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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13. 2016

‘착한’ 아이들의 역습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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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말이 있다. 교사와 학생 간 관계를 말해주는 핵심적인 열쇳말 중 하나다. 교사는 ‘착한’ 아이를 좋아한다. 어떤 아이가 착한가. 교사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는 아이, 교사가 내리는 지시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아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성격과 태도와 심리의 최상위에 이 말이 있다. 착하면 모든 것을 용서한다!


착한 아이들은 교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잘 안다. 교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내세우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합당하거나 의미가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다. 착한 아이들은 교사들의 그런 바람을 잘 안다. 착한 행동을 통해 교사들의 적당한 관심과 배려를 얻어낼 수 있다. 교사와 학생 간 관계가 왜곡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착한 아이’가 되었을까.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일까.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은 일단 제쳐 두자.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들으면 칭찬을 받는다. 의젓하고 대견하다며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


‘착한 행동-칭찬-사랑과 관심’으로 이어지는 순환 사이클이 아이를 착한 사람 시스템에 매어 놓는다. 아이는 점점 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제어하기 힘든 일을 스스로 조절하며 참아내고, 죄책감과 양심의 통제 아래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눌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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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행동의 결과 아이는 ‘모범생’이나 ‘성실한 학생’처럼 평가받을 수 있겠다. 문제는 착한 아이들의 인생 행로가 ‘해피 엔딩’만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는 자아실현 심리학의 창시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주창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착한 사람들은 지나친 겸손과 조심성,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기회의 순간에 뒤로 물러서게 된다.[최광현(2014), <가족의 발견>, 부키, 26쪽 참조]


착한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의지나 실천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어떤 사회심리학적 기제가 작동하는 것일까. 2013년 이그 노벨상 수상자인 로랑 베그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 사회심리학 교수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서 소개한 일련의 실험 연구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첫 번째 실험은 방송 프로듀서 크리스토프 닉이 이끌었다. 그의 팀은 스탠리 밀그램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의 유명한 실험인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미디어에 대한 복종이라는 주제로 재해석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13000명의 조사대상자 중 선발된 참가자들에게 40유로의 사례금을 주고 <익스트림 존>이라는 가상 게임쇼에 ‘조작수’로 참여시켰다. 미디어가 타인에 대한 학대를 유도하는 ‘권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밀그램의 전기충격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모방했다. 전기충격은 ‘가벼운 충격(20볼트)’부터 ‘XXX(460볼트)’까지 7단계로 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이 망설이면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주세요.”, “계속하셔야 합니다. 게임 규칙이 그렇습니다”와 같은 권위적인 지시가 내려졌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상황(진행자가, 80볼트 충격이 나왔을 때 참가자들에게 게임을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물러나는 상황. 마지막 상황에서는 28퍼센트만 최고 단계인 460볼트 스위치를 눌렀다고 함.)을 제외하면 참가자들의 70퍼센트 이상이 이 가학적 게임을 끝까지 수행했다. 미디어의 권위와 방청객들의 존재가 맞물려 상황적인 압박을 가할 때에 참가자의 3분의 2 이상은 피해자가 울면서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거나 완전히 실신해서 아무 반응이 없는데도 치명적인 (가짜) 전기충격을 가했던 것이다. - 로랑 베그(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말하는가>, 부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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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의 가상 게임쇼가 끝나고 8개월이 지난 뒤 베그 교수가 새로운 실험을 고안했다. 성격이 권위에 대한 복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0분간 여론 조사에 참여하면 20유로를 주겠다고 하면서 <익스트림 존> 참가자 90퍼센트와 접촉했다. 참가자들은 가짜 쇼와 8개월의 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관련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베그 교수팀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5대 성격 유형검사를 바탕으로 참가자들의 성격을 파악했다. 참가자의 3분의 1은 배우자를 통해서도 성격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참가자가 양심적일수록 피해자에게 가한 전기충격 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예컨대 가장 양심적이지 않다고 하는 3분의 1이 가한 전기충격은 평균 460볼트였다. 상냥한 사람들의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친절하고 사근사근하다는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기꺼이 전기충격을 가했다고 한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이 공격성, 항정신성 약물 남용, 위험한 성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좋은 가장의 자질, 수혈이나 봉사에 적극적인 태도, 높은 학업수준과 야심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확인했다. - 로랑 베그(2013), 위의 책,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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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 잘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가족치료 전문가 최광현이 인용하는 가족치료사 머레이 보웬의 말을 들어보자. 착한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가짜 나(pseudo-self)’가 만들어지게 된다”.


부모가 제시하는 역할에만 맞추어 자아를 발달시키면 타인의 정서적 압력에 의해 쉽게 변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고 타인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갈등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착한 아이들의 소극성은 생존의 전제 조건인 ‘권력’ 문제와도 얽혀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권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아실현과 자기 성취를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최광현은 모든 인간은 권력을 추구한다고 지적했다. 단지 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인정받고, 자존감을 획득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서다.


착한 아이는 권력을 상실하고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최광현은 이런 사람들이 무기력에 빠지며, 동시에 수많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인용하는 독일 유태계 출신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은 착한 아이들의 ‘역습’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잘 보여준다.  

   

“폭력은 권력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무기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착함만을 강조하는 교사들이 많다. 착함뿐 아니라 ‘당당함’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사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말을 할 줄 아는 당당함(당돌함)이 있어야 용기 있고 주체성 있는 민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착하기만 한 아이들은, 성실한 자세로 부당한 권력과 압제에 순종하면서 맡은 바 일을 다 함으로써 공동체 전체를 폭력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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