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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군산 ‘이성당’ 단팥빵을 좋아한다. 아내는 단팥의 당도가 높다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이성당 단팥빵에 든 단팥의 당도와 양은 내게 무척 이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상적인 이성당 단팥빵보다 내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동네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봉지 빵들이다. 빵 봉지를 뜯어 입으로 베어 물 때 내 굳은 미각과 취각을 선동하는 빵 성분들의 강렬한 매력은 나를 압도한다. 그것은 이성당 단팥빵 ‘따위’가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다.
나는 비싼 원두 커피도 즐기지만, 길거리 편의점이나 시장 좌판에서 파는 1000원짜리 커피나 자판기에서 파는 몇백 원짜리 커피도 좋아한다. 그것들은 비교적 싼 값에 아주 큰 여유의 기쁨을 안겨 준다.(월급 받는 직장인이 시장 좌판을 기웃거리고, 자판기 기계 앞에 서 있을 만한 때를 생각해 보라.) 일터인 교무실에서는 ‘봉다리’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봉다리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조용한 저작질을 할 때 하루가 온전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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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수업 방식, ‘더 효율적인’ 교육 방법을 찾아다닌 때가 있었다. 혁신학교 교사들의 수업과 교육활동을 눈여겨보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풀리지 않는 수업 문제들이 풀리고, 교육 방법상의 고민이 해결되는 경험을 할 때가 많았다. 그것들은 이성당 단팥빵이나 비싼 고급 원두 커피처럼 나를 흡족하게 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정의 종류는 그 정도 범위에서 그친 것 같다. 나는 늘 만족도 면에서 몇 퍼센트 부족한 느낌을 가졌다. 어떨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허전함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나는 언젠가 그것이 나를 남과 비교하거나,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사들에게는 숙명적으로(?) 자신의 수업을 남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이 옆 자리 김 선생님의 수업이 최고라며 치켜세우고, 교장이 옆 학급 이 선생님의 학급 관리 방식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내 수업은 최고가 아닌가 보군’. ‘우리 반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나는 무능한 담임 교사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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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나 슈퍼 매대에서 집어 든 봉지빵이 내게 카리스마를 뽐내는 까닭은, 그것이 내가 배가 고픈 적당한 시점에 내 위장과 미각 세포들이 원하는 맛과 영양소를 충당해 줄 것이라고 믿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루를 여는 시간을 나와 함께하는 봉다리 커피의 달고 걸쭉한 맛은 내게 경건한 다짐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나는 이제 나만의 교육 의식을 시작한다’. 그것들은 나를 움직이는 고유의 힘이 있다.
그간 교육에 관한 책 몇 권을 내면서 나는 100명의 교사에게 100가지의 수업 방법과 학급 운영 방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내가 ‘방법’이나 ‘방식’이라고 말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말 그대로의 방법이나 방식이 아니라 ‘스타일’이었다. 그것은 가령 특정한 수업 모델을 자기화할 수 있게 하는 힘, 태도, 보이지 않는 내면 들을 두루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념이다.
나는 내가 진행하는 수업이 유능한 요리사가 자신만의 완벽한 레시피에 따라 만든 최고급 요리가 아니라 우리가 집에 있는 식재료와 반찬 몇 가지를 이용해 뚝딱 차려 내 먹는 백반상 같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집밥을 대책 없이 상찬하고 있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집밥은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식으로 차려지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오랜 시간 체험을 통해 공유하게 된 식구들의 입맛, 취향, 태도 등이 크고 작은 정도로 반영되어 있다. 심지어 자녀에게 집밥을 차려 내는 부모는 자기 아이가 먹기 싫어 하는 반찬도 (그것이 아이들 몸에 좋다고 생각하면) 내놓는다.
집밥은 집집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 요컨대 스타일이 다르다. 이 집 사람은 저 집의 집밥 스타일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한 집안 식구라도 집밥에 대한 호오가 갈릴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집밥을 먹고 성장하며, 자기만의 은밀한 내면을 키워 간다. 내가 집밥 같은 수업을 꿈꾸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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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가지의 수업과 학급 운영 방식이 상호 공존하는 학교 시스템 안에서 민주적인 학교 문화도 꽃피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수업 방법, 내가 활용하는 학급 운영 방식을 자부심을 갖고 대하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수업은 ‘싸구려’이며, 내 학급 운영 방식은 근본 없는 ‘듣보잡’ 같다는 생각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