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스쿨 리더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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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 글쓰기 수업이나 수행평가 활동을 아날로그 방식에 따라 실시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해 왔다.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 지피티(Chat GPT)가 나온 뒤부터는 이 원칙을 좀 더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다. 학생들은 줄칸 형식의 종이 원고지에 볼펜이나 연필을 이용하여 글을 쓴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디지털 도구들은 엄격하게 경계를 세워 쓰도록 한다. 설명하는 글 쓰기 단원에서 내용 생성을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거나 토론 단원에서 논제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는 등 특정 학습 활동을 할 때 시간 제한을 둔다.
작년 말 학생들과 학년 교과 문집 편집 작업을 하면서 겪은 일은 내게 각별한 경험이 되었다.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이 본격화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학교교육이 어떤 흐름을 따라 변화해 갈 것인지 가늠해 보게 했다. 글이란 무엇이며, 글쓰기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글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핵심은 무엇인가? 교실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의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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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7년부터 학년 교과 문집이나 학급 문집을 만들어 오고 있다. 한 해 동안 국어 수업 시간 중에 쓴 글들과 백일장이나 독서 논술 행사에 참여하여 써 낸 글들이 문집에 들어간다. 작년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입학 후 3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함께해 온 학생들이었다. 졸업을 기념하는 특별한 색깔의 원고 한 편을 문집에 더하고 싶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간 쓴 글들을 개인 노트북에 입력하여 편집하게 한 다음 곧장 한글 프로그램을 열어 중학교 3년을 회고하는 글 한 편을 쓰도록 주문했다.
학생들 대다수가 원고 입력을 마치고 회고 글을 쓰던 중이었다. 평소 글쓰기에 어려움을 호소하곤 했던 몇몇 학생이 여유를 부리며 놀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을 완성했는지 물었다. “네, 모두 썼습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고 당당했다. 노트북 화면에 있는 글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회고 글이니 글쓴이 자신의 고유한 경험이나 그에 관한 소회를 포함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을 억누르고 말했다. “지피티가 쓴 글이구나.” 학생들이 당황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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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약간의 감식안을 동원하면 인공지능이 써 낸 글의 문체나 특징을 알아챌 수 있다. 다음은 이 글을 쓰다가 챗 지피티에 들어가 “중학교 3년을 회고하는 글 한 편을 써 주세요.”라는 요청문을 입력하자 컴퓨터 모니터에 5초만에 뜬 글의 앞쪽 두 문단이다.
중학교 3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막연히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초등학생이 교복을 입고 교문을 들어서던 날부터, 이제는 그 교복이 조금 작게 느껴질 만큼 성장한 지금까지의 시간이 한 장면씩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의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교실도, 과목도, 사람도 새로웠다. 쉬는 시간 종소리는 너무 짧게 느껴졌고, 수행평가는 왜 이렇게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잘 지내보자”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던 기억이 난다. 실수도 많았고, 괜히 긴장해서 별일 아닌 일에 상처받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많이 서툴렀다.
챗 지피티는 이 글을 전체 5개 문단 분량으로 구성하였다. 개요로 정리하면 처음 1개 문단, 가운데 3개 문단, 끝 1개 문단으로 재분석할 수 있다. 개괄적인 내용의 첫 문단, 중학교 1~3학년에 각각 한 문단을 할애하여 구성한 가운데 3개 문단, 앞쪽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미래의 삶에 대한 다짐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문단 등 전체 구성 방식이 누가 보더라도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이나 문법적으로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 또한 없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자마자 기름기가 넘쳐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막상 한 입 베어 먹어 보면 정체 모를 느끼한 맛이 느껴지는 가공육 요리가 떠올랐다. 지피티가 토해 낸 글에는 글쓴이의 고유한 경험이 들어 있지 않다. 글쓴이 특유의 개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문체가 없다. 한 마디로 지피티가 쓰는 글은 인간미가 부족하다. 나는 문법론이나 작문론 차원에서 조금 이상해 보이지만 그 글을 쓴 학생 자신의 독특한 개성과 태도를 은연중에 보여주는 소박한 문장들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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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시간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글쓰기의 위험성(?)에 대한 짤막한 특강을 실시했다. 디지털 도구가 지배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으로서 끝까지 내려놓지 말아야 하는 어떤 경계선을 떠올렸다. 경험을 떠올려 그것을 담아 낼 단어와 문장을 건져 올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힘듦에 굴복하여 무작정 기계에 의존할 때 우리 뇌와 사고 능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나 에스엔에스(SNS)로 보내는 간단한 인사말이나 안부조차 ‘자동 완성’ 기능으로 만들어진 문장이 대신하는 시대이다. 의례적으로 보내는 인사조차 마음을 담은 단어나 구절 한두 개가 있으면 사람 마음이 움직인다.
각 반 반장들에게 학급별 원고를 받아 전체 편집 원고로 조판하면서 챗 지피티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받은 것처럼 보이는 회고 글 몇 편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나는 이런 글들을 지도교사 직권으로 과감하게 삭제했다. 글쓰기 과제나 활동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의 전권을 인공지능에게 위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스스로 기계의 노예가 되겠다는 항복 선언이다.
교육의 힘과 효용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 내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글을 쓰고 그것들을 모아 문집으로 만들어내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생각, 학생들에게 의지를 갖고 힘주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그런 것이다. 나는 자신의 발품과 손품을 직접 팔아 책 한 권을 스스로 찾아 읽고, 손가락 사이에 펜을 모아 쥐고 글자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채워 나갈 줄 아는 사람이 삶과 현실에 좀 더 진실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