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성공을 위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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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는 ‘5・31 교육개혁 정책선도자(policy entrepreneur)가 바라본 개혁 실패 요인과 교육개혁 향후 방향 분석’이라는 제목의 글(출처: http://blog.naver.com/ngpark60/220368921175)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 놓았다.
5・31 교육개혁 방안(5・31 교육개혁안)은 김영삼 대통령이 이끈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교육개혁위)가 만들었다. 5・31 교육개혁안에서 실질적인 교육 ‘공급자’인 국가는 뒤로 빠지는 대신 국가의 임무 대행자인 학교와 교사를 현실의 ‘공급자’로 내세웠다. 학생과 학부모는 ‘수요자’로 규정되었다. 그 덕분에 국가는 교육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 국면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되면서 교육 문제의 대립 구도가 학교・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싸움으로 교묘하게 재배치되었다.
눈길을 끄는 이야기가 또 있다. 5・31 교육개혁의 핵심 주체로 알려져 있는 박세일 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당시 교육개혁위에서 ‘소비자’라는 용어를 강력하게 고수하고자 했다고 한다. 교육을, 시장경제체제를 지탱하는 하위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5・31 교육개혁안의 본질적인 ‘색깔’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다.
‘소비자’라는 용어는 최종 결정 단계에서 채택되지 못하고 ‘수요자’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교육계 소속 위원들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5・31 교육개혁안 마련에 참여한 김신일 전 교과부 장관이 2015년 5월 9일 교육행정학회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5.31 교육개혁안을 만든 문민정부 교육개혁위가 주목한 당시 한국교육의 현안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박 교수가 정리한 내용을 빌려와 보면, 현실에서 유리된 단편적 지식만을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과 불량품 인력 제공, 입시지옥, 값싼 학교교육과 과중한 사교육비, 획일적 규제 위주의 행정, 도덕교육의 상실 들이었다.
이에 대한 대안적 방향으로 교육개혁위가 내세운 것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었다. 후술하겠지만 학생・학부모의 선택권과 자율권, 학교 간 경쟁 체제가 구체적인 정책 기조였다. 새롭게 설정된 ‘공급자-수요자’ 간 대립 구도, ‘수요자-소비자’ 용어 논쟁은 그 과정에서 불거진 일들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우리 교육은 제자리를 찾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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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교육개혁안은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주요 골격이 크게 바뀌지 않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등 이후 정부에 그대로 이어졌다. 5・31 교육개혁의 핵심은 문명사적 변화와 정보화 사회에 부응하는 새로운 교육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아래 5・31 교육개혁과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 추진에 관한 내용은 서정화 외(2013), <한국 교육정책 현안과 해법>, 교육과학사, 15~35쪽을 참조함.] 당시 교육개혁위가 내세운 신교육체제의 비전은 ‘열린교육사회, 평생학습사회’였다. 지향하는 인간상으로 ‘더불어 사는 인간, 슬기로운 인간, 열린 인간, 일하는 인간’을 제시했다.
5・31 교육개혁의 핵심 가치와 기본 원칙은 교육의 자율화, 다양화 및 책무성 강화를 통한 질적 수준 제고, 학생・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서비스 제공이었다. 교육의 수월성을 신장하기 위해 각급 학교 운영에 자율과 경쟁 원리를 도입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원리에 따른 시장주의와 경쟁주의가 교육정책의 기조로 깔려 있었다. 위에서 살핀 ‘학교・교사=공급자 대 학생・학부모=수요자’ 구도와 ‘소비자-수요자’ 용어 논쟁을 그 방증으로 제시할 수 있다.
1990년대 이래 역대 정부들은 문민정부가 마련한 5・31 교육개혁 방안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로서 각자 교육개혁 기구를 설치해 운영했다. 각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는 교육개혁 의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 관련 위원회를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문화일보> 2015년 4월 23일자 기사 ‘“現 교육개혁 성과낼 때” vs “정치적 독립기구로 신설해야”: 4부. 위기의 한국교육 - (8) 교육개혁기구 논란’에서 가져옴.)
박근혜정부에서는 황우여 전 교육부총리 재임 시 발족한 교육개혁추진협의회(2015.3~2016.2, 아래 ‘교육개혁추진협’)가 교육개혁 관련 기구 역할을 맡았다. 교육개혁추진협은 ‘자문기구’로서의 ‘위원회’가 아니라 ‘협의회’ 위상을 갖고 있는 점이 역대 정부와 다르다. 과거 위원회들이 정책 제안 정도만 하는 것과 다르게 운영한다는 취지에서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협의회 내 분과위가 하는 일은 매달 한 차례 이상 회의를 열어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 현장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책 방향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이전 정부의 위원회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위상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정책을 추인하는 ‘거수기’로 전락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개혁추진협은 김재춘 교육부 차관과 김용승 가톨릭대 교학부총장을 공동의장으로 하고 9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6개로 나뉜 분과위원회는 현장 전문가, 학부모, 교원, 교육부 관료,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등 15명 정도로 짜였다고 한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민간인이 ‘현장 전문가’ 자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교원’ 몫은 극소수의 교장(7명)이 맡고 있다. 교육 현장의 ‘최고 전문가’인 교사들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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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교육개혁 관련 기구를 만들어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으려고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노력이 교육 현장과 얼마나 밀착되었으며, 교육주체들의 요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탁상행정’, ‘현장과 괴리된 교육정책’이라는 말들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교원들을 대상으로 교육 관련 입법 과정에서 교원 의견이 반영되는 정도를 물은 한 연구[박재윤 외(2009), <교육입법정책 개선 연구>,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5점 만점의 리커트 척도[필자 주; 응답자가 제시된 문항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답변하도록 하는 방식. ‘리커트’라는 명칭은 이 척도 사용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한 렌시스 리커트(Rensis Likert)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문항들에서 전체적으로 2점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서정화 외(2013), 위의 책, 25쪽에서 재인용함.]
박재윤 외(2009)의 연구에서는 정부의 교육 관련 법률 제정 및 개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조사 결과 정부의 교육정책(64.4퍼센트), 여야정치권의 의사(24.8퍼센트), 교직단체 의견(5.8퍼센트), 일반국민 여론(2,6퍼센트), 시민사회단체 의견(2.4퍼센트) 등의 순서로 나왔다고 한다.
이는 교원들이, 정부나 정치권의 의사가 교육입법 단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교육 관련 입법 과정에 반영되지 않을뿐더러 교육 관련 법률 제정이나 개정 단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박준형은 <한국교육정책 형성과정에서의 국가주도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2008, 한국학술정보)에서 우리나라 교육정책 형성 과정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검토한 뒤 몇 가지 특징적인 문제점을 정리했다. 크게 세 가지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주체와 객체로 규정되었다. 개인이 정책에 대한 객체, 대상, 수혜자로 전락함으로써 국가(관료)가 비교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교사나 학생과 같은 교육 영위자(주체)가 정책 형성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비공식적 참여자 역할로 국한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었다. 공식적이며 주된 참여자는 정부다.
교육정책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합리성과 효율성에 따라 규정되는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보편과 평등에 기반한 공교육 이념 구현, 삶의 질 향상 등 교육 자체가 목적이 되는 논리들이 간과되었다. 이는 교육공동체의 통합 위기, 사회통합의 위기 문제로까지 비화한다.
교육주체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야 할 법률들이 오히려 공동의 삶을 억압하는 역설도 드러났다. 박준형은 국가가 법률을 매개로 교육 현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교육 주체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억압하는 사례로 체벌의 수위와 학생 평가 방법을 국가가 관여하는 것을 들고 있다. 교육부 발 각종 지침과 매뉴얼이 학교 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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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그것을 현장에 내리꽂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보편화한 데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박준형은 교육정책 형성이 국가의 몫이라는 공교육체제 형성 초기의 개념이 아직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 민주주의의 공허화(형식화), 법 전문가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부여된 후견주의적 법 이해 방식 들이 교육정책 형성상의 문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하나의 소규모 조직에서도 개인 외부에서 부여된 규칙보다는 구성원들의 참여로 결정되어 수용된 규칙이 더 영향력이 있다. 더군다나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한 규칙형성절차가 제도화되어 있다면, 그래서 절대적인 것은 절차의 제도화일 뿐이라면 급속한 사회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규칙이 상황적합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일개 조직에서도 이럴진대 국가구성원 전체가 지켜야 할 규칙인 법을 전문가가 주장하는 바, 공익을 위한다는 선의만을 믿고 전문가에게만 내어맡기고 일단 정해진 법은 설사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반민주적인 법 이해 방식이다. 이는 오랜 식민통치가 종식된 후 소수 지도자들에 의해 법이 제정되고 강제되었던 한국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형성된 불가피한 법문화이기도 하다. - 박준형, 위의 책, 52~53쪽.
기존의 자유주의 모델에서는 국가정책 논의 시 다원주의적 가정에 따라 공익을 고려한다고 한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이러한 자유주의 모델의 다원주의적 가정이 갖는 허구성을 지적했다. 박준형(2009)을 따라 하버마스의 논변을 살펴보자.
하버마스에 의하면 정책형성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집중화는 두 가지 반사실적 전제를 갖는다. 결정능력이 있고 혁신을 꾀하는 관료집단의 합리성만이 행정기능의 공동선 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 관료집단은 개별정책을 위해 요구되는 대중적 지지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고, 정책 목표 역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들이다. 이런 전제 아래서 국민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선거 공약을 파악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 정도로만 간주된다.
하버마스는 1960년대 후반 이래 독일 사례를 들어 이 전제들의 반사실성을 증명했다. 첫째 당시 독일의 정부 관료가 좌지우지하려 했던 학교를 포함한 하부기능 체계들이 국가의 적극적이고 세부적인 개입 조치에 완강히 저항했다. 둘째 부동층 유권자 동향의 예측불가능성으로 정부가 주도권을 발휘하는 공간이 제한되고 있었다. 셋째 정치혐오증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저항적 투표와 투표불참으로 인한 정당성 철회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불가피한 현실론에 따라 교육정책을 국가나 관료가 주도해야 한다는 전제를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가 정당하게 통용되려면 정책 수립과 집행의 주요 담당자들인 교육 관료들이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유능한 능력, 공정함, 공교육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철학 들을 구비해야 한다. 교육 현장과의 소통과 경청의 자세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교육 현실은 절망적이다. 위계적인 관료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그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승진이다. 현장 경험이 아니라 ‘고시’ 시험에 터 잡은 능력은 그들을 ‘공무원’이 아니라 ‘관료 기계’의 길을 가게 만든다.
교육 관료들이 어떤 교육적인 마인드를 갖고 일하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의 주인공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이 아닐까. 교육부 안팎에 포진해 있는 수많은 ‘나향욱’들이 있는 한 교육개혁은 공염불이다. 교육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교육 관료들이 눈길을 돌려야 할 곳은 교육 ‘현장’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 인물은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다음(Daum) 백과사전(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51XXX9600018)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