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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09. 2016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변혁 실천’ 기제로서의 학교와 교육, 어떻게 만드나

1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실천교육학과 비판적 교육학의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애플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석좌교수는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2014, 살림터)에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교육을 그저 지배 집단을 위한 사회화 도구나 재생산 공정쯤으로 보는 이들에게 애플 식의 ‘교육을 통한 세상의 변혁’은 몽상가의 넋두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교육의 중립성 신화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는 불온한 마타도어처럼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럴까.  

  

교육은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에 분명하게 작용한다. (중략) 학생들은 우리가 학교라고 부르는 건물 안에서 그들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과 자신과 같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관리하는 감정적인 노동을 수행하면서 권위의 관계를 체화한다. 이러한 핵심적인 조직(학교)의 내용과 구조를 변혁하는 것은 우리 행동의 준거에, 우리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에,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관련된 태도와 가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 마이클 애플(2015),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살림터, 55~56쪽.


애플 교수는 학교를 인종과 계급, 젠더(gender), 성 정체성, 능력, 종교 등이 벌이는 다양한 역학 투쟁의 중심에 위치한 공간으로 규정한다. 학교와 교육과정은 집단 기억과 집단 망각을 놓고 벌이는 격렬한 투쟁의 장이다. 학교는 지배 관계를 반영하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거대한 강줄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실천의 공간이다.


학교와 교육을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의 공간과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진보 좌파’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애플 교수는 미국 우파가 ‘월마트’로 대변되는 거대기업체를 활용해 우파적 사회 변혁을 이룬 사례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이었을까.    


2    


월마트는 미국 최대 기업이다. 5천 개가 넘는 매장에서 1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한다. 그들은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싼 값에 팔고, 종업원들에게 ‘가족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이런 점만 보면 모범 기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월마트는 노조에 적대적이며 종업원들의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는 악덕 기업으로 악명이 높다. 미국 역사학자 해밀턴에 따르면 월마트는 엄청난 시장 지배력, 세련된 기술, 저임금-저가격 사업모델을 통해 20세기 마지막 사반세기에 등장한 반노조, 규제철폐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이같은 월마트의 급성장 뒤에 수많은 대중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지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자신들이 평범한 노동자이자 소비자에 불과한 대중들은 바보인가. 애플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월마트는 주로 미국의 남부 지방에 위치한 백인 위주의 농촌 지역 및 소도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중략) 그곳 사람들은 개인적인 노력과 확고한 종교적 신념을 통해 자신들이 스스로 월마트를 만들었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중략) 월마트가 경제적인 공룡으로 성장하고, 착취적인 노무관리와 납품업체에 대한 처우로 인해서 끊임없이 소송을 당하고 있지만,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쇼핑을 한다.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은 월마트가 위에서 언급한 덕목들을 체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시기에 월마트는 물건 가격을 내린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곳에서 쇼핑하는 것이야말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애플(2015), 위의 책, 256쪽.    


월마트는 ‘교육’을 ‘사업’의 관점에서 보고 이와 관련된 제도적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기업(활동) 중심으로 학교교육 변혁을 위한 실천의 틀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실행했다. 지역 대학 기반 친기업 단체인 SIFE(Students in Free Enterprise, ‘자유기업에 있는 학생들’)나 월튼 스칼러스(Walton Scholars: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과 그 아내가 1985년에 설립한 월튼 스칼러십의 장학생)라는 프로그램 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뚜렷한 목표와 의도를 갖는다. 월마트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제 제도’에 가까운 자본주의의 비전과 자유무역의 복음, 기독교 비즈니스 원칙 등 보수적인 기독교 우파 활동가들의 믿음을 대중에게 설파한다. 미국을 벗어나 아메리카대륙에 있는 여타 제3세계 국가들에도 이런 믿음을 전파한다.  

   

3    


한풀 꺾이긴 했지만 신자유주의에 터한 교육 시장화와 사영화 논리의 위세는 여전하다. 교육 수요자(소비자), 선택권, 자율적 결정 등 우파의 논리에 함몰돼 있는 이들이 많다. 시장주의가 절대불변의 가치가 되었고, 합리적 개인이 모든 판단과 결정의 절대적인 ‘척도’처럼 대접받게 되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교묘하게 착근되고,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 노골적으로 확장된 보수 우파의 자유주의 ‘마타도어’가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진보 좌파가 이런 현상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다. ‘신자유주의 시장화 정책은 안 된다’는 구호를 외치는 일 외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가령 진보 좌파는 애플 교수가 던진 다음 질문의 취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중들이 왜 (사영화나 시장화 같은-필자) 보수 우파의 논리나 계획을 그럴 듯하게 받아들였는지 알고 있는가?  


애플은 월마트 이야기가 보수주의 근대화 세력이 어떻게, 그리고 왜 사회 변혁의 장소나 도구로 학교를 성공적으로 이용하였는지 우리가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았다. 애플이 건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수십 번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진보주의자들과 비판적 교육자들은 대중들이 그러한 정책을 수용하는 이유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 없이 현존하는 교육, 문화, 경제 정책의 위험성에 대한 수사적인 논쟁에 매몰되곤 한다. 우리는 싫든 좋든 문화적 작업에 대해서, 운동을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우산 밑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캠페인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현실의 정책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파들에게 배울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 마이클 애플(2014), 위의 책, 266쪽.


4    


얼마 전 정부 여당 일각에서 주최한 교육 관련 세미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전교조 교사이자 활동가로서 보수 우파가 주도하는 토론에 ‘들러리’ 서는 게 아느냐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학교 현장의 실상을 가감 없이 전해 달라는 행사 준비 실무자의 곡진한 요청과 ‘호기심’에 밀려 참석했다.


‘현장 중심・아래로부터의 교육 개혁’, ‘교육개혁위원회 발족’, ‘혁파 수준의 교육부 쇄신’ 등등 ‘놀라운’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도 많이 들어 어찌 보면 상투적지만 수년째 진보 좌파 진영에서 되풀이해 강조해 온 ‘급진적인’ 주장들이다.


어떤 ‘개혁’인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예의 세미나에서 나온 담론들은 분명 의미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개혁의 ‘주체’와 그들의 숨은 ‘의도’다. 정부 여당이 하루아침에 진보 좌파가 됐을 리 없다. 개혁과 쇄신 담론의 밑바탕에 여전히 보수 우파의 논리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점.

그들의 담론이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적용되기 시작하는 순간 진보 좌파가 들러리 서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때로 진보 좌파가 보수 우파를 배우기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제목 커버 이미지는 마이클 애플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석좌교수 사진이다. 인터넷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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