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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16. 2023

내 옷 아래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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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이비에스(EBS)에서 방영한 어떤 강연 프로그램에 소개된 일화이다. 언젠가 퇴계 이황의 어머니가 어린 퇴계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네가 나중에 벼슬을 한다면 고을 수령 정도가 적당하겠다.” 강연자는 퇴계 모친이 진짜 어떤 의도에서 이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등장하는 대목은 퇴계가 벼슬이나 출세 같은 세속적인 영달보다 학문 매진과 후학 양성에 뜻을 두고 사직 상소를 70번이나 낼 정도로 ‘물러남’에 대해 강한 집착(?)의 태도를 보인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범박하게 해석하면 퇴계 모친이 어려서부터 은둔하며 사는 선비의 삶을 더 원하는 것처럼 보였던 퇴계의 천성이나 기질을 알아보고 가볍게 던진 말이었을 수 있다.     


퇴계 모친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퇴계는 중앙 조정과 지방을 오가며 크고 작은 벼슬 생활을 적지 않게 했으며, 만년에는 조정의 고위직 중 하나인 판서에까지 이른다. 물론 퇴계는 그 사이사이 사직 상소를 끊임없이 올렸다. 고을 수령직(경상 풍기군수)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상관이 아무 반응이 없자 직무를 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벼슬살이를 그만두려고 하다가 직급이 2단계나 강등당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자기에게 걸쳐진 벼슬이라는 옷이 성정이나 지향하는 삶의 철학에 맞지 않았다는 몸으로 보여 주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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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려는 자가 특정한 직위를 갈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일정한 지위에 이를 때까지 승진하는 데 연연하거나 그렇지 않는 것을 온전히 선악이나 시비 차원에서 논하는 일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 자신이 그리고 있는 공적 포부나 계획을 실현하는 데 특정 직위가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승진하여 일정한 지위에 이르러야 그에 따른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은 온정적인(?) 해석이 통용되기에는 우리 현실이 너무 삭막하다. 가령 교육자 교사들의 일터이자 교육하는 장소인 학교가 교장 승진제로 인한 누적된 폐해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의) 관료주의 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교감이나 교장으로의 승진 여부를 교사 교육력의 성패로 보는 학교 안팎의 시선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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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안전인성인권부장’이라는 옷을 입고 지내면서 이른바 ‘부장 업무’ 때문에 교육자 교사로서의 내 정체성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자주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공문 작성이나 서류 처리 작업 등 행정 처리에 더 품을 들이기 마련인 부장 업무 처리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정작 교육하는 일에 시나브로 소홀해지면서 정체성의 악화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문서에 집어 넣는 단어 하나, 회의에서 하는 한 마디 발언을 하면서 제3의 조감자가 되어 부장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려고 했다. 그런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교장 승진제도를 개혁하는 일과 별개로 교사나 교직원 개인의 천성이나 기질에 따라 학교 내 여러 직위나 직책들이 배분되고 받아들여지는 생각이 학교 안팎에 퍼졌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반장이 각각 국민과 학급 학생의 대표인 것처럼 교장은 학교를 대표하는 자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일반화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편한 일이나 대접받는 자리 같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와 같은 ‘관리자 교장’이 아닌 ‘대표 교장’은 사람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표이니 다른 누구보다 어렵고 중차대한 일을 앞장서서 많이 해야 한다.(혁신학교발 공모 교장제 덕분에 이런 헌신형 교장상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미 유수한 교육 강국에서는 이런 유형의 교장들이 보편적이다. 그것이 학교에서 교사들이 교육 본연의 일을 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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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퇴계는 거의 평생 동안 출사(出仕)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원한 것은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의 옷이었지 정치와 제도에 얽매인 관료의 조복이 아니었다. 사직 상소를 70번이나 내고, 고을 수령직마저 던져 버린 퇴계의 자기 찾기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새 학년 새 학기 출발을 앞두고 있는 지금 교육자 교사로서 내 정체성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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