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Aug 07. 2016

‘당근’과 ‘채찍’,  도덕적 인간 만들 수 있나

‘당근과 채찍’의 한계에 대하여

1    


나는 코끼리를 좋아한다. 동물원에 가면 코끼리 우리 앞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안에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끼리를 보고 있으면 어떤 신비감이 느껴진다. 거칠고 거대한 체구는, 단순한 우둔함보다 웅숭깊은 중후함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코끼리는 매우 ‘지적인’ 동물이다.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은 동물로 정평이 나 있다. 죽은 동료나 가족의 마른 뼈를 알아보고 코로 만지기도 하며, 수백 킬로미터에 떨어진 물가를 기억한다고 한다. 수십 년 전에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며 과거를 기억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코끼리 무리는 고도로 사회적인 조직 생활을 꾸리며 산다. 이들은, 한 무리에 속해 있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동료를 만나 인사할 때 특유의 소리를 활용한다. 다양한 상황과 장면에 맞는 서로 다른 고유의 소리를 내면서 다른 코끼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때 코끼리가 내는 소리는 일종의 ‘단어’와 같은 구실을 한다. ‘코끼리 사전’을 만들기 위해 연구 작업에 몰두해 있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코끼리는 ‘도덕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코끼리는 평생 한 마리만을 짝으로 삼는 동물이다. 2년에 닷새 정도 교미하는데, 교미 전에는 반드시 몸을 씻는다고 한다. 로랑 베그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 사회심리학 교수는 이토록 정교하고 지적이며 정조를 지키는 동물이 인간 사회에 대한 반성의 구실을 넘어 귀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르노블 교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코끼리보다 도덕적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람의 도덕성은 어떻게 기를 것인가.    


2    


15세에서 21세 사이 청소년들에게 물었다. 죄를 짓고 체포당한다면 가장 마음에 쓰이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법적 처벌의 두려움을 답한 청소년 비율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반면 55퍼센트나 되는 청소년들이 가족이나 이성 친구의 반응이 가장 두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집단(조직, 공동체)’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집단에 소속되기를 바란다. 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사회적 평판에 민감하다. 보상과 처벌이 능사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학교 공동체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학교 민주주의를 구현하려 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같은 집단 안에서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사회적 행동을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가. 고전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은 ‘당근과 채찍’이다. 가령 이타적 행동을 하면 보상을 주고 다른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한다. ‘당근과 채찍론’은 올바른 방법인가.


대다수의 실험실 연구에서는 소액의 돈이나 사탕, 과자 등 물질적 보상을 활용하면 이타적 행동이 증대된다고 한다. 문제는 보상이 없어지면 그러한 행동의 빈도가 줄어든다는 것. 그런데 칭찬과 격려와 같은 사회적 성격의 강화는 이타적 행동방식의 습득을 좀 더 안정화한다고 한다.    


물질적 보상의 난점은 그 자체가 구체적인 외적 동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동전이나 말로 하는 칭찬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이타적 행동을 단기적으로 강화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아이들을 다시 불러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동전을 받은 아이들은 돈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했고,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남들이 잘되기를 바라서 그랬다는 식으로대답했다. 이 같은 동기의 대체는 도덕적 자아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로랑 베그(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부키, 118쪽.   

 

이런 실험도 있다. 7~11세 아이를 둔 엄마들이 자녀의 이타심을 계발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과 만들기를 하면서 함께 노는 활동을 했다. 아이들 일부는 봉사활동의 보상으로 작은 장난감을 받았다. 나머지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보상을 받은 아이들은 44퍼센트가 참여 의지를 보였다. 아무 보상이 없었던 아이들은 100퍼센트가 또 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라는 개념이 있다. 행동 동기의 원천이 각각 외부와 내부에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보상은 외재적 동기를 자극한다. 물질적 보상이 따르는 행동은 진정한 자아를 나타내는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반면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 이루어지는 행동은 내재적 동기와 관련된다. 이때는 그런 이타적 행동의 가능성이 커진다. 선한 행동이 자기 인격의 반영이라는 생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3    


다음과 같은 실험을 보면 보상이 진정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미국 듀크 대학의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인도의 실험참가자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의 실험을 수행했다. 솜씨, 논리력, 기억력을 요하는 과제들을 내주고 그 보상으로 세 집단 각각에 평균적인 하루치 급여, 2주일분 급여, 5개월분 급여를 지불했다. 그 결과 가장 높은 보상은 가장 좋은 성과가 아니라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다고 한다.


로랑 베그에 따르면 높은 보상이 뛰어난 성과로 연결되는 경우는 극도로 단순한 작업이 과제로 주어졌을 때밖에 없다. 약간이라도 사고력과 창조성이 개입되는 일에서는 보상과 성과가 반비례했다고 한다.


보상이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 못하며, 인간의 행동 방식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함을 입증하는 증거는 수업이 많다고 한다. 미국 10여 개 기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외근을 할 때마다 안전벨트를 매면 소정의 보상을 지급하기로 했다. 6년 동안 100만 건이 넘는 안전벨트 착용 사례를 관찰한 결과 보상에 기반한 안전벨트 장려운동은 비효율적이었을뿐더러 착용률을 더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작가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보상의 난점을 잘 보여준다. 집필 시작 전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 누리게 될 금전적 보상이나 명성을 상상한 작가지망생들의 글은, 그런 상상을 하지 않은 사람의 작품에 비해 대체로 창의성이 떨어졌고 자신의 예전 작품에 비해서도 독창성이 감소했다고 한다.    


동기 부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독립적으로 실시된 130종의 연구를 종합해 아주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사탕과 과자에서 소액의 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질적 보상은 진정한 동기 부여를 망친다고 말이다. 도덕적 행동을 포함해 일부 행동방식을 고양하기 위해 보상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행동 그 자체에 느끼는 매력과 즐거움을 떨어뜨린다. - 로랑 베그, 위의 책, 124쪽.    


4    


부모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것을 힘들어하는 보육교사가 있다고 하자. 이스라엘 대도시 하이파에서 6개 어린이집 원장들이 이런 보육교사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올 때마다 소정의 벌금을 물게 했다.


놀랍게도 부모들이 늦게 오는 빈도가 2배까지 늘었다고 한다. 돈만 지불하면 늦게 데리러 가도 되는 ‘권리’를 마음껏 활용한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일찍 데리러 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돈을 주고 시간을 더 살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고 한다. 물질적 처벌이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가져온 사례다.

 

호주 멜버른 대학의 정치학자 존 브래스웨이트(John Braithwaite)는 ‘회복적 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법에 대한 존중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사회적 편입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처벌이 강하면 잠재적인 위반자가 처벌을 두려워하여 위반 행동을 자젤할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관에 의하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할수록 재범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도덕적 행동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구체적 보상에 대한 기대에 크게 좌우된다는 생각은 자못 의심스럽다. 반명에 위반의 사회적・관계적 결과는 확실히 인간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긍정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소외를 두려워한다는 근본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도덕규범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처벌도 개인이 속한 사회의 합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개인이 자신이 어느 법을 어기면 어떠어떠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예측 때문에 위반을 자제하거나 반대로 감행하는 것은 아니다. - 로랑 베그, 위의 책, 132쪽.    


* 본문에 있는 여러 개념과 사례들은 로랑 베그의 책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서 빌려왔다.

* 제목 커버의 배경에 있는 코끼리 사진은 한국어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C%BD%94%EB%81%BC%EB%A6%AC)에서 빌려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