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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28. 2020

밤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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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내내 방바닥에 배를 대거나 무릎을 굽히고 엎드려 학교 숙제를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학교에 있는 책상과 의자까지는 아니어도, 5학년 때인가 친구 집에 가서 본 앉은뱅이 나무 책상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전깃불은 3학년 때부터 사용했다. 그 전까지는 호롱등과 석유등을 조명으로 썼다.


2


중학교 시절에는 2학년 2학기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고향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달구지에 장작과 솥단지와 풍로 따위 세간살이를 싣고 묶어 십여 리 길을, 내가 앞에서 끌고 아버지가 뒤에서 밀며 걸었다. 탈것, 먹을거리, 쓸거리 모두 궁핍한 형편이었지만, 고교 입시공화국의 강력한 그물은 남녘 시골 시커먼 동네 한 구석에 있던 촌놈들조차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인근 유명고에 학생을 더 많이 보내려는 향학 분위기를, 열의 넘치던 저경력 담임 교사가 강제적인 야자로 돌파하려고 했던 것이다.


중학교 자취방에도 책걸상은 없었다. 교실에서 밤늦게까지 야자를 하고 돌아와 잠만 자고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따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만한 틈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서리가 어설픈 도둑처럼 마당에 가라앉거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면 아주 가끔 따뜻하게 데워진 방에서 밝은 불빛 아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의연하게 독서를 하고 공책을 펴 옛날 선비들처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길쭉하게 비틀어진 마름모 꼴의 그 방은 창문 하나 없이 늘 차고 습하고 어둑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곳에서 방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가끔 일기를 쓰고, 유치한 시편들을 끄적거린 것 같다. 나무장작으로 데워진 바닥은, 내가 엎드린 딱 그곳만 그랬지만, 참 포근했다.


3


나만의 책걸상을 처음 장만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입학 직전인 2월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집에서 100여 리 떨어진 도회지의 오일장 입구에 있던 한 가구점으로 나를 이끄셨다. 이른바 지역 명문고 합격 기념으로 책상과 의자 일습 구해 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책상과 걸상을 끈으로 하나가 되게 위아래로 묶고는 두 손으로 잡고 수백 미터를 걸어 자취방으로 옮겼다. 그때도 내가 앞서 걸었고 아버지께서 뒤를 따랐다.


늙은 아버지(그때 이미 환갑을 넘기신 연세였다.)와 함께 걷다 쉬다를 거듭하면서 걸었던 그 해 2월의 아침 길은 차가웠고 발걸음은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책상과 의자가 생겼으니 이제 무슨 공부라도 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상과 걸상은 자취방 한쪽 벽면에 정중하게 모셨다. 그곳은 곧 나만의 신전이자 성지였으며, 연구실이 되었다.


나는 책상 위 벽면에 “하면 된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懸頭刺股(현두자고)” 따위를 사인펜으로 큼지막하게 써 넣은 16절지나 8절지 크기의 갱지를 붙여 두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문구로 삼았다. 이후로도 책상과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일이 그때만큼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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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나자 책상과 걸상이 흔했다. 대학 시절 3년 동안을 기숙사에서 보냈는데, 비교적 큼지막한 붙박이 책걸상이 방마다 설치돼 있었다. 평소에는 도서관 열람실 한켠에 느런히 서 있던 널찍한 나무 테이블에 책을 쌓아 두고 읽거나, 과제 평가용 레포트를 작성했다. 기숙사 책상 한쪽에 설치한 개인 조명등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공간에 맞춰 어둠을 없애 주고, 곳곳에 붙박이로 달린 형광등이 밝은 빛을 비춰 준 대학 시절의 밤 공부 경험은 그대로 가슴 뿌듯한 추억이 되었다.


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책상과 의자 등 공부 도구와, 내가 기대 쉬거나 밥을 먹고, 누워 잠을 잘 수 있는 숙식 공간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달동네 허름한 언덕빼기 집 툇간 한편 구석에 요상한 모양으로 홀로 붙어 있던 단칸 셋방과, 3층짜리 상가 건물의 반지하 공간에 나란히 서 있던 수칸의 벌집방 같은 곳에 볼품 있는 책상과 의자가 들어설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누군가에게 싼값에 산 중고 제도용책상과 네모난 나무밥상, 사과상자 따위가 책상 노릇을 대신해 주었다. 내가 전전한 자취방들은 비좁았지만, 220볼트짜리 단형 형광등으로 방 전체를 환히 비추기에는 너무 어둑하고 음습했다. 나는 나만의 오롯한 방과, 상판 위쪽이 만주 벌판처럼 탁 트인 넓은 책상을 그리고, 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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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이르러서야 10평 조금 넘는 임대아파트를 얻어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다. 조그만 냉장고와 세탁기, 일인용 식탁 등을 챙기면서도 내 마음은 책상과 의자에 더 쏠려 있었다. 어떤 모양과 어느 정도 크기의 책상을 구해야 할까. 소박한 나무의자로 할까, 있어 보이고 편안한 사무용 가죽의자로 할까. 집이 좁아 욕심을 내기 힘들면서도 갖은 상상을 다했다.


며칠간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느 날 시내에 있는 한 가구점에 들렀다. 곧장 무엇을 사려고 해서가 아니라 머리에 그려 본 책상과 의자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무작정 들어간 그 길이 운명길이 되었다. 기역(ㄱ) 자 모양의, 길이가 긴 쪽이 2미터를 훌쩍 넘는 사무용 책상이 내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두 말 없이 대금을 치렀다. 내친김에 ‘회장님 전용’ 같은 가죽의자도 샀다. 배달차를 타고 온 책상과 의자는 안방에 모셨다. 한 면 전체가 책상으로 꽉 채워져 방이 옹색해졌지만 기분이 좋았다.


6


나는 19년을 한결같이 나와 함께 운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책상 앞에서 밤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두 발을 책상머리에 걸친 채 멍하니 명상에 잠긴다. 몸 상태가 좋을 때는 서너 시간 동안 그와 함께한다. 다른 곳에서 읽으면 눈에 들어올 것 같지 않은 책 속 문장들이, 늦은 밤 그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글을 쓰다 막히면 문장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요샌 문득문득 방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진다. 내 영혼의 친구 책상도 풀어주지 못하는 어떤 갈증이 느껴질 때, 이를테면 어린 시절 호롱등이나 석유등 아래서 동생과 함께 아버지 어머니의 그윽한 눈길을 받으며 숙제를 하던 순간의 포근함과 편안함과 뿌듯함 같은 것들이 그리울 때, 그럴싸한 책상이 아니었을지라도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면서 꿈을 꾸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해 준, 수많은 자취방의 밥상 책상과 방바닥과, 그것들이 내게 건네 준 조그만 위로 같은 것들이 떠오를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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