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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07. 2016

최초의 말은 있다? 없다?

언어의 기원 (1)

1


“인류 화석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화석을 발굴할 때 쓰는 연장들 옆에 카세트 녹음기가 있었더라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마이클 코발리스(Michael Kobalis)라는 미국 언어학자가 최초의 언어에 대한 열정을 토로하며 쏟아낸 하소연이다. 인류 최초의 명사가 저 깊은 지층 속 어딘가에 담겨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룡 발자국처럼, 미지의 조상이 처음으로 내뱉은 문장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눈 앞으로 다가선다면 또 얼마나 멋질까. 언어의 기원을 탐색하려는 언어학자에게는 어떤 것도 없다. 에게 있는 것은 이제는 사라져 영원히 들을 수 없는 최초의 소리에 대한 아쉬움뿐이다.


안타깝게도 말은 공기 중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모순 덩어리다. 한 마디 말은, 세상에 태어나 사라지기까지 생애가 1초도 안 된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해주는 도구이면서도 가장 덧없이 한순간에 소멸한다.

그런데도 우리 상상력은 부질없이 최초의 한 마디 말을 뒤쫓는다. 맨 처음 인간 세상에 태어난 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것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아이들이 어른처럼 매끄럽게 말하기 위해서는 10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미세한 근육 조절 기능을 활용하여 입술이나 혀, 입, 호흡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데 긴 시간과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마디 말은 수초도 살지 못하고 사라진다. 실상 우리가 내뱉는 말이란, 폐에서 올라와 성대를 거치면서 일정한 진동수를 갖게 된 후 입술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기의 흐름일 뿐이다. 그렇게 사라져간 최초의 한 마디 말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2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인 1866년, 프랑스의 파리언어학회는 아주 이례적으로 연구 방향과 관련한 성명 하나를 발표한다. 언어의 기원에 관한 연구 중단을 선포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파리언어학회는 언어의 기원이나 보편 언어의 발생과 관련된 어떤 논문도 심사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정관에 기록한다. 당시로서는 단호한 조치였다.


파리언어학회가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19세기 유럽 학문계에는 과학적 실증주의가 풍미하고 있었다. 실증주의는 과학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증명되는 사실만을 온전한 학문적 지식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파리언어학회는 최초의 말이나 언어의 기원 등과 같은 연구를 객관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 존재를 밝힐 수 있는 마땅한 자료나 실험 방법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파리언어학회가 발표한 성명의 파장은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언어학회가 성명을 발표한 지 6년만인 1872년에 영국의 런던문헌학회도 파리언어학회의 뒤를 이었다. 런던문헌학회의 조치 역시 과학 연구에서 확실한 증거를 중시하던 당대의 학문적인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후 언어의 기원이나 출현 과정과 같은 연구 주제는 점점 비과학적이고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학문적으로 어떤 의미나 의의도 찾을 수 없는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최초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도 급격하게 식어갔다.


19세기 말 유럽의 두 학회로부터 비롯된 언어 기원과 진화 연구 분야의 한파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 차가운 분위기는 한 세기 정도가 지난 후에 바뀐다. 그 변화는 1990년대 중반에 창립된 언어진화학회의 출현이 큰 힘을 발휘했다. 그 중에서도 이 학회를 중심으로 2년마다 열리는 국제 회의가 큰 몫을 차지했다. 이곳에 모인 여러 학회 소속의 연구자들은 언어의 기원이나 진화 연구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서로 활발하게 교류한다.


호주 언어학자인 크리스틴 케닐리(Christine Kenneally)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간 이루어진 커다란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언어의 발생이나 기원, 진화에 관련된 논문은 채 100편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를 지나면서 연구 논문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현재까지 축적된 관련 논문 수는 1,000여 편이 넘는다고 한다. 언어의 기원과 발생, 진화에 관한 연구의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놈 촘스키(Noam Chomsky, 1938~현재)는 1960년대에 변형생성문법을 주창하면서 언어학에 일대 지각 변동을 몰고 온 세계적인 언어학자이다. 그는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릴 만큼 전 세계 학문계와 지성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언어진화학자들은 그런 촘스키가 2002년 하버드 언어진화학회의 토론자로 참여한 일을 아주 커다란 변화로 받아들인다. 그 전까지 촘스키는 언어 진화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의 이면에는 언어학과 그 인접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이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 능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기원이나 진화 과정에 대한 실마리가 여러 연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원을 탐색하는 언어학자의 두 손에 인접한 과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 성과가 든든한 나침반처럼 쥐어지게 된 셈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6,000여 종을 훨씬 넘는 언어가 쓰이고 있다. 이들의 최초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그 최초의 언어는 과연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쟁은 매우 뜨겁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이 맞서 있다. 세계 언어가 하나의 조상 언어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는 ‘단일언어기원설’과,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언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다지역기원설’이 그것이다. 오늘날 언어진화론 분야에서는 후자가 좀 더 지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최초의 말에 대한 관심은 저 먼 옛날에도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최초의 언어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았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옛사람들이 언어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고대인은 오늘날 우리와 달리 말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말에 신성한 힘이 담겨 있다고 여겨 주술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고대 부족의 제사장은 동시에 의사이기도 했다. 의사로서의 제사장이 병을 치료하는 데 썼던 도구가 바로 말이었다. 말의 주술성은 우리나라 무당의 굿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무당은 말을 통해 의뢰인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고대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신이 내려 준 것으로 생각했다. 신탁(神託)이 대표적인 예이다. 말과 신이 연결되는 사례는 이밖에도 아주 많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따오기 새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지혜의 신 ‘토트(Thoth)’가 말을 만들어 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인도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리그베다에서는 우주를 만든 ‘브라흐마(Brahma)’ 신의 부인 ‘사라스바티(Sarasvati)’가 언어를 만든 주인공으로 전해진다. 중동의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나부(Nabu)’ 신이 그 역할을 맡는다. 이에 걸맞게 ‘나부’ 신은 진흙 서판(書板)이나 철필(鐵筆) 등을 자신의 상징물로 거느리고 있다.


언어의 기원을 신들의 세계와 연결 짓는 고대인의 관점은 그야말로 ‘신화적인’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엄밀히 말해 학문적인 뒷받침을 받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화 시대를 지나 역사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좀 더 ‘인간적인’ 관점에서 최초의 언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최초의 주인공은 기원전 7세기 경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프삼티크(Psamtik, B.C. 664~610) 황제였다.


프삼티크 황제는 먼저 그 어떤 언어에도 노출되지 않은 아이가 처음으로 내뱉는 말이 최초의 언어일 것이라는 그럴듯한 가정을 세웠다. 이 가정을 밝히기 위해 그는 두 명의 갓난아기를 깊은 산속 오두막에 가둔다. 그 불행한 아기들이 먹을 음식과 옷은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 충직한 양치기로 하여금 가져다주게 했다. 아기들을 그 어떤 말로부터도 고립된 채 살게 하기 위해서였다.


프삼티크 황제의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자, 그 비운의 아기 주인공들이 최초로 내뱉은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Herodotus)는 그 말을 ‘베코스(bekos)’로 기록해 놓았다. ‘베코스’는 당시 프리기아어(Phrygia)로 ‘빵’을 뜻했다고 한다. 프리기아어는 오늘날의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쓰인 말이었다. 프삼티크 황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프리기아어가 인류 최초의 말이다.”


프삼티크 황제의 ‘후예’는 그 뒤에도 몇 명 더 있었다. 12~13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을 통치했던 독일 호엔슈타우펜(Hohenstaufen) 왕조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7개 국어에 능통한 이른바 언어 천재였다. 프삼티크 황제와 마찬가지로 최초의 언어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남달랐던 그 또한 두 명의 아기를 모처에 가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불행한 아기들은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죽어버린다.


200년이 지난 후, 또 한 명의 ‘프삼티크족’이 출현했다. 이번에는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가 그 주인공이었다. 아이들은 그의 명령으로 감옥에 갇힌 채 지냈다. 실험이 끝나자 그는 아이들이 ‘아주 훌륭한 히브리어’를 말했다고 했다. 히브리어는 기독교의 종주국인 이스라엘의 공용어였다. 기독교도들이 수세기 동안 히브리어가 인류 최초의 언어라고 자랑한 이유다. 이밖에 중국어나, 예수의 모어(母語, mother tongue)인 아람어가 최초의 언어라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었다.


인간에게 말을 선물해 주었다는 신들의 이야기나 ‘프삼티크족’의 실험 사례는 언어의 기원과 관련한 공통적인 전제 한 가지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의 최초 언어이자 뿌리에 해당하는 하나의 원어(原語)가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는 그 하나의 원어로부터 가지를 쳐 나온 것이 된다. 앞서 소개한 이른바 단일 언어 기원설이다.


단일 언어 기원설은 성경의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노아의 대홍수’ 사건 이후 사람들은 여호와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아 스스로를 지키기로 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여호와 신은 인간들의 말을 어지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자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탑 쌓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탑이 ‘혼란, 혼동’이라는 뜻의 ‘바벨’이라는 이름으로 적히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계속)


* 제목 커버 배경 이미지는 언어학자 놈 촘스키다. 한국어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C%97%84_%EC%B4%98%EC%8A%A4%ED%82%A4)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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