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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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107센티미터, 몸무게 28킬로그램, 25세, 여성. 루시의 신상 명세다. 루시로 대표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은 지금으로부터 330만 년 전쯤 동아프리카 일대에 살았다. 그들은 두 발로 걷긴 했지만 여러모로 원숭이와 비슷했다. 키는 1미터가 조금 넘었다. 그런 왜소한 몸으로 약간 구부정하게 서서 길게 늘어진 팔을 흔들며 걸었다. 영락없이 ‘털 없는 원숭이’처럼 보였다. 실제 루시의 두개골은 인류보다는 침팬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다른 점도 있었다. 송곳니가 다른 유인원보다 눈에 띄게 작았다. 다리 뼈나 골반 뼈 등도 크기나 모양이나 몸통 부위와의 상대적인 비례 차원에서 사람과 더 많이 닮아 있었다. 루시는 자연스럽게 모든 현생 인류의 어머니로 평가받게 되었다.
유인원은 대개 아주 잠깐 동안 두 발을 이용할 뿐 거의 네 발을 이용해 이동한다. 루시는 두 발로 걸었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자유로워진 다른 나머지 두 개의 발, 곧 손을 이용하여 좀 더 정교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짐승의 살을 바르고, 뼈를 부숴 척수를 빼내 먹은 것은 모두 자유로워진 두 손 덕분이었다.
루시가 속해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은 고열량의 육식 식단을 통해 점차 덩치를 키워갔다. 뇌 용량이 점점 늘어났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우스(Australopithecus Africaus)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하여 동아프리카 일대에서 살았다. 이들의 두뇌 용량은 루시 종과 마찬가지로 400~500cc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두뇌의 크기는 언어의 출현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요인으로 간주된다. 루시는 아직 본격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언어 능력에 관한 한 루시는 오늘날의 침팬지나 보노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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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시대에서 약 100만 년 정도 흐른 250만 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출현했다. 이 시기 아프리카는 급격한 기후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날씨가 건조하고 서늘해지면서 열대우림이 줄어들고 있었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 넓은 초원 지대가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는 그곳에서 살아가던 인류의 여러 조상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로 다가왔다. 루시가 속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원인에게는 위기였다. 작은 키로 드넓은 평원에서 먹이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들보다 팔다리가 길어 현대 인류에 좀 더 가까웠던 호모 하빌리스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커진 키 덕분에 넓은 평원의 언덕바지에 서서 대형 육식 동물이 남긴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의 전성기는 약 150만 년 전쯤이었다. 이 시기 호모 하빌리스는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chipped stone implement)를 사용했을 정도로 손재주가 남달랐다. ‘호모 하빌리스’라는 이름이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돌망치와 같은 단순한 석기를 만들어 썼으며, 집터나 석기 저장소로 짐작되는 장소를 남기기도 했다.
호모 하빌리스는 불을 이용한 최초의 원시 인류였다. 불은 이들에게 사나운 짐승과 거센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져다 주었다. 그 전 루시 종족에 비해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한결 나아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두뇌 용량은 호모 하빌리스 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호모 하빌리스의 두뇌 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100cc 이상 늘어난 600~750cc에 달했다. 이들이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하게 된 데에 두뇌 용량의 증가가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호모 하빌리스에 속하는 조상 인류는 갈수록 두뇌 크기가 커졌다. 언어를 갖기 위한 기나긴 진화 과정을 본격적으로 맞이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두뇌 용량 덕분에 조상들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은 말이 출현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 중의 하나이다.
사고 활동은 두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호모 하빌리스 종에 이르러 좌뇌 측두엽 근방에 있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 커졌다. 브로카 영역은 인간의 언어 활동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말하기는 발음 기관을 움직여서 하는 ‘운동’과 같다. 그러한 말하기 능력을 관장하는 운동성 언어 중추가 브로카 영역에 있다.
숨통에 말소리를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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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하빌리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언어를 향한 진일보를 위해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징검다리를 거쳐야 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약 180만~190만 년 전 사이에 호모 하빌리스에서 갈라져 나온 종이었다. 이들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나 호모 사피엔스 등과 같은 후기 호미니드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인정받는다.
이들은 호모 하빌리스보다 더 발전한 석기를 사용했으며, 화덕을 만들어 활용할 정도로 도구 제작과 활용 능력이 탁월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언어 능력에 관한 한 이들이 호모 하빌리스보다 더 진화하고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발성과 관련된 신경 조직의 불완전함과 덜 진화한 발성 기관에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았다.
호모 하빌리스와 마찬가지로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흉부 영역의 뼈 속에 척수(脊髓)가 지나는 작은 통로 구멍이 있었다. 오늘날의 영장류 동물과 같고 인간보다 작은 크기였다. 그곳에는 숨을 내쉴 때 사용되는 근육을 제어하는 신경 조직이 지나간다. 그런데 구멍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아서 신경 조직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말을 하는 데 필수적인 날숨이 제대로 제어되지 못하게 되었다. 말소리가 숨통을 지나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말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힘들다. 브로카 영역이 이전 시기보다 좀 더 커져 있었다는 사실이 강력한 증거이다. 하지만 이들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명료한 음성을 내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신체 기관의 진화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루시로부터 호모 에르가스테르까지의 호미니드는 발음 기관을 활용한 언어 능력이 유인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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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180만 년에서 50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하여 살았던 호모 종이다. 일반적으로 계란형의 작은 머리, 튀어나온 이마와 눈썹 뼈, 직립 등으로 묘사된다. ‘호모 에렉투스’가 ‘직립하는 사람’을 뜻한다. 호모 하빌리스 종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데 중요하게 활용된 수단이었다.
인류의 신장은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크게 늘어났다. 호모 에렉투스 종의 하나인 북경 원인처럼 키가 150~160센티미터 사이로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케냐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 종의 소년 화석은 키가 165센티미터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오늘날 성인으로 치면 170~180센티미터 정도에 해당하는 신장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커진 키와 목 아래 부분의 형상 등으로 인해 호모 에렉투스의 전체적인 외양은 현생 인류와 흡사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원시 인류 중 최초로 정교한 대칭 모양의 손도끼를 만들어 썼다. 호모 하빌리스가 돌망치를 만들어 쓰기는 했으나 사냥용으로 쓰기에는 힘이 딸렸다. 상대적으로 날카로운 날이 있는 손도끼에 비해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만든 정교한 손도끼는 강력한 힘을 가져다 주었다. 매머드(Mammoth) 같은 초대형 포유 동물까지 잡을 수 있었다.
손도끼 사냥의 희생물이 된 대형 동물들은 호모 에렉투스에게 고열량의 단백질 식량으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풍성한 육식 덕분에 호모 에렉투스는 몸에 여분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고인류 연구자들은 이 시기에 크게 늘어난 인류의 두뇌 용량이 여분의 에너지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는 최소 800cc에서 최대 1,000cc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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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는 이주와 정착을 통해 자신들의 거주지를 확장시킨 최초의 호미니드였다. 이들이 최초로 출현한 아프리카를 벗어나 정착한 땅은 인도네시아의 자바와 중국 북경 등 유라시아 전체에 걸쳐 있었다. 일종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집단 이주의 밑바탕에 고도로 복잡한 사회 조직과 이를 위한 언어 사용 등이 깔려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월리스 선(Wallace Line)을 놓고 벌어진 논란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자.
월리스 선은 영국 박물학자 월리스(A. R. Wallace)가 제창한 것으로, 생물 분포에 따라 아시아 구와 오스트레일리아 구를 나누는 가상의 경계선이다. 지리적으로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과 롬보크 섬 사이에서 보르네오 섬과 술라웨시 섬 사이를 지난다. 동쪽은 아시아 구, 서쪽은 오스트레일리아 구에 해당한다. 오늘날 동물지리학계에서는 월리스 선을 한물 간 이론으로 취급하지만 주요 동물 집단의 분포는 이 선을 따라 명확하게 구별된다고 한다.
1997년 이전까지 고고인류학계는 호모 에렉투스가 월리스 선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정설처럼 받아들였다. 1997년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월리스 선을 넘어 롬보크 섬 동쪽에 있는 플로렌스 섬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것으로 보이는 석기와 사냥한 동물의 뼈 등이 무더기로 세상에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월리스 선을 넘은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이동한 공간이, 해수면이 가장 낮았던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너비가 17킬로미터나 되는 해협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 너비의 해협을 건너려면 적어도 나무 뗏목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그렇게 튼튼한 뗏목을 만들어 해협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조직적인 무리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호모 에렉투스가 언어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능이 부족해 월리스 선을 절대 넘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식의 편견 어린 관점은 1997년 이후 보기 좋게 사라졌다.
그 뒤 호모 에렉투스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 그들이 상당한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류 조상들이 약 9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 종에 이르러 발음이 비교적 분명한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한편에서는 호모 에렉투스가 각 개인을 구별하기 위해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을 토대로 복원한 얼굴 사진이다. 한국어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AA%A8_%EC%97%90%EB%A0%89%ED%88%AC%EC%8A%A4)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