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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버지께서 남몰래 보관해 둔 돈 봉투를 고향 집 마당가에서 찾았다. 빳빳한 만 원짜리 신권 수십 장이, 바늘로 입구 한쪽에 맨 실로 친친 감아 봉인한 편지 봉투 속에 얌전하게 들어 있었다. 오래된 마루를 들어내고 새 단장을 하던 중 아버지가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 몇 개와 함께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봉투는 마루 아래 조그만 신발장이 놓여 있던 자리 바로 곁에 있었다. 돈이 든 편지 봉투는 일차로 신문지에 여러 번 돌돌 감겨 있었는데, 그 납작한 신문뭉치를 비닐봉지 네 장이 차례차례로 감싸 안고 있었다. 십여 년 만에 햇빛을 보는 돈이었는데도, 은행 창구에서 갓 찾은 신권처럼 습기 하나 없이 빳빳하고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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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쯤 고향 집에 다녀온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집에서 아버지에게 건네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봉투에 돈을 넣어 어디에나 뒀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마루 아래 툇돌 놓인 자리 안쪽과 헛간에 쌓아 둔 장작더미 밑둥치도 찾아보라고 해 살펴봤는데, 어디에도 봉투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하루하루 기력이 떨어지고 계시던 즈음이라 걱정이 앞섰다. 치매, 요양원 같은 단어들, 한숨과 눈물로 이어지는 가족회의 풍경이 지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손수 일구시던 논밭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거처를 옮기셨다. 더 농사를 짓기 힘들 만큼 몸 이곳저곳이 안 좋아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국 누나네에서 보낸 3년 동안의 도시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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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언가를 돌돌 말아 고이 챙겨 두는 버릇이 있으셨다. 그 무언가에는 길에서 주운 노끈, 쇠뭉치, 철사 토막, 녹슨 못, 비닐봉지 등 한 번이라도 더 재활용해 쓸 수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두 들어갔다. 헛간방 입구 한쪽 구석이나 처마 안쪽 말코지 같은 데에는 그렇게 길에서 주워 온 물건들이 포개어지고 매달려 있는 채 강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논밭을 오가다가도 개똥, 쇠통, 염소똥, 썩은 풀더미가 눈에 띄면 발채에 담아 집 마당가에 자리한 두엄자리로 옮겼다. 당신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길에 보이는 못 하나 쇠똥덩이를 모른 체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와 동생이 조그만 노끈 하나라도 함부로 뎅겅뎅겅 잘라 쓰면 불호령을 내리셨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창피하고 좀쓰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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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따로 돈을 모아 둔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내게 돈 봉투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내게에만 넌지시 꺼낸 것으로 보아, 아이 키우랴 직장 다니랴 애쓰는 며느리(내 아내)에게 따로 용돈을 챙겨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런 아버지 마음을 생각하니 십여년 만에 나온 돈 봉투가 애틋하게만 여겨졌다.
어제 오후 수업용 참고자료를 검색하다가 가수 김진호 씨가 케이비에스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우연히 만났다. 나는 아버지의 돈 봉투가 소환한 며칠 전의 각별한 느낌을 생각하면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한 이런저런 기억과 추억들이 떠올랐다. 노래를 듣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평생 농부로 사셨다. 가난한 집안 살림 속에서 여러 자식들 건사하고 가르치느라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사사사철을 가리지 않고 노동을 하신 두 분 인생이, 김진호 씨가 부른 노래에서처럼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산 삶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당신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노라고 확신하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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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거의 매 주말 고향 동네에 가 집 안팎을 손보고 있다. 뜻밖의 돈봉투를 발견한 며칠 전에는 집 외벽 곳곳을 미친 듯 타고 오른 담쟁이 덩굴들을 제거했다. 지지난주에 낫으로 밑동을 잘라 놓았던지라 잎과 줄기가 말라 있어서 쉽게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낑낑거렸다. 담쟁이는 벽을 타고 가다 막히면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가는 길이 단단한 돌이거나 콘크리트 벽이면 빨판 손가락을 서너 개씩 만들어 돌과 벽을 단단히 움켜 쥔다. 그러고 나면 돌과 벽에 담쟁이 빨판 손이 만든 흔적이 진하게 남는다. 그것들을 떼어 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나는 세상 모든 자식이 담쟁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제멋대로 살다가 부모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될 때 부모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다가서서 품을 요구하는 자식들의 모습이, 벽을 타고 오르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억센 빨판 손을 만들어 벽을 움켜 잡는 담쟁이와 흡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