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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16. 2016

아기는 ‘사물’, 언어 배워야 ‘사람’ 된다?

언어의 생성 단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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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 필립 리버만이 두뇌 발달과 함께 최초의 언어가 출현하는 데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본 것이 또 있었다. 발음 기관의 진화가 그것이다.


원숭이나 침패지 같은 유인원들이 내는 소리는 획일적이다. 소리가 단조롭다. 인간은 다르다.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리버만은 이런 차이가 진화 과정에서 달라진 두 종의 상이한 발성 기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2


생물학에는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다. 한 마리의 개구리는 알에서 올챙이를 거쳐 성체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개체 발생’이다. 개구리 종은 난생 동물에서 파충류를 거쳐 척추 동물 계통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지나왔다. ‘계통 발생’이다. 개구리 알이 성체가 되는 과정은 개구리 종이 난생 동물에서 척추 동물 계통으로 진화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상 인류는 현생 인류와 다른 점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현생 인류로 진화하기 전까지 후두(喉頭)가 목구멍 위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후두에는 허파에서 올라온 공기가 통과하는 성문(聲門)이 있다. 허파에서 올라온 공기는 성문 양 옆에 있는 성대(聲帶)의 도움을 받아 소리로 만들어져 목구멍을 빠져 나간다. 후두와 성문, 성대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180만 년~19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미니드 호모 하빌리스까지는 후두와 그 바로 아랫부분의 성문, 성대가 목구멍과 가까운 위쪽에 있었다. 이 때문에 소리가 빠져나오는 구강(입 속 공간)과 기관이 만들어내는 소릿길의 모양이 일자형이 되었다. 그 결과 허파에서 올라온 공기가 일자형 관에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빠져 나가 버림으로써 소리가 단조로워졌다.


반면 현생 인류의 소릿길은 기역자 모양이다. 목구멍 가까이 있던 후두가 깊은 곳으로 하강하면서 성문을 중심으로 두 개의 공명관(共鳴管)이 휘어져 있는 듯한 모습을 갖고 있다. 이 덕분에 성문과 성대가 목구멍보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폐에서 올라오는 공기를 다양한 소리로 변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원속 동물에서 진화해 왔다. 그 과정에서 소리를 내는 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후두, 곧 성문이나 성대가 목구멍보다 아래쪽으로 하강하게 되었다. 성문 하강의 결과 후두 위쪽의 상기도(上氣道)와 아래쪽의 하기도(下氣道) 크기가 거의 같아졌다. 인간의 아기도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화’한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학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3


갓난아기의 입속을 보자. 갓난아기는 정상적인 성인이 아니라 원속 동물의 소리 통로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태어난다. 성인은 후두가 비강(鼻腔; 코 쪽으로 난 통로)이나 목구멍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다. 성문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를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구조다. 사춘기 소년들이 변성기에 이르러 새롭게 바리톤의 음색을 내는 것도 후두의 깊은 하강과 관련된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목구멍 깊은 곳에 있는 후두에서 뻗어 나온 혀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혀는 그 위치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구강과 인강의 상대적인 크기가 바뀌게 된다. 구강과 인강을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에 비유했을 때, 혀를 통해 그 파이프의 길이가 달라지게 되는 것과 같다. 혀를 위아래나 앞뒤로 움직이고, 오므리거나 길게 늘이며, 넓히거나 안으로 마는 과정 속에서 말소리가 서로 다르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갓난아기는 후두와 비강이 곧장 연결되어 있다. 혀가 입속에 평평히 누워 있어 그다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폐에서 나온 공기가 코로 곧장 빠져나가 버린다. 아기들이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주로 날카롭게 빽빽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유다.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모두 비슷하게 들리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아기들은 생후 3개월이 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후두가 목구멍 아래쪽으로 깊이 내려간다. 혀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 그 결과 성인의 말소리에 가까운 다양한 소리를 점점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침팬지나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에게서는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갓난아기가 ‘진정한’(?) 인간이 되기(스와힐리어는 동아프리카 일대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아프리카의 대표 언어이다. 이 언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물’을 뜻하는 ‘ki-tu’로 부르다가 말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을 뜻하는 ‘m-tu’로 부른다. ‘ki-tu’와 ‘m-tu’는 언어가 ‘인간 됨’의 중요한 조건임을 말해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위해서는 최소 3개월이 필요한 셈이다.      

  

4


후두 하강이 언어 출현의 전제 조건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리버만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 덕분이었다. 최근 들어 후두 하강이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동물들이 소리를 내는 과정과 방법을 연구하는 미국 학자 터컴서 피치(Tecumseh Fitch)의 주장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사람을 제외한 동물들은 후두가 고정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피치는 동물들의 후두가 예상 밖으로 잘 움직이는 구조라고 보았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와 염소와 돼지와 원숭이 등이 후두를 하강시켜 소리를 내는 동물들이다. 이들은 영구적으로 후두가 하강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사자나 코알라 등 여러 종이 영구적인 하강 후두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을 포함한 여러 동물의 후두 하강이 언어와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후두 하강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피치는 동물들이 자신의 몸집을 과장되게 알리려는 원시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후두 하강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후두 하강과 언어 출현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관련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피치에 따르면 초기 호미니드의 후두는 개나 염소와 마찬가지로 가동적(可動的)이었다고 한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우리 조상 인류는 필요할 때마다 후두의 위치를 바꿔 소리를 내는 것보다 후두를 하강 위치에 그대로 둔 채 소리를 내는 것이 더 효율적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후두의 하강을 언어를 위한 진화적인 적응 과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5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 년 전까지 살았다.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최초의 조상 인류는 이후 20여 종의 호미니드를 배출한다. 현생 인류는 이들 20여 종의 호미니드 중 하나인 호모 사피엔스 종의 후손이다. 오늘날의 침팬지와 보노보 등은 인류의 출현과는 다른 계통을 밟아 500만 년 전쯤에 출현한 종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후손들이다.


500만~600만 년 전에는 인류 계통의 최초 조상들과 침팬지, 보노보 등의 공통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 언어진화학자들은 이들이 모두 초보적인 사고 활동을 했다고 보고 있다. 사고 활동은 언어 출현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침팬지나 보노보가 언어를 발명하는 쪽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언어를 갖게 된 종은 인류 계통의 최초 조상들의 피를 이어받은 현생 인류뿐이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유인원들은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을 알지 못했다. 그 차이는 언제, 어떻게 비롯되었을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필립 리버만의 책 <언어의 탄생> 표지 사진이다. 다음(Daum) '책'(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3908558)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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