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라이터스_글쓰기의 민주주의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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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사유하는 교사》를 처음 읽은 때가 기억이 난다. 표지 뒤쪽에 있는 짤막한 책 소개 문구와 머리말, 차례 부분을 살펴보면서 편집 체제가 특이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유하는 교사》는 교육학 초심자들을 위해 쓰인 입문서다. 일반적인 입문서라면 해당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들을 설명하고, 기본 이론들을 소개하는 순서로 내용을 짜기 마련이다. 이 책은 교육 현장의 임상적 사건과 사례를 보여주면서 이론 체계를 넌지시 암시하는 식으로 내용을 구성하였다. 차례만 보아서는 교육 사례집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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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교사》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이야기는 제1장 두 번째 절에 있는 <라몬과 하랄트>였다.
“다음은 소위 「머리가 달린 초등학교」, 다시 말해서 5학년 이상의 상급 학년 과정을 해당 지역의 종합학교에 연계시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머리가 달린 초등학교”라는 낯선 표현의 함축적 의미와 “운동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체,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교육학적인 성찰의 단서들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라몬과 하랄트>의 서술자는 제3의 외부자처럼 객관적인 위치를 떠나지 않으면서 상황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문장들은 시종일관 담담하다. 어떤 수사학적인 기교나 감흥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문장들은 마치 전문 상담가가 상담 일지나 보고서에 건조하게 새겨 넣은 상담 기록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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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생 하랄트는 이주민 가정 출신의 학급 동료 라몬에게 1마르크를 주면서 70페니히짜리 껌을 사오라고 시켰다. 라몬은 하랄트에게 거스름돈 30페니히를 돌려주지 않았다. 하랄트는 교실에서 라몬이 도둑질을 했다고 비난하면서 난투극을 벌였다. 라몬은 친구들에게 도둑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집에서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했다.
처음에 성적이 전체적으로 좋았고, 비교적 수줍음을 타던 학생이었던 라몬은 점점 거칠고 소란스럽고 공격적인 아이가 되어갔다. 라몬은 교사들에게도 공격성을 보였다. 학급에서 분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의심을 받았고, 도둑으로 몰렸다. 라몬은 성적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유급 판정을 받고 특수학교로 보내졌다. 특수학교에서는 라몬의 지능을 검사했는데, 전체적으로 정상임이 밝혀졌다. 글쓴이는 이런 점들을 서술한 직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써 놓았다.
“지능의 결손은 이 학생의 취약한 성적의 원인이 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 별을 그린 뒤 그것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 두었다. 그리고 글이 끝나는 다음 페이지 하단 여백에 “모든 아이에게는 ‘역사’가 있다!”라는 문장을 쓴 뒤, 그 왼편에 화살머리가 왼쪽 페이지로 향하는 화살표를 길게 그어 왼쪽 페이지 중간의 긴 문단을 가리키게 했다. 그 문단에는 문제의 사건 이후 라몬의 학업 성적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학교 부적응 학생처럼 생활태도가 엉망이 되어가는 과정 끝에 특수학교에 가기로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이 개략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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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과 하랄트>를 쓴 사람은 게오르크 엠 뤽크림 베를린조형예술대학교 교수였다. 책 뒤편 저자 소개 글에 교사교육과 성인교육에 관한 저서를 다수 썼다는 정보가 있었다. 예술대학교 교수가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는데, 라몬과 하랄트 사이에 벌어진 일을 묘사하고 주요 처리 과정의 골자를 빼 먹지 않고 요령 있게 기술한 것을 보고 더 놀라웠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학생 간 갈등, 교실 내 소지품 분실 문제, 이 문제들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와 학교의 일반적인 분위기, 교사들의 학생관, 그 영향권 아래서 대상 학생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학교 생활교육(생활지도)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돌아보았다. “모든 아이에게는 ‘역사’가 있다!”라는 문장은 그런 성찰 과정에서 나온 생각의 흔적이었다. 나는 ‘라몬’이 거쳐 온 안타까운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기 뜻과 무관하게 잘못된 역사의 경로에 들어서게 된 동시대의 수많은 ‘라몬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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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교사》에는 <라몬과 하랄트> 외에도 우리를 교육학적인 성찰과 사유의 세계로 이끄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나는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가 쓴 <작은 아이들과 큰 아이들>의 마지막 문장, “학교에 가서 제발 아무 얘기도 하지 말아 주세요!”를 읽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장으로 곧장 넘어가는 교육자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어떤 나라의 한 집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로서 우화적인 성격이 강해 보이는 야누쉬 코르착의 글 <누가 교사가 될 수 있는가?>는 분량이 3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짤막한 글이지만 그 어떤 길고 체계적인 교사론보다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
나는 《사유하는 교사》를 읽으면서 ‘교육자의 글쓰기’나 ‘교육적인 글쓰기’의 어떤 본보기를 생각한 것 같다. <학교에서 시작하는 하루>는 성숙한 교육적 관점을 견지하기 위해 학교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기록하는 교육자의 글쓰기 사례처럼 이해했다. <말썽꾸러기 페터>는 교육적인 차원의 임상 기록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자세히 알려 주는 사례로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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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작가나 저자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나 자기 뜻과 의지에 따라 의도적으로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쓴다. 보이는 것, 보는 것을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 생각과 삶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무작정 쓸 수는 없다. 눈에 보이고 보는 일들의 이면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고, 그런 의미를 만들어 낸 구조, 체제, 외부의 힘 같은 것들도 따져 보아야겠다. 그렇게 감춰진 것들까지를 염두에 두면서 글을 쓸 때, 나는 그 글들이 가장 교육적인 의미의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몬과 하랄트>는 학생생활지도 사례집에 실린 수많은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했을 수 있다. 그런데 교장은 라몬의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추가 조사를 실시했고, 사안 일체를 정리해 교육상담소에 전문 상담 의뢰를 신청했다. 이를 바탕으로 심층 연구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라몬이 하랄트 돈을 중간에 가로챘고, 이에 화가 난 하랄트가 라몬을 때렸으며, 그 뒤 라몬이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성적이 떨어져 특수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등의 눈에 보이는 사실에만 주목했다면 그런 특별한 관심(interest)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교장은 라몬이라는 한 인간과의 사이(inter)에 존재(est)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감춰진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교장 덕분에 우리는 라몬과 하랄트가 살고 있는 배경으로서의 도시 생활, 가정 내 분위기, 외국 이주민 가정과 토착 주민 가정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평범해 보이는 한 학생을 어떤 의도치 않은 길로 이끌었는지 서늘하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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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는 데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보기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뒤에 감춰진 것을 간파하는 능력을 전제한다. 감춰진 것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색을 바탕으로 사물과 대상과 상황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할 때, 우리 눈에 자연스레 보이는 것들 중에 특별한 것들을 골라 내는 감각이 길러질 것이다. 나는 《사유하는 교사》에 실린 글들이 그런 일련의 과정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