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

호모 스쿨 리더스 (1)

by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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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글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고, 그다지 재미있는 일도 아니다. 짧은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쓸 수 있는 평범한 글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소설이나 만화 같은 장르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함께 노는 등의 활동은 본능처럼 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애초 인간이라는 종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과정 속에서 진화해 온 까닭에서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또래들과 대화하거나 놀이할 때 인위적이거나 의도적인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읽기와 쓰기 활동은 이와 다르다. 읽기와 쓰기를 익숙하게 수행하려면 상당한 시간 동안 의식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에 걸맞게 일정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읽기와 쓰기를 익히는 데 수반되는 배움이나 학습은 일회적이지 않고 평생 동안 이어져야 하는 활동들이다. 읽기와 쓰기를 멈추는 순간 그것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나 태도는 자연스럽게 퇴조하기 시작한다.


읽기와 쓰기가 긴 시간과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므로 그저 힘들고 지루하기만 하거나 재미가 전혀 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감정을 고양하고 의식을 심화하며, 인간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는 일은 읽기와 쓰기 과정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아주 많다. 이러한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것이어서,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들고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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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가”라는 흥미진진한 부제가 붙은 책 《문해력 격차》(2025)는 읽기나 쓰기를 단순히 재미나 효율성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근거 사례들은 우리가 종이 책을 읽고 글을 직접 쓰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말해 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2023년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방영한 <책맹 인류>라는 프로그램에 흥미로운 실험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실험은 초등학교 5학년 한 학급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책으로 읽게 하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제작팀은 학생들에게 40분간 책을 읽거나 영상을 시청하게 한 다음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는 과제 수행과 제목과 주요 소재와 줄거리를 묻는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그림 그리기 과제에서 상상력과 개성이 넘치는 그림을 그리고 인터뷰에서 질문에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응답한 아이들은 책을 읽은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이들책 그룹과 애니메이션을 본 아이들 그룹과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가령 책의 제목을 묻는 인터뷰 질문에서 책을 읽은 아이들은 제목을 모두 기억했으나 애니메이션을 본 아이들 중 제목을 기억한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작품의 주요 소재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무 이름을 물었을 때도 책을 읽은 그룹의 아이들은 대부분 정확하게 대답했으나 애니메이션을 시청한 그룹의 아이들 중 정확하게 대답한 아이는 한 명에 불과했다.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을 시청하는 일은 책을 읽는 일보다 훨씬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행위의 능동성 측면에서 보면 책 읽기 방식이 영상 시청 방식보다 훨씬 더 유리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제작팀은 이를 1990년대 중반 이후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인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설명하였다. 학습자에게 적당한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를 느끼게 하는 조건이나 상황들이 오히려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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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읽기와 쓰기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갖는 교육적인 의미와 가치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전자적인 방식의 책 읽기와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는 글쓰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읽기와 쓰기가 갖는 교육적인 의미와 가치는 더욱 뚜렷하다.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만약 교육의 방점이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놓인다면, 우리는 어떤 책의 요약본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전문적인 작가가 저술가 뺨치는 원고를 몇 초만에 내놓는 인공지능을 통해서 읽기와 쓰기 교육의 목표에 쉽사리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에 환호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 수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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