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스쿨 리더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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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덴마크제 최신 타자기인 몰링 한센 타자기를 주문해 집에서 받은 것은 그의 나이 38살 때인 1882년 첫째 주였다. 그로부터 3년 전인 1879년 니체는 건강이 악화하여 바젤대학교 철학 교수 자리에서 강제 사임해야 했다. 당시 니체는 20대 초반 프로이센 군대에서 기병으로 복부할 당시 낙마해 입은 부상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심신이 무척 힘든 상태였다. 그 당시 니체는 사는 것 자체가 끔찍한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유럽 전역을 배회하다가 1881년 말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 다락방을 하나 빌렸다. 편두통과 류머티즘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고, 무엇보다 점점 나빠지는 시력이 심각했다. 책장에 시선을 고정하는 일 자체가 힘들었고, 글을 쓸 때도 심한 근시로 인한 나쁜 시력 때문에 안경을 두 개나 겹쳐 써야 했다고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니체 평전에서 니체가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를 때까지 꼼짝 않고 쓰고 또 썼다.”라고 썼다. 조만간 글쓰기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덮쳐왔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타자기를 주문했다.
그 몇 해 전, 코펜하겐 왕립농아협회 회장이었던 한스 라스무스 요한 몰링 한센(Hans Rasmus Johann Malling-Hansen)이 개발한 타자기는 당시 발명된 타자기 중 가장 빨랐다고 한다. 대문자와 소문자, 숫자와 인용부호를 표기할 수 있는 52개의 키가 과학적 설계 기법에 따라 동심원 모양으로 기기의 맨 위에 돌출해 있었다. 충분히 연습하면 1분에 800개의 문자까지 타이핑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발명된 타자기 중 가장 빠른 성능이었다고 한다. 결국 니체는 타이핑 기술을 익히고 나서 눈을 감은 채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었다.
니체는 몰링 한센의 타자기에 “타자기는 나와 같은 물건”으로 시작하는 헌시를 썼다. 니체의 가까운 친구로 작가이자 작곡가인 하인리히 쾨젤리츠는 니체가 타자기로 써 내는 글들이 변화했음을 알아챘다. 산문은 좀 더 축약되고 간결해졌으며, 새로운 힘을 느끼게 했다. 쾨젤리츠는 니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음악과 언어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펜과 종이의 질에 의해 종종 좌우되지.”라고 썼다. 니체는 이에 대해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라고 답했다.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는 타자기라는 기계의 힘이 불가사의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 종이에 찍히는 단어로 전이되는 듯했다고 평했다.
2
영국 시인 엘리엇(1888~1965) 역시 니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엘리엇은 1916년 미국 작가 콘래드 에이킨(1889~1973)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타자기로 글을 쓰면서 나는 과거 그렇게 사랑했던 긴 문장을 쓰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현대 프랑스 산문과 같은 짧은 스타카토식으로 바뀌었다. 타자기는 명료함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미묘함 역시 권장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니체가 타자기라는 최신 도구를 경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엘리엇은 타자기에 약간의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이 명료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견을 달고 싶지 않지만, 미묘함이 주는 독특한 매력 역시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엘리엇은 타자기로 글을 쓸 때 문장과 문장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문장에서 풍겨 나오는 미묘함은 아무래도 짧고 단순한 문장들을 특징으로 하는 단문체보다는 길고 복잡하여 중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장문체나 만연체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타자기는 엘리엇의 문체를 바꾸었지만 긴 문장을 사랑했던 엘리엇의 생각까지는 바꾸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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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나 엘리엇이 당시로서는 첨단 기계인 타자기로 글을 쓰면서 경험한 일은 하나의 도구가 인간 의식과 활동의 결과물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방증한다. 니체와 엘리엇의 시대는 손에 쥔 펜으로 글을 쓰고 종이 책을 읽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타자기는 사람들에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펜 글씨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감, 가지런하고 정돈된 글자체와 문단 구분 방식 등은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감각 활동을 동원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빨라진 속도감에 맞춰 문장을 분절하고 길이를 조절하며 글을 쓸 필요성이 생기고, 글을 읽을 때 역시 정형화한 페이지 구성 방식 덕분에 시선 처리의 변화를 가져와야 했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 식으로 말하면 타자기는 손이 확장된 도구이다. 매클루언은 “우리의 도구는 이 도구가 그 기능을 증폭시키는 우리 신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결국 마비시키게 된다.”라고 말했다. 타자기는 손을 마비시킨다. 망원경은 눈을 마비시킨다. 자동차는 다리를 마비시킨다. 매클루언의 진단은 우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신체의 확장판 모두에 적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컴퓨터나 인터넷에 기반해 작동하면서 인간의 뇌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인공지능(AI)은?
[참고 자료] 니체와 엘리엇의 타자기 일화는 니컬러스 카(2020),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44~46쪽, 335쪽과 이비에스(EBS) 프로그램 <지식채널e>의 ‘니체와 타자기’(3193화, 2021년 9월 1일 방영) 등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