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통해 본 ‘실력’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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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중의 최고로 구성된 어떤 엘리트 하키선수팀이 있다고 하자. 그들의 40퍼센트는 1~3월, 30퍼센트는 4~6월, 20퍼센트는 7~9월, 10퍼센트는 10~12월에 태어난 선수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구성은 어떤 팀에서든 예외가 없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저 반슬리(Roger Barnsley)는 연령대를 기준으로 사람을 선발하고 분류하고 차별적으로 대하게 되면, 특정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른 나이에 누가 잘하고 누가 그렇지 못한가를 결정하면, 즉 재능의 유무를 가리고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하게 해 주면 특정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큰 이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2009, 김영사)에서 이런 편향된 결과가 교육과 같은 분야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연말에 태어난 자녀를 둔 부모의 고민은 이듬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섯 살배기가 몇 개월 빨리 태어난 아이들과 섞이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이러한 고민과 걱정은 일리가 있다. 연초에 태어난 아이가 누리는 아주 작은 이익은 연말에 태어난 아이가 겪는 불이익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성취감과 낙담, 용기, 좌절이 일종의 패턴이 되어 아이를 수년간 묶어둔다는 이유에서다.
경제학자 켈리 베다드와 엘리자베스 듀이가 흥미로운 비교 분석을 했다. 최근 국제수학과학연구경향(TIMSS; 4년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학・과학 시험) 성적과 그 시험을 본 이들이 태어난 날을 비교해 보았다.
분석 결과, 4학년 학생들 중 일찍 태어난 학생들이 늦게 태어난 학생들에 비해 4~12퍼센트포인트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듀이는 이를 ‘거대한 효과’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런 뜻이다. 지적으로 동등한 4학년 학생들을 학년 기준일의 양쪽으로 나눠 세우면 일찍 태어난 학생들은 상위 18퍼센트에 속하는 반면 늦게 태어난 학생들은 상위 68퍼센트에 머문다.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죠. 우리는 어린 나이에 똑똑한 아이들을 선별합니다. 우등 독서반도 있고 우등 수학반도 있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거나 학교에 입학하면 교사는 숙달되어 잘하는 것과 정말로 똑똑한 것을 혼동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몇 달 빨리 태어난 아이들은 상위코스에 들어가고 더 좋은 걸 배우죠. 이듬해가 되면 그 아이들이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실제로 더 잘하기도 해요.” - 말콤 글래드웰(2009), <아웃라이어>,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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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로버트 머턴(Robert Merton, 1944~현재)은 ‘마태복음 효과’를 주창했다. 마태복음 효과는 <마태복음> 제25장 제29절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에서 따온 것으로,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낸 사람이 성공을 거둔다는 뜻이다.
글래드웰은 최고의 부자들이 세금환급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최고 학생들이 최고 강의를 듣고 피드백을 받으며, 9~10세 어린이 중 덩치가 큰 아이들이 최고의 코치로부터 훈련을 받는 사례를 든다. 이른바 ‘성공’은 사회학자들이 ‘누적적 이득’이라고 부르는 것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출발점의 사소한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 기회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져 결국 그 주인공이 천재적 아웃라이어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
<포브스>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에는 19세기 중반인 183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14명(20퍼센트)이나 된다. 이들이 30대에 이르는 1860년대부터 이후 1870년대 사이는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글래드웰이 보기에 이들 열네 명은 1~3월에 태어나 특별한 기회를 누린 하키선수나 축구선수와 다를 바 없었다. 193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관찰기록을 남긴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 1916~1962)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민시대부터 20세기까지 미국 기업인의 배경을 조사한 결과, 그는 대부분의 비즈니스 리더가 풍족한 배경에서 태어났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1830년대는 다르다. 이는 그 시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이었는가를 보여준다. 그 시대는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현실적 기회를 누리던 유일한 시기였다. 밀스는 “1835년 전후는 미국 역사상 가난하고 야심 찬 소년이 사업을 통해 성공을 노려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라고 말한다. - 말콤 글래드웰, 위의 책, 80쪽.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에릭 슈미트 등 정보기술 분야의 아웃라이어들 역사 같은 방식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모두 1950년대 중반 태생이다. 빌 게이츠는 1955년 10월 28일생,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생, 에릭 슈미트는 1955년 4월 27일생이다.
이들은 최초의 개인 컴퓨터 앨타이어(Altair) 8800이 판매되기 시작한 1975년에 20대 초반이 됐다. 개인 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이 해에 그들은 과거에 얽매일 만큼 나이가 많거나 꿈을 펼치기 힘들 만큼 어린 연령대가 아니었다.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기회가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의 특별한 기회에서 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955년에 태어나는 것이나 기업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835년에 태어나는 것처럼,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1930년대에 태어나는 것은 마법의 시간대를 등에 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말콤 글래드웰, 위의 책,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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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는 열 살이 되기까지 아이들을 능력에 따라 분류하지 않는 교육정책을 펼친다고 한다. 무언가를 몇 번 더 해서 높아지는 숙련도와 아이의 내면에 잠재된 재능은 쉽게 판별될 수 없다. 덴마크의 교육정책은 선택적으로 변별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춤으로써 몇 달 먼저 숙달되어 잘하는 효과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일찍 아이를 재단한다. 이 아이는 똑똑하고 저 아이는 멍청하다. 이 아이는 착하고 저 아이는 나쁘다. 부모와 교사라는 이유로, 더 정확히 말하면 단지 아이들을 낳고 기르거나 가르친다는 이유로 그들을 자신들의 일방적인 시선 아래 잡아 놓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 결과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과 교육의 부익부빈익빈 구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러나 재능의 평범함과 비범함은 백지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하나의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기회와 행운과 노력이 발휘하는 힘과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력자’의 ‘실력’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메리토크라시적 교육 패러다임은, 분배 정의에 초점을 둔 그 진보적 버전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사회적 경쟁 체제에서 승리한 자들의 이데올로기이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승자독식을 정당화하고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만들어 낼 우려가 있다. 메리토크라시적 이상은 너무 쉽게 경쟁의 승자들이 갖춘 어떤 지위에 대한 형식적 자격(qualification)을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화 같은 것을 마땅히 독차지해도 되는 ‘도덕적 자격’ 또는 ‘응분’(desert)으로 바꾸면서 사회적 분배 체계의 극심한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다. - 장은주 외(2014), <왜 그리고 어떤 민주시민교육인가>, 경기도교육연구원, 19쪽.
* 제목 커버 배경 이미지의 주인공은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다. 다음 백과(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51XXX9600017)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