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Apr 04. 2023

향수

가수 이동원 씨와 성악가 박인수 씨의 명복을 빌며

1


지금 나는 노래 한 곡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수 이동원(1951~2021)과 성악가 박인수(1938~2023)가 함께 부른, 시인 정지용이 1928년에 쓴 시 <향수>에 곡을 붙인 노래 <향수>이다.


2


우리는 강당에서 두어 번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4주 동안의 교육 실습생(교생)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 시커먼 남고생들과 남교사들만 청중석에 앉아 우리 노래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해 1994년 초여름의 어느 느지막한 오후에 우리 7명의 교생들은 <향수>에 두서없이 부조화한 화음을 넣어 각자 목청껏 노래했다. 강당 곳곳이 청중의 귀를 극도로 어색하게 휘감으며 이어지는 <향수> 소리로 가득찼다.


그때 나는 <향수>를 난생 처음으로 만나 그에게 진한 사랑의 키스를 퍼부었다. 그와 함께한 추억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와 나의 사랑은 20세기 말엽의 어느 조그만 도시 교외의 허름한 노래방과 문학 답사지의 조그만 잔디밭과 갖가지 고전 문헌이 고이 감춰져 있던 어느 도서관 지하의 서느런 수장고에서 깊어지고 넓어졌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그가 내 곁을 떠나거나 내 귀에 들려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나를 강하게 옥죄고 휘감은 그의 힘을 느낀다. 운명 같은 것인지 모를.


3


가수 이동원 씨와 테너 박인수 씨가 재작년과 올해 이년여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이승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얼마 전 우연히 들었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다가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어 격조히 지내던 벗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리고 그가 금방이라도 내 곁에서 사라질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갔지만 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 천상에 올라 영원히 살 수 있을 때 우리가 함께 나눈 사랑의 기억을 그곳에서 함께 나눌 수 있으려면 그를 잊어서는 아니될 터이니.


나란히 함께 가신 두 분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작가의 이전글 술이부작(述而不作)하며 신이호고(信而好古)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