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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12. 2016

“담배 끊는 게 쉽지 않아요, 선생님!”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5)

1     


수업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 잠깐 교무실에 다녀온다던 명수(가명) 주변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손가락 끝을 쥐고 맡아보니 담배 냄새가 났다. ‘담배 피운 거냐’고 물었다. 대뜸 ‘억울하다’고 했다. 앞으로 불러냈다. 손가락 끝에 코를 대보니 여전히 냄새가 났다.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물어보니 아침 등굣길에 피웠다고 했다. 거짓말처럼 들렸다. 표정을 보더니 ‘믿지 못하시네’를 연발했다. 다시 한 번 손가락 끝을 코에 갖다 댔다. 헷갈렸다. 명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냄새가 그닥 진하지 않았다. 과거 다년 간의 흡연 ‘이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담배를 막 피운 뒤에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일단 믿기로 했다. 아침에 피운 담배를 어떻게 구했는지 물었다. 구체적인 장소와 상황을 말해 준다. 미리 ‘준비’한 듯 술술 나온다. 멀쩡한 담배 개피가 길거리 담뱃갑에 있을 수 있을까. 미심쩍었지만 그대로 들었다. 하루에 피우는 양을 물어보니 10개피 정도라고 한다. 적지 않은 양이다. 차분하게 담배가 주는 폐해를 말해 주었다. 조용히 듣던 명수가 말했다.


“담배 끊는 게 쉽지 않아요, 선생님!”     


2     


명수는 2학년에서 손꼽히는 장난꾸러기들 중 하나였다. 개학식 날 명수는 제 단짝인 승철이(가명)와 우리 반 줄 맨 뒤쪽에 앉아 있었다. ‘허세 쩌는’ 중2 특유의 포즈를 취한 채로였다. 두 다리는 쩍 벌린 채 엉덩이는 의자 끝에 대고, 등받이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시건방지게 보이는 자세였다.


교사석에 앉아 있던 나는 명수와 승철이에게 몇 번이나 눈길을 주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앉음새를 살짝 고쳤다. 조금 있다가 돌아보면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저 두 녀석 있잖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님 하나가 옆구리를 살짝 건드렸다. 나보다 중학교 근무 경력이 몇 년 많은 또래 교사였다.


“맨 뒤에 앉은 녀석들?”
“응. 2학년 복도파들 중 하나야.”
“복도파?”


아직 ‘복도파’를 알기 전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휘젓고 다니며 떠들고, 얘들에게 장난 거는 놈들이지. 말썽쟁이들이야. 잘 봐 둬.”


그로부터 보름쯤 지났을까. 명수가 처음으로 ‘무단 지각’을 했다.


“무슨 일 있었니?”
“······.”
“늦잠 잔 거야?”


명수는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퍼뜩 ‘드디어’가 떠올렸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3     


아무리 생각해도 꽤 조숙했다. 이른바 사춘기를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부터 겪은 것 같다. 그때 나는 중2병에 해당하는 온갖 증세를 다 갖고 있었지 싶다. ‘쩌는’ 허세는 기본이었다. 과대망상적인 상상이 심각했다. 갑작스레 온 가슴을 충일하게 하는 ‘센티멘털’은 음유가수나 서정시인 수준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열두어 살의 나는 운동장에 홀로 쪼그려 앉아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봄날이거나, 고된 가을운동회 연습이 끝난 후다. 운동장 모래흙 위에 손가락으로 이름 석 자를 천천히 쓴다. 옆에 연월일을 또박또박 적는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험한 세상 사는 일이 급격하게 서러워진다. 따뜻한 이 봄날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쪼그려 앉아 있는가. 훨훨 나는 나비가 되고 싶다. 뻔한 가을운동회 따위는 또 무어란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따위 것이 생겨나서 여리고 감수성 예민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그냥 모든 것 때려치우고 어디로 가버리고 싶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땅바닥에 새겨 넣은 이름과 연월일 옆에 ‘죽고 싶다’를 쓴다. ‘바다로 가자’를 쓰기도 했을까. 잠시 후 나는 그것들을 황급하게 지운다. 대신 ‘남자 정은균 1980년 ○월 ○일 이곳에 살다’를 새겨 넣는다.


언젠가, 정말 저 먼 미래의 어느 날엔가, 내가 새겨 넣은 이 글자들에 밀린 모래와 돌흙들의 기울기와 마찰도를 근거로 내가 새긴 문구들을 재구해 낼 후손들과, 그들의 최첨단 기술을 기대하면서, 나는 더 멋진 문구를 머릿속으로 궁리한다. 그때 나는 과대망상증 환자였을까. 그랬다.     


3     


명수는 16살이다. 어떤 ‘고뇌’가 그를 흡연의 세계로 이끌었을까. 그 무엇이든 명수에게는 너무 이르다. 한참 자라야 할 나이다. 담배가 갉아먹을 내면과 육체가 아직은 얕고 여리다.


담배를 피우는 10대들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은 확고부동해 보인다. 담배는 악의 근원이다. 흡연은 비행의 출발점이다. 흡연 학생은 건전한 학교 분위기와 친구 관계를 오염시키는 문제의 근원이다.


명수가 복도파에 묶여 도매금으로 ‘예의주시’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0대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문제아’로 대변되는 특별한 위치에 서고 싶어한다! 허세, 과대망상, 반항, 자립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어른이 보기에 그들을 ‘위태로운’ 지점에 서게 만든다. 그때 흡연 경력이 주요 스펙의 하나처럼 작용한다. 그들에게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어른 됨’의 중요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10대 시절의 중대한 인생 목표가 ‘나-되기’라고 생각한다. 도덕 교과서 유의 고상한 표현을 빌려 말하면 ‘자아 찾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등의 질문이 간단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모두가 가슴에 ‘질풍노도(Sturm und Drang)’를 불러오는 질문들이다. 궁리하면 궁리할수록 답은커녕 괴로움과 혼돈이 쌓인다. 고뇌가 켜켜이 쌓인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어른들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그들은 너무 소심하고 겁이 많다. 별것도 없으면서 ‘꼰대리즘’에 빠져 산다. 반항심이 생긴다.


그래서 이른바 ‘중2병’과 같은 10대 청소년 담론은 시대와 역사를 불문하고 두루 유행하는 당대의 현상이 된다. 가령 미국에는 ‘2학년 병(Sophomoric illness)’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주로 고교 2학년이나 대학 2학년 때 겪는 ‘성장통’을 가리킨다.


이진아 브랜드유리더십센터 소장의 책 <중2병 엄마는 불안하고 아이는 억울하다>를 보니 ‘2학년 병’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온다. ‘sophomoric’이란 말에는 원래 ‘아는 체하는’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세상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어린애들을 비속어적인 의미로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쓴다.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2학년 병’이 ‘중2병’의 근원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목에 힘 잔뜩 주며 잘난 체하는 10대들이 많다. 담배를 피우는 명수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허세와 같은 삿된 생각만 명수 머리를 채우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명수의 내면에 어떤 ‘고뇌’ 같은 것들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부모 불화, 경제 문제 등 10대들이 감당하기 힘든 난제들이 10대들을 힘들게 하는 세상이다. 명수처럼 입에 담배를 꼬나문 10대들의 가슴에 이런 것들에 대한 나름의 판단과 감정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명수에게서, 어린 시절 터무니 없는 과대망상에 빠진 나를 떠올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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