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
1
새 학년 초 첫 수업에 들어가면 이름 부르기와 호칭 표현에 관한 ‘특별 수업’을 한다. 교실에서 ‘너’나 ‘야’를 쓰는 대신 각자의 이름을 외워 부르겠다고 약속하고,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부를 때 ‘샘’ 같은 축약어보다 원래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는 ‘선생님’을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학기 초 몇 주 동안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에게 번갈아가며 짤막한 질문들을 몇 번이고 던지거나, 좌석표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다가 표에 적힌 이름을 보고 특정 좌석의 주인 얼굴을 연상하는 식으로 학생들을 구별하며 외운다. 학생들이 무심결에 ‘은균 샘’ 하고 부르면 ‘정은균 선생님’으로 바꿔 다시 불러 달라고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제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어보거나, 일없이 교무실에 들어와 [선], [생], [님]이라는 음절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뭐하세요’ 하고 묻는다.
나는 내가 학생들을 ‘너’나 ‘야’가 아니라 온전한 이름으로 부르고, 학생들이 나를 ‘균 샘’이나 ‘국어 샘’이 아니라 ‘정은균 선생님’이나 ‘국어 선생님’이이라고 부를 때 각자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서로를 정중하게 대하는 상호작용의 토대 위에서 지낸다고 생각한다.
2
작년부터 우리 학교 교장과 교감을 부를 때 ‘교장님’과 ‘교감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우리 학교 교장과 교감은 수업이나 학생 상담 같 교사, 곧 선생님이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두 분 다 학교 관리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고, 누가 보아도 학교 관리자로서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스스로 교장, 교감이라 여기고 그에 맞게 지내고 있으니 교장이나 교감이라는 단어 뒤에 ‘선생님’이라는 말을 덧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교육계 안에서는 교장과 교감을 함께 묶어 관리자라는 명칭을 만들어 쓰고 있다. 교장, 교감, 교사의 법적 임무를 기술해 놓은 법률 조항(「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공히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교장이나 교감에게도 선생님이나 교사라는 호칭어를 쓸 수는 있다. 그런데 교장과 교감의 주요 책무는 학교 일을 총괄하고 책임을 지고 감독하는 일이다. 직무·직책상 관리자로서, 수업을 하는 일반 교사와 구별되는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직무다. 교장이나 교감이 교사처럼 수업을 하거나 학생 상담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같은 호칭을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장, 교감의 대다수는 수업이나 학생 상담과 거리가 멀고, 그들 스스로 그렇게 여긴다. 수업을 하지 않는 관리자로서의 교장과 교감에게는 관리자라는 직무상의 의미가 있는 교장님, 교감님이라는 호칭어로 충분하다.
나는 우리나라 교장이나 교감이 수업을 포함하여 학생 상담 등 선생님이 맡아 하는 ‘교육하는’ 일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나라 교장제가 이런 기조로 바뀌거나 운용될 현실적인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교장님이나 교감님이라는 표현을 통해 교장과 교감이 관리자로서 자신의 직책에 더 충실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그나마 차선책이다.
3
지난주 우리 학교에서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제정(2023.9.1.)에 따른 학생생활규정 개정 절차의 하나로 제1차 규정개정위원회(규정개정위) 회의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 교원위원으로 참석하여 여러 학생위원, 학부모위원과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장에 들어서자 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안전인성인권부장이 만든 위원 명패가 기다란 회의용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교원위원 명패가 있는 자리로 가 앉으면서 학생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영호(가명)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부회장님 반갑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인사했다.
교감이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장은 각 위원들을 소개하면서 학생위원, 학부모위원이라는 정식 명칭을 썼다. 나 또한 토의 중에 위원들을 지칭할 때 학생위원, 학부모위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회의장을 나오는데 간만에 회의다운 회의를 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원’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시종일관 사용하면서 각 위원들 간의 평등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이에 따라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개정 절차와 방법에 관한 문제가 쟁점이 되어 1시간 20여 분 동안 꽤 뜨겁게 논의했지만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거친 언어를 주고받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4
우리는 누군가를 무엇으로 일러 말하는 것이 다만 그의 이름을 ‘중립적으로’ 부르는 것만이 아님을 안다. 학생을 부를 때 ‘너’나 ‘야’를 쓰는 교사와 이름을 쓰는 교사의 심동(心動)은 매우 다를 것이다. 교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학생과 ‘샘’이라고 부르는 학생 사이에는 교사나 학교나 교육에 대한 상이한 관점이 자리한다.
교장을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교장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의 직책이 갖는 무게가 떨어진다거나 그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떤 기관의 위원회 자리에 앉은 위원이 나이가 젊다거나 기관 밖의 외부인이라는 사실이 그의 위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흔들거나 훼손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 대신 누군가를 직위에 맞게 지칭하는 일이 당사자가 자신의 직무상 책임을 한층 엄중하게 자각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