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Feb 28. 2023

술이부작(述而不作)하며 신이호고(信而好古)라

개정증보판《교육을 읽다: 고전으로 배우는 교육철학사》를 펴내며

1


언어는 공유물이자 공공재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은 온전히 나의 것만이 아니다. 나는 타이완 문화비평가 탕누어가 쓴 책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저자와 독자가 살아남으려면》(2020, 글항아리)을 읽다가 언어의 공적인 성격, 말과 글의 공공성에 대한 생각을 처음 만났다. 저자는 예외 없이 독자이고, 우선적으로 독자였다. 너무 당연하여 식상해 보이는 이 문장을 읽으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자신의 말과 글에 자주 도취되는 화자나 저자들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말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셰익스피어의 기억》에서 “모든 말은 일종의 공동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20대 후반 무렵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을 읽은 뒤 보르헤스에게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는데(에코의 이 작품에서 보르헤스는 소설 속 이야기 전체를 추동하는 추리 플롯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의 모델이다.), 탕누어의 책에서 이 문장을 보고는 보르헤스가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보여 주었던 책과 도서관에 관한 상상력을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하는 문장이 더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의 모든 말과 글은 언젠가 다른 곳에서 어떤 누군가가 한 번쯤 해봤음직한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 《호모 스쿨 라이터스》(살림터, 2022)라는 책을 쓰면서 ‘글쓰기의 공공성’이라는 절을 따로 두어 이에 관한 조그만 생각을 펼쳐 놓았다. 당연히 탕누어를 필두로 내세웠고, 언어의 공공성에 관한 관심을 각별하게 보여 준 한나 아렌트에게 크게 의지했다. 《호모 스쿨 라이터스》의 해당 부분을 짧게 가져와 본다.


“이제 저자들은 ‘작은 연못’의 물을 마음껏 들이마신 것을 세상에 갚아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의무나 책임, 윤리적 책무에 가깝다. 탕누어의 책에서 머리말 같은 글 첫머리에 출현하는 한나 아렌트가 책 말미에 다시 등장하면서 공공성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눈여겨 보자. 한나 아렌트는 저술 활동 말기까지 일관되게 글과 글쓰기의 공공성을 천착하였다고 한다. 글과 글쓰기에 대한 아렌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간명하게 정리된다. 당신이 써서 세계에 퍼뜨리는 글은 공공의 것이 된다.”


3


지난 4년 전 펴낸 《나의 교육 고전 읽기》를 증수한 개정증보판 《교육을 읽다》를 이번에 새로 냈다. 그동안 내 말과 글 공부를 꾸준히 추동한 빨간소금 대표 임중혁 선생님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책이다. 책은 기존 장차를 그대로 따랐고, 비교적 최근의 교육철학자인 리처드 스탠리 피터스와 이반 일리치를 마지막 장에 추가했다. 나는 이들 두 사람이 교육과 학교의 공공적이거나 사회적인 성격에 큰 관심을 기울인 점을 글 속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는 짧은 글 한 편을 쓰면서도 영원히 독자였거나 독자이거나 독자일 저자, 예외 없이 공공의 것이었거나 공공의 것이거나 공공의 것일 글이라는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공자가 《논어》 ‘술이’ 편에서 초두를 채운 말 ‘술이부작 신이호고(述而不作 信而好古)’의 정신 역시 이와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것을 전술하기만 하고 지어내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 이 책이 그렇게 쓰인 책으로 읽혔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 옷 아래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