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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12. 2020

교육부여, 멀리 보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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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학교 진학”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밀려 등교 개학 일정을 발표한 교육 당국이 이태원 발 코로나 19 확진자 폭발이라는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에 밀려 등교 개학 일정을 1주일씩 순연시켰다. 전례 없는 ‘팬데믹’ 사태의 한복판에서 미루고 미루던 등교 개학 일정을 결정하는 데 진학, 달리 입시 문제를 중요한 판단 잣대로 내세웠음이 드러났을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들은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의 최전방 초병이자 최후방의 보루구나.’     


애초 교육 당국이 등교 개학 일정을 결정하기 위해 논의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방역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겠다. 그들이 학교 현장이 ‘킹스 클럽’이 되고, 학생과 교사가 클럽을 찾은 손님이 되는 상황을 예측해 보았을까. 교육 문제에 관한 한 교육부의 판단과 결정이 최고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어떤 “현실적인 문제”도 제대로 예측하거나 대비하거나 분석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지금 상황이 나는 안타깝고, 화가 난다.     


2     


나는 정부 권력이 행사되는 주요 기관이나 부처들에서 이루어지는 의견 간 상호작용과 의사결정 과정, 이들과 관련되는 각종 회의나 협의 장면을 상상한다.      


얼마 전 수조 원 규모에 이르는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 관련 문제가 청와대, 여당, 기획재정부 사이의 ‘쟁투’ 끝에 결정되었는데, 그러한 ‘쟁투’는 각 권부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의 정치적, 정책적 소신 때문에 불거진 문제였다. 들려 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재난지원금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소신이나 철학을 지키기 위해 고성을 질러 가며 싸웠다고 한다.     


그런 상황은 예외적인 경우였을 것이다. 나는 평상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의견 개진이나 토론 과정이 그다지 유연하거나 자유로울 것 같지 않다. 부처 간 이견 파악과 조정, 행정 권한의 법적 원천과 근거와 한계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 들을 실제로 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자(들)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중간 관리자, 현장 실무자들이 의사결정 시스템의 씨줄과 날줄 사이에서 상호간에 긴밀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구조, 분위기, 문화가 어느 정도로 갖춰져 있을까. 솔직히 의구심부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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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학교에서는 이른바 관리자인 교장의 의중과 판단이 각종 위원회, 회의, 협의(회), 간담(회)에서 다루어지는 안건이나 의제의 토론 방향과 절차를 좌우한다. 교장들은 이를 위해 웅변적인 선언이나 강경한 어조의 선포, 은근한 암시, 교감이나 부장 교사들을 활용한 사전 분위기 조성 및 협력자 포섭과 반대자 강압 등의 갖가지 전술을 구사한다. 이도 저도 귀찮아 하는 교장들은 이렇게 외친다. 법, 지침, 매뉴얼, 지시문, 공문대로!


이런 것들이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교장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도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법률적이거나 행정적인 의미에서 학교 운영(관리)의 최종 책임자는 교장이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운신해야 하는 한, 교장들이 상부 기관의 지침이나 의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교육적인 소신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다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는 장관을 포함하여 교육부에 있는 관료들 하나하나가 바로 그런 교장과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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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코로나 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현실은 (교장이든 교육부 장관이나 관료들이든) 우리가 그런 현실적인 구조의 한계 안에서 머무르고 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나는 판단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행정, 법률, 지침이 규정하는 단단한 현실의 틀을 과감히 깨고 밖으로, 이상의 세계로, 보이지 않는 미래로, 그리하여 우리가 새로 마주치고 만들어 가야 하는 또 다른 현실로 향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복수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격렬하게 충돌할 때, 그런 충돌의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부가 새로운 상상의 힘을 마음껏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교육적 권위를 고작(?!) 진학이나 입시 문제 해결에서 찾으려고 하는 듯하는 교육부의 모습이 나는 슬프다. 교육부여, 멀리 보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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