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해악과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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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의 영화 <브라이언의 일생(Life of Brian)>(1979)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웃집에 태어난 브라이언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예수 그리스도에 빗대 표현함으로써 종교와 정치를 풍자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개봉 이후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로마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잡힌 브라이언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혁명가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간다. 그때 바로 옆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한 동료가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준다. <늘 인생의 밝은 면을 바라 봐(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영화는 그렇게 ‘인생 긍정’의 노래를 부르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자들의 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이들이 긍정주의를 설파하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기이하게 보인다.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일까. 미국 교육학자 알피 콘은 <경쟁에 반대한다>(2009, 산눈)에서 이 작품이 낙관주의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경쟁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비판했다.
경쟁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인간관계에 독이 되며, 능률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쟁을 합리화한다. 즉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고, 생산성을 높여주며, 인성을 키워준다고 믿는다. - 알피 콘(2009), <경쟁에 반대한다>, 산눈,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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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그렇지 않다. 경쟁은 합리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알피 콘은 경쟁이 결과 지향적인 태도와 양자택일의 사고, 현실 순응적 태도와 획일성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이들 문제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결과 지향적 태도 아래서는 과정이 무시된다.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 된다. 수업은 좋은 성적을 획득하기 위해 활용되는 시간으로 간주될 뿐이다. 콘은 경쟁에 빠져들수록 자발성이 떨어지고 결과와 관련되는 일 외에 둔감해진다고 보았다. 생각하는 과정이 점점 경직된다고 생각했다.
양자택일의 사고는 우리를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지게 한다. 콘에 따르면 이분법적 사고는 경쟁을 널리 퍼뜨릴 뿐만 아니라 경쟁의 결과다. 이러한 사고법은 전형적으로 하나는 좋은 것,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라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사가 합리와 비합리, 정의와 악, 진보와 보수, 온건과 급진 중 하나로 일도양단 된다.
다음과 같은 과정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이것/저것→좋음/나쁨→우리/그들→그들과의 투쟁.’ 이러한 진행 과정을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가 구조적 경쟁이다. - 알피 콘(2009), <경쟁에 반대한다>, 산눈, 171쪽.
경쟁은 순응적 태도와 획일성을 가져온다. 이러한 태도는 왜곡된 개인주의와 병행한다. 콘에 따르면 서구에서 진정한 개인주의의 역사는 랄프 에머슨(Ralph W. Emerson)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같은 19세기 철학자들로부터 20세기 실존주의의 한 계통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개인주의에는 자급자족, 양심, 자치, 불복종,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 가슴 깊이 품은 가치에 대한 헌신, 모두가 안 된다며 포기하는 것에 대항하는 용기가 포함된다.
긍정심리학, 자기 계발론 등에서 발견되는 왜곡된 개인주의는 이와 다르다. 그것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것을 장려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소외를 조장한다고 한다. 콘은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해라. 나는 내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라’고 말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이며, ‘1등을 지키라’고 얘기하는 노골적인 이기주의”라고 규정했다.
경쟁은 왜곡된 개인주의를 조장하면서 개인들에게 현실 순응과 획일화를 강제한다. 콘은 현실 순응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현실 순응론자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와 반대되는 것은 개성이다. 상황에 의문을 품고 복종하지 않는 태도다. 이런 점에서 경쟁은 순응을 조장한다. 승리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학교에서 경쟁을 한다면 자신을 평가하는 권위 있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면 교사의 견해에 도전하면 안 된다. 회사에서 가장 빠르게 승진하고 싶다면 상사의 권위에 저항하면 안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면에서 비판적 사고는 사라질 것이다. - 알피 콘, 위의 책, 173쪽.
경쟁은 개인의 인격과 내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악영향을 준다. 다시 알피 콘의 논리를 빌려와 보자.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다른 사람의 실패는 자신의 성공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경쟁 심리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바란다.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7~9세 사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실험[알피 콘(2009), 위의 책, 180쪽 참조] 사례가 있다. 경쟁에 매우 익숙하다고 생각되는 미국 백인 아이의 78퍼센트가 단지 다른 아이들이 갖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만으로 장난감을 빼앗았다고 한다. 경쟁이 덜 사회화된 멕시코 아이들은 그 횟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존 왓슨(John B. Watson)이 앨버트라는 아기에게 행한 ‘공포 실험’은 무차별적 경쟁 행동의 폐해를 실감하게 해 준다. 처음 앨버트는 흰쥐에 대한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왓슨은 앨버트가 흰쥐를 보고 만지려고 할 때마다 큰 소리를 들려 주었다고 한다
그 소리에 놀란 앨버트는 곧 쥐에 대한 공포를 학습했다. 실험이 반복되면서 모든 희고 털이 난 물체, 가령 산타클로스의 수염, 모피 코트, 털목도리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콘은 왓슨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경쟁적으로만 인간관계를 되풀이하는 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모든 사람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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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개인을 정서적으로 고립시킨다. 경쟁에 찌든 개인의 내면은 질투와 경멸과 불신으로 가득찬다. 콘을 따라 이들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 보자.
질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내며, 그가 그것을 가졌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마음이다. 질투를 인간 본성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콘은 질투를 사회적 산물로 본다. 어떤 것에 대한 가치평가와 분배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어떤 소중하게 여겨지는 지위를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원하게 만든다. 물론 그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그리고 타인에 대한 승리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질투가 생기는 조건이다. 즉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누군가 자신의 것을 빼앗은 것이라는 (거의 정확한) 믿음이 질투를 만든다. - 알피 콘, 위의 책, 186쪽.
경멸은 적개심(그 이전에 승자가 얻은 것에 대한 질투심이 작동한다.)으로 설명된다. 대다수 학생들이 자신의 희생을 대가로 다른 아이들이 성공하는 것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때문에 아이들이 타인의 성공을 미워하고, 이른바 성공한 타인을 적대시하며, 다른 이들의 성공을 방해하고 싶어하고, 다른 이의 실패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는가.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콘의 논리에 따르면 승자의 승리와 패자의 패배는 올바르고 당연한 일이다. 승자는 유능하고 덕망 있는 사람들이므로 승리가 당연한 것이 된다. 패자는 패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므로 경멸받을 만하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구조적으로 고착화한 제도와 더불어 상호작용적으로 증폭되고 강화된다.
승자에 대한 패자의 경멸 속에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도 섞여 있다. 패배한 사람들은 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으며(만약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오기를 부린다고 비난 받을 것이다) 단지 다음엔 꼭 이기리라 마음먹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된다. 따라서 패자에 대한 경멸은 인간관계의 파괴뿐만 아니라 강력한 보수주의로 나타나게 된다. - 알피 콘, 위의 책, 187쪽.
경쟁은 개인들 사이에 강한 불신감을 가져오며, 그것은 사회 전체로 급속하게 퍼져 나간다. 콘에 따르면, 지금 당장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점, 어디에서 살든 우리가 경쟁 시스템 속에서 배운 것을 일반화시켜 행동할 것이라는 점, 각자가 이러한 태도로 대응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 등 때문이다.
경쟁은 타인을 적으로 만든다. 전투에 임하는 개인들은 상대방을 익명적인 존재로 여기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감하거나 이해하거나 돕는 등의 인간적인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피 콘의 말처럼 경쟁은 일종의 ‘전투’이며 적대적인 ‘충돌’이다. 모턴 도이치가 경쟁과 적대심과 공격성에 대해 지적한 다음 구절을 읽으며 경쟁의 해악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경쟁적인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만 보려하고, 그를 의심하고, 적대심을 가지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타인과의 심리적 공감은 사라지며, 인간관계는 공격적, 혹은 방어적이 된다. 타인의 불이익과 열등함, 자신의 이익과 우월함을 추구하고, 그는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동시에 상대방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믿는다. - 알피 콘, 위의 책, 189쪽에서 재인용함.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몬티 파이튼의 영화 마지막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 영상은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urning_rock/220640789391)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