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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05. 2023

4월의 담임 편지

경계 세우기를 생각하며

1


안녕하신지요. 오늘 아침 출근하여 교실에 있는 화분 몇 개를 현관 앞 비맞이 하기 좋은 곳으로 옮겼습니다. 답답한 교실 안에서 지내는 철쭉과 관음죽에게 단비의 강하고 진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화분을 옮기는데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계속 관심을 보였습니다. 학생에게 단비의 뜻을 두런두런 들려주었습니다. 선뜻 이해하지 못하기에 가물어 메마른 땅에서 지내는 식물의 입장과 심정(?)을 생각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해 보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우리 반 교실에는 철쭉 관음죽 말고도 여러 가지 꽃풀과 나무들이 있습니다. 꽃채송화 백일홍 풍란 세죽 알락카시아 가죽나무가 심긴 분들이 교실 남쪽 창턱과 그 아래에 느런히 서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정서교육'의 일환이라고 말하면서 종종 꽃과 나무가 커 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합니다. 


2


풀과 나무는 하루하루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잎으로 햇빛을 받고 뿌리로 흙 속 거름과 물을 품어 양분을 만들어 커 갑니다.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입학식 무렵 가죽나무에서 막 돋아난 어린 잎의 크기는 제 엄지손톱 크기만 했습니다. 그사이 한 달을 살아 낸 가죽나무는 시나브로 커서 잎이 아기 손바닥만하게 넓어졌습니다. 


가죽나무 잎이 소리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라는 과정을 상상해 봅니다. 노지 맨땅이 아니어서 투덜거리면서도 결코 자라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우리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풀과 나무는 햇빛과 흙 속 거름과 물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시들고 말라 가기 시작합니다. 풀과 나무가 그럴진대 우리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풀과 나무를 키우고 바라보면서 나이 어린 자녀와 학생을 키우고 가르치는 우리 어른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태도와 역할을 견지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어떤 풀은 햇빛이 과하면 잎이 타버립니다. 대다수의 나무가 뿌리 부분에 지나친 수분을 머금고 있으면 썩는다는 것은 식물 재배의 상식입니다. 그래서 햇빛과 거름과 물이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일관된 사랑과 믿음이, 따끔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자극을 주는 야단과 충고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자녀 학생들에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실 식물 재배를 활용한 저만의 정서교육에 깔린 교육철학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3


저는 지난 겨울 동양 유교철학의 쌍두마차 중 한 사람인 맹자(b.c.372~b.c.289)의 책 <맹자>에서 "人有不爲也而後 可以有爲(인유불위야이후 가이유위)"라는 구절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하지 않음이 있은 뒤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너무 중요하지만 평소 일상에서 미처 생각하지 않는 어떤 진실을 환기해 주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제 일기장 앞쪽 표지 속지와 교무실 책상 위에 놓인 독서대 전면부에 필사하여 붙여 두었습니다.


'하지 않음'을, 해서는 안 될 일이나 할 필요가 없는 일 등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해 봅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나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이 진실을 너무나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맹자>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요즈음 우리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경계 세우기'를 떠올립니다. 쉼과 놂의 경계, 일(공부)와 여가의 경계, 생생한 활기와 차분한 침묵 사이의 경계를 적절히 세우고 이들 간의 균형을 맞춰 살아가면 우리 몸과 마음이 함께 조화롭게 성장하고 발달해 가리라 믿습니다. 우리 반 모든 학생과 보호자, 부모님 모두 그렇게 행복한 나날 꾸려 가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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