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 신입생 예비 소집 일정이 잡혀 있었다. 올해 1학년 담임 5명 중 하나여서 학교에 나가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예비 소집 일정을 진행했다. 임시 학급으로 들어가 얼마 후에 있을 오리엔테이션 일정을 포함해 몇 가지 안내 사항들을 알려 주고, 설문조사와 적성검사를 실시한 뒤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정해진 시작 시각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 교실을 비롯해 학교 곳곳을 둘러보고 다녔다. 그들의 소리 없는 표정과 조심스러운 몸짓 모두가 앞으로 3년을 함께할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의 표현처럼 다가왔다.
6년만에 담임을 맡는다. 오랜만에 담임을 맡게 된다고 해서 그랬는지 방학 동안 올해 우리 학급을 어떻게 꾸려 가고 학생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생각할 때가 많았다. 고민을 위한 질문들이 계속 떠올랐지만 별달리 손에 잡히는 답은 없었다. 문득 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학교를 돌아다닌 예비 신입생들과 달리 삶의 어지간한 단맛과 쓴맛에 꿈쩍도 하지 않을 오십대 중반의 남성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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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요령부득의 일이다. 중고등학교 교사로 지낸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렇게 이어 온 교육자로서의 삶이 내게 교육에 대한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해 주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해가 갈수록 교육자로서의 열정과 의지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교육과 학교에 대해 조그맣게 깨달은 점이 있어서 앞으로 굳게 간직하고 싶은 생각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밝힐 수 있다.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을 학생과 교사 신분으로 학교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는 학교의 모습은 4500년 전 수메르 지역에 생긴 인류 최초의 학교나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에 있는 지금 우리 학교나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수메르 학교와 우리 학교의 교육 철학과 목표와 방법은 다를 테지만 두 학교 모두 사람이 있고 삶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중대한 사실을 너무 자주 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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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날이 만나는 삶은 모두 새로운 것 같지만 그 바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이 마주쳤고 미래의 후손들이 마주칠 희로애락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존재들이다.
공자가 ‘술이부작(述而不作; 옛것을 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음.)’과 ‘신이호고(信而好古; 옛것을 믿고 좋아함.)’를 말한 까닭이 그가 고집스러운 보수주의자이거나 전통주의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삶의 본질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공자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묵이지지(黙而識之)하며 학이불염(學而不厭)하며 회인불권(誨人不倦)이 하유어아재(何有於我哉)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