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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02. 2023

마음

1


지난 주말 이틀간 지인 몇과 함께 먼 곳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두메산골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타(頭陀)’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산은 나 같은 속인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묘경과 기운으로 가득했다.


골골 계곡이 깊고 깊어 산정 벼랑 끝의 너럭바위들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노닌 듯 흔적이 그득했다. 청청한 기운 뿜어내는 공룡 등 같은 능선에는 우람하고 청청한 노룡린(老龍鱗)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멋진 예술 작품이었다.


우리는 다섯 시간여를 걸었다. 운무에 휩싸인 깊은 계곡을 따라 내려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그곳에 들어설 때의 ‘나’와 다른 ‘나’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댓 시간 전에 지나며 보았던 길섶의 소나무와 계곡 한가운데 있는 바위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옷 속에 기어들어간 벌레가 일으키는 이물감을 느낄 때처럼, 내 주변에 펼쳐진 풍경과 감정의 실타래들이 불과 몇 시간만에 생경한 대상이 되어 있었다.


2


먼 길 여행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변화무쌍을 이끄는 일은 우리 일상의 처처에 널려 있다. 숙박을 동반한 장거리 여행처럼 극적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때그때 우리 자신이 처한 조건, 주변의 상황,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 등에 따라 마음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정도로 변화한다.


나는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여 아무도 없는 집 현관에 들어섰을 때 십몇 년을 살고 있는 우리 집이 여전히 낯설다. 평소와 달리 동료 교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알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낯설게 다가온다.


이것은, 친숙하다고 생각해 내가 더 알 필요가 없고 새롭게 바라볼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결과처럼 보인다. 그렇게 해서 우리 마음은 시나브로 굳어지거나, 가끔 내 의도나 바람과는 아주 다르게 뻔뻔해지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 좋은 변화의 색깔과 방향을 고민하면서 실천하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나를 나이게 하는 마음을 온전히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3


맹자는 “사람이 집에 기르던 닭과 개가 도망치면 찾으려고 하지만 마음을 잃으면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人有雞犬放(인유계견방) 則知求之(즉지구지) 有放心(유방심) 而不知求(이부지구)]라면서 중(重)한 것을 소홀히 여기고 경(輕)한 것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그런데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가벼운가. 사실 이것은 일도양단하듯 단번에 풀 수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다양한 일들을 지나치게 단정하여 규정하거나 편을 나누고, 그에 따라 자신의 마음 자리를 정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종류에 대한 인식, 이들 사이의 관계와 관계 변천의 흐름 등에 따라 갈수록 개 돼지와 마음 사이의 구별이 흐릿해지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우리 마음의 근육을 약하게 하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4


도망쳐 나간 마음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개와 돼지가 중요하지 않으므로 개와 돼지를 찾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내 마음이 도망을 친 이유나 배경을 냉정하게 따져 보아야겠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 마음 속 깊은 곳을 직시해 는 시간과 공간이 자리해야 할 것이다. 여행이 되었든 무심한 일상의 한 순간이 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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