 저학력-저소득, 중학력-중소득 집단에서는 30점 점후 성적을 자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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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승 서강대학교 교수는 2019년에 펴낸 《불평등의 세대》에서 세대 간 불평등 문제의 근원을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독점한 386세대에게서 찾고 있다. 이철승이 《불평등의 세대》에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계급’이 아니라 (386) ‘세대’ 전체에서 찾고 있는 점은, 조귀동이 이 책에서 가계소득 상위 10~15% 안팎의 집단에 속하는 386 중산층, 또는 상위 중간계급(upper middle class)과, 이들의 자산과 특권 네트워크를 물려 받은 20대 상층 10%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는 사실과 대비된다. 조귀동은 분명히 이철승보다 더 계급을 문제 삼는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격차의 문제를 세대론과 계급론 중 어느 한쪽에만 의지해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격차가 갈수록 고착화하는 현실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균열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서울과 경기, 수도권과 지방, 고급 아파트와 보급형 임대 아파트, 특권학교와 일반학교, 노동시장의 ‘인싸’와 ‘아싸’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나 울타리에 묶여 살고 있다. 우리나라 상위 10%가 갖는 부가 2003년 36.3%에서 2017년 50.7%로 증가한 현실을 적실히 나타내는 말로 ‘헬조선’을 들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는 이 말이 단지 수사적 효과를 노린 과장 표현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