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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16. 2016

“선생님, 착한 일 했으니까 점수 주세요”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9)

1


몇 년 전 3월 초였다. 반 아이 둘을 교무실로 불렀다. 2학년 전체에게 나눠 줄 학습지 인쇄물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혼자 하기에 조금 벅찬 양이라 아이들 도움을 받았다. 인쇄물을 정리하는데, 두 녀석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선생님, 일 도와드리는 거니까 상점 주시면 안 돼요?”
“상점 주셔야 해요. 점수 많은 걸로 주세요.”


순간 ‘무슨 상점?’ 하고 반문했다.


“상점, 벌점 할 때 상점 있잖아요. 모르세요?”
“아, 그 상점? 알지. 근데 선생님 기분 별로 안 좋은데? 너희 혹시 선생님 일 억지로 돕는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근데 상점 많이 받아 놓으면 좋아요.”
“왜?”
“상점을 많이 받아 놔야 나중에 벌점을 깎을 수 있잖아요.”


2


상・벌점제는 ‘그린마일리지(green mileage)’로도 불린다. 지난 2010년경부터 교육부가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제도다. 각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학교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실효성 문제로 운영 폐지를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전라북도에서는 올해부터 학교 자율에 따라 운영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계속 운영 중이다.


상·벌점제는 온라인시스템으로 관리, 운영된다. 교사가 인터넷을 통해 그린마일리지 시스템에 접속한 뒤 상점이나 벌점에 해당하는 항목을 선택해 입력하면 자동으로 점수화하는 방식이다. 담임 교사는 원할 때마다 개인별・학급별 상・벌점 누계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은 상․벌점 누계 점수에 따라 일정한 조치를 받는다. 우리 학교의 경우, 벌점이 20점을 초과하면 해당 벌점을 보호자에게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30점을 초과하면 학부모 소환, 40점을 넘으면 교내봉사활동과 교외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상점이야 많이 받으면 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벌점은 다르다. 받은 점수 크기에 따라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는 조치들을 받아야 한다. 벌점을 과다하게 받은 자식 때문에 학교로 소환되는 부모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자식이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도 착잡한 마음을 피하기 힘들다.


3


상·벌점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사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상점이나 벌점을 줄 수 있는지 기준을 잡기가 어렵다. 상점과 벌점이 그때그때 교사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임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우리 학교에서는 인사 예절이나 고운 말 사용, 용의 복장 등에서 다른 학생의 ‘귀감’이 되면 해당 학생에게 상점을 줄 수 있다. 의문이다. 아이들이 평소 어느 정도로 인사를 잘 해야 선생님으로부터 ‘귀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떤 게 고운 말 쓰기에 해당하는지 교사가 어떻게 판단할까.


그래서일까. 상·벌점 부과 주체인 교사들이 상·벌점을 임의적으로 활용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통제 수단으로 상·벌점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선생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밉보인 아이들을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벌점’ 카드를 쓸 때가 있다. 아이들이 그런 교사를 좋게 봐 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과 교사 간 정상적인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상·벌점제는 교육적으로 온당한 제도가 아니다. 단순하게 말해 보자. 상․벌점제는 학생이라면,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언행에 점수를 주는 제도다.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교육적으로 정당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학교 아이들은 수시로 상점과 벌점을 들먹인다. 뜬금없이 깍듯이 인사를 해 놓고 상점을 달라고 한다. 다른 친구가 휴대전화를 몰래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그 사실을 교사에게 냉큼 일러 바친다. ‘고발’한 자신에게 상점을 주고, ‘죄’를 저지른 친구에게 벌점을 주라고 다그친다. 복도에서 심하게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학교폭력을 신고했으니 상점을 달라고 한다.


그런 아이들 절반은 장난으로 그런다.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다. 마땅히 하면 좋을 이른바 착한 일에 상점을 요구하는 ‘괴물’ 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상점 목록 중에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학생으로서 금해진 행동을 하는 친구를 신고하는 학생에게 부과하는 3점짜리 항목이 있다. 준법 신고 활동에 포함되어 있는 항목이다. 점수가 매개하는 준법 신고를 통해 아이들이 제대로 된 준법 정신을 기를 수 있을까.


4


수년 전 학년 초였다. 첫 자치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반장과 부반장을 교무실로 불러 학급 회의를 제대로 이끌어 보라고 주문했다. 학급 규칙 같은 것을 정해 우리만의 제대로 된 학급 자치를 이뤄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였다. 모두 흔쾌히 응했다.


아이들은 회의를 진지하게 진행했다. 나는 중간에 교무실로 빠져 나왔다. 시간이 끝날 즈음 반장과 부반장이 왔다. 이런저런 회의 결과를 알려 주었다. 학급 규칙도 정해 왔다. 회의록을 살펴보니 ‘벌금제’가 중심이었다. 무단 지각 벌금 500원, 야간 자율학습 무단 결과 벌금 1000원 식이었다.


벌금제라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용돈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500원이나 1000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잘만 하면 많은 담임 교사들의 ‘꿈’인 무지각, 무조퇴, 무결석의 한 해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벌금제 운영의 결과는 기대와 딴판으로 나왔다. 지각하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에 무단으로 빠지는 아이들 꾸준히 생겨났다. 다른 반과 비교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벌금제를 운영하는 학급이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였다.


미나(가명)는 그 해를 함께 보낸 잊지 못할 아이다. 전 학년 담임 말에 따르면 평소 수시로 지각하고 결석하는 아이였다. 학년 초 미나는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았다. 묵은 습관 때문이었을까. 지각하는 날이 점점 잦아졌다. 이틀이나 삼 일을 계속해 학교에 늦게 올 때도 있었다.


“미나야, 요새 무슨 일 있는 있는 거야?”


그날도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미나에게 물었다.


“아니요. 벌금 내면 되잖아요.”


미나가 난데없이 내게 던진 차가운 한 마디였다. 그뒤부터 벌금제와 같은 규칙은 내 ‘교육 사전’에서 지워졌다.


5


교육 사전에서 벌금제를 삭제한 것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부모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것을 가장 짜증스러워하고, 그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빚는다. 이스라엘 대도시 하이파에서 6개 어린이집 원장들이 이런 보육교사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부모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올 때마다 소정의 벌금을 물게 한 것이다.


놀랍게도 부모들이 늦게 오는 빈도가 2배까지 늘었다. 돈만 지불하면 늦게 데리러 가도 되는 ‘권리’를 마음껏 활용했다. 부모들은 아이를 일찍 데리러 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돈을 주고 시간을 더 살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고 한다. 물질적 처벌이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점수, 돈, 초콜릿, 그밖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보답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교와 교사가 많다. 그들에게 동기 부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가 독립적으로 실시된 130종의 연구를 종합해 내린 결론을 말해주고 싶다. 사탕과자에서 소액의 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질적 보상은 진정한 동기부여를 망친다![로랑 베그(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부키, 122쪽 참조.]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에 따르면 외적 동기 때문에 내적 동기가 소멸되는 현상은 실험을 통해 두루 입증되었다. 아이들이 원래 좋아하던 활동에 보상을 주었다. 그 후 보상을 중단하자 활동에 대한 아이들의 자발적 선호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베그는 보상이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 못하며 인간의 행동방식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지도 못한다고 입증하는 증거가 수없이 많다고 단언했다. 도덕적 행동을 포함해 일부 행동방식을 고양하기 위해 보상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행동 그 자체에 느끼는 매력과 즐거움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보상과 처벌이 즉각적인 복종과 순응을 가져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은 도덕 교육의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베그는 개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는가를 강조하는 부모(교사)의 훈육 방식이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련된 도덕규범을 아이들이 내면화하게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도덕 규범을 존중하게 하는 원동력은 구체적 보상에 대한 기대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성취 그 자체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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