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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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는 30만 년 전에서 23만 년 전 사이에 나타난 인간 종이다. 이 종은 ‘네안데르탈인’으로도 불리는데, ‘네안데르 계곡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부 고고학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에서 함께 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사촌뻘 조상으로 본다.
이들은 주로 유럽 전역과 서부 아시아 일대에 퍼져 살았다. 사냥은 강력한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보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서로 힘을 합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좀 더 후대에는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돌창으로 코뿔소와 같은 거대한 포유류를 사냥할 수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종의 전체 수가 30만 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대개 30여 명씩 무리를 지어 살았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무리 안에서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기도 했다.
인류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최후 생존자가 지구에서 사라진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2만 8천 년 전쯤으로 짐작한다. 학자들은 그때까지 이들이 과거의 어떤 호모 종보다 정교하고 발달한 문화를 이루었다고 본다. 이런 주장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종이 좀 더 진화한 형태의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함축한다. 실제로 그들은 정교한 도구를 만들었고, 무리를 지어 체계적인 사회 생활을 꾸려 나가는 등 발전된 사회상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것과 비슷한 말이 초보적이나마 마련돼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근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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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 가설도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설골(舌骨, ‘목뿔뼈’로도 불림)은 아래턱 뼈와 후두 연골 사이에 있는 혀뿌리에 붙어 있으면서 후두를 지탱하는 뼈를 가리킨다. 그런데 약 6만 년 전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종에서 현생 인류의 설골과 일치하는 부위가 발견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들이 후기의 호모 사피엔스처럼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살았던 시기를 진정한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말하는 인간)의 출현기로 볼 수 있다.
뉴질랜드 학자인 스티븐 로저 피셔(Steven Roger Fischer)의 주장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40만 년 전에서 30만 년 전 사이에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유럽에 나타나면서 거의 완전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장이 만들어진 최초의 시기를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던 100만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보았다. 기후 변동에 따른 먹을거리와 주거지의 변화로 인해 두뇌 용량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인류의 두뇌는 호모 하빌리스를 뒤이은 호모 에르가스테르에 이르러 그 용량이 900cc를 넘긴 후 호모 에렉투스 시기에 1000cc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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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짧게는 20만 년 전에서 길게는 50만 년 전쯤 지구에 최초로 출현했다. 그 뒤 말을 하는 데 필요한 완벽한 신체 구조를 갖춘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으로부터 약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와 동일한 현대적인 호모 사피엔스 종은 12만 년 전쯤에 나타났다. 높고 평평한 이마, 거의 보이지 않는 눈썹 뼈, 약간 돌출된 턱뼈 같은 현생 인류의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남부 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에서만 발견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턴 케이프(Eastern Cape) 주의 클라시스(Klasies) 강 동굴에서는 12만~6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동굴의 주인들은 창으로 거대한 버팔로를 잡아 먹었다. 크레용 같은 물건을 사용해 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미술과 음악을 즐기고 장례 의식을 치르기까지 했다. 오늘날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를 만한 삶의 방식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4만~3만 5천 년 전 사이에 이르러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을 대체하면서 인류 문화를 크게 발달시켰다. 이 시기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의 뼈, 상아, 돌, 나무 들에 자신들의 모습, 동물, 기하학적인 상징 기호 들을 새겨 넣어 공예품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상징의 삶’은 1만 5천 년 전쯤 라스코 동굴의 벽에 거대한 들소 그림이 그려지던 구석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으로 발달하였다.
오늘날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활동과 입으로 말하는 언어 체계는 바로 이들 호모 사피엔스가 완성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3만 5천 년 전쯤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쓰기 시작한 말들은 그들의 까마득한 조상인 루시나 호모 에렉투스의 말들과는 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루시나 호모 에렉투스의 말은 명료하지 않은 단순한 소리나 신호음에 가까웠다. 앞서 말한 침팬지의 팬트후트나 고릴라의 경고 소리에 가까웠다.
호모 사피엔스의 말은 늘어난 두뇌 용량과 완벽한 발성 체계에 힘입어 체계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언어의 발달은 사회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그러한 복잡한 사회 구조에 발맞추기 위해 더욱 커져 갔다. 언어 발달이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이끌고, 변화한 사회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 과정을 거치면서 두뇌 용량이 커지는 순환 시스템이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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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는 1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아주 짧은 발화를 시작한 이래 수십만 년을 거치며 서서히 발달했다. 두뇌 용량의 증가와 발성 기관의 발달이 중요한 배경 조건이었다. 두뇌 용량은 현생 인류에 가장 가까운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 최대 1400cc로 커졌다. 700만 년 전 원시 유인원에서 막 갈라져 나온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는 동안 우리 조상 인류의 두뇌는 최대 세 배 이상 커졌다.
인간은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보다 두뇌 용량이 두세 배 정도 더 크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용량의 증가가 지구상의 다른 생물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진화의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큰 뇌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인간의 뇌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털 없는 원숭이(=인간)’의 식생활과 ‘대뇌비율지수(Encephalization Quotient; EQ)’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를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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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원숭이’의 최초 주자 중 하나인 루시는 나무 열매나 껍질을 먹었다. 가끔 동물을 사냥했으나 덩치가 작았다. 여섯 살 짜리 아이와 비슷한 1미터 정도의 작은 키로 큰 동물을 사냥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두뇌 용량도 크지 않아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약간의 몸짓을 사용하였고, 웅얼거림이나 비명이나 한숨 소리 정도밖에 낼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육식을 한 주인공은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르가스테르였다. 육식 중심의 식단이 초식 식단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여분으로 저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여분의 에너지가 머리로 보내지면서 두뇌 용량이 크게 늘어났다고 본다. 호모 하빌리스 시대 이후 널리 사용된 불 또한 호모 에렉투스 시대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두뇌 용량 증가에 큰 힘을 보탠다. 두뇌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백질은 날고기보다 익힌 고기를 통해 더 쉽게 섭취할 수 있다.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육식을 하게 된 데에는 기후 변화 탓이 크다고 한다. 고인류학자들이 원시 인류의 고향으로 보는 아프리카는 250만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메말라갔다. 숲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넓은 초원이 늘어갔다. 나무 열매나 뿌리 같은 것을 먹으며 채식 위주 식단을 유지하던 조상 인류들에게 달갑지 않은 변화였다. 나무 열매, 껍질, 뿌리는 풀밭보다 숲에서 더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먹이를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숲은 인류의 먼 친척인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가 지배하고 있었다. 몸집이 오늘날 고릴라 크기의 25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작았지만 고릴라에 버금가는 큰 이빨로 나무 껍질이나 식물 뿌리를 왕성하게 먹어치웠다. 그것들은 우리 조상 인류의 먹을거리이기도 했다.
당시 조상 인류는 치아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먹이 구하기 경쟁에서 숲속의 지배자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조상 인류는 새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의외의 해결책이 나타났다. 빠르고 힘 센 동물이 사냥해서 먹다 남긴 고기를 구해 먹는 방법이었다. 인간의 본격적인 육식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면이 컸다.
육식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두뇌 용적이 크게 늘었다. 덩치도 커졌다. 호모 하빌리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원시 조상 인류의 키는 1미터 전후로 아주 작았다. 호모 에렉투스 시기에 이르면 170센티미터를 넘는 훤칠한 키를 갖는다. 150만 년 전쯤에는 기름진 고기 음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혈관의 기름기를 제거하는 아포 지방 단백질 유전자를 보유하게 된다. 조상 인류는 커진 뇌로 좀 더 복잡하게 사고하고 ‘말다운 말’을 구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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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크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큰 뇌=복잡하고 많은 생각=높은 지능, 작은 뇌=단순하고 적은 생각=낮은 지능’의 등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해석부터 보자. 지구에 사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큰 뇌를 가진 동물은 고래다. 최대 1.5kg을 넘지 않는 사람 뇌에 비해 여섯 배나 더 많은 9kg의 무게를 자랑한다. 거꾸로 꿀벌과 같은 곤충은 뇌가 핀 머리 정도 크기이고 무게가 1mg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고래는 ‘어리석게도’ 어지간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면 다 아는 수학의 분수식을 알지 못한다. 꿀벌은 그토록 작은 뇌를 가지고 있으나 ‘영리한’ 8자 춤을 춰 동료들에게 꿀에 관한 갖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뇌의 ‘절대적인’ 크기가 지능에 결정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뇌의 크기가 지능을 좌우한다면 세상에서 머리가 가장 똑똑한 ‘만물의 영장’ 자리는 고래가 차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세기적인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뇌는 보통 남자들보다 크지 않았다고 한다. 뇌의 크기가 반드시 인간의 지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뇌의 크기가 지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다.
극적인 사례가 있다.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Flores) 섬에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종 화석이 발견되었다. 키가 1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는 ‘난쟁이’ 인류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던 2만 5천 년 전쯤에 생존한 이들은 뇌 크기가 침팬지와 비슷한 400cc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들은 정교한 화살촉과 돌칼을 만들어 쓸 줄 알았다. 뇌 용량이 1400cc에 이른 호모 사피엔스의 도구 제작 기술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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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연구자들은 ‘뇌가 크다’는 것을 ‘상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들은 지능과 뇌 크기 사이에 성립하는 단순한 대응 관계에 의문을 표시한다.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 ‘대뇌비율지수(Encephalization Quotient)’, 곧 ‘이큐(EQ)’였다. 이큐는 신체 크기(체중)를 기준으로 한 뇌 무게의 상대적인 비율을 수치화한 것으로, 동물들의 지능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때 쓰인다.
이큐를 이용해 대뇌 비율을 측정하면 인간은 지수가 7.44점으로 동물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고래류는 1~5점 사이에 두루 걸쳐 있는데, 청백돌고래가 4.2로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 일부에서는 기나긴 진화의 여정에서 인간이 가장 높은 이큐를 가지게 된 것이 길어봐야 200만 년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옛날에 사람이 아닌 의외의 생물 종이 만물의 영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이큐가 특별히 높은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평균적으로 모든 영장류의 이큐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적어도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진화학자들은 자연 선택의 결과를 활용해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의 뇌가 커진 것이 우리가 자연 환경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와 다른 설명도 있다. 영장류의 뇌가 다른 종보다 특별히 더 커진 것이 아니라 단지 신체 크기가 조금씩 더디게 늘어나면서 이큐 수치가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실제 영장류와 다른 포유류의 신체와 뇌 성장률을 비교해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영장류의 뇌는 진화 역사가 비슷한 여타의 동물과 같은 궤적을 따라 발달한다. 반면 이들 영장류의 신체는 다른 동물보다 느리게 성장한다. 그 결과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면서 뇌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커졌다고 한다.
언어학자 스티븐 로저 피셔는 1만 4천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종이 이미 수천 개의 언어 집단으로 분화하여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어족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물론 그 전에 우리 조상 인류들은 완전한 언어를 갖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기나긴 길을 걸어왔다. 700만 년 전부터 500만 년 전 사이 원시 유인원에서 최초의 호미니드가 분리되어 나온 이래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된 여정이었다.
조상 인류는 몸짓이 가미된 원시적인 경고 신호와 불분명한 웅얼거림을 내는 단계를 거쳤다. 그 뒤 뇌가 점점 커지고 후두가 목 깊은 속으로 내려앉는 진화 과정이 이어졌다. 척수가 지나는 뼈 속의 통로가 숨을 제어하기 충분할 정도로 넓어지면서 소리를 만들어내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말’로 불릴 수 있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경향신문>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72006155&code=960205)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