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Sep 21. 2016

이승만 정권은 왜 학생들을 일요일에 등교시켰나

교육의 정치 중립성 담론에 대하여

1


학교는 ‘정치적’인 공간이다. 교육은 ‘정치’ 자체다. 정치가 거세된 학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허구의 공간이다. 정치 중립성으로 포장된 교육은 위선적이고 비열한 허구일 뿐이다. 정치 중립성 담론은 정치적 중립주의자들이 동원하는 교묘한 책략의 하나에 불과하다. 교육과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법률 조항들을 통해 이들 문제를 살펴보자.


교육과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조항은 헌법 제31조 제4항에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이다. 흔히 ‘교원의 정치 중립 의무’과 관련한 헌법적 근거처럼 제시된다.


그런데 이 조항은 구문의  마지막에 있는 서술어 ‘보장된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의무’가 아니라 ‘권리’ 조항에 해당한다. 의무 관련 조항이었다면 ‘의무를 진다’, ‘의무를 갖는다’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2


이 조항의 탄생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일요일에도 학생들을 등교시켰다고 한다. 경쟁자인 장면 부통령 후보의 유세에 교사와 학생이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에서였다.[김정훈(2014), <교사, 허수아비와 무뇌아 교육>,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제65호), ㈜ 르몽드코리아.] 교사와 공무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정권의 앞잡이가 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헌법 제27조 제2항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교사나 공무원이 정권의 시녀로 농락당하는 등의 폐악들을 헌법 차원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 것으로 보았다.[한상희(2011),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헌법적 검토>, 2011년 8월 8일 참여연대 국회 공청회 자료, 22~23쪽. 정치적 중립성 관련 조항들의 역사적 변천상과 관련한 내용은 이 글에서 빌려왔다.]


정치적 중립은 교사와 공무원 집단이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뜻했다. 헌법의 정치 중립 조항은 교사와 공무원들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거나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일을 ‘헌법적’ 차원에서 막아줌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헌법 제7조 제2항의 권리 조항이 하위의 <국가공무원법>이나 <선거법>에서 ‘금지 조항’으로 둔갑해버렸다. 애초 공무원의 정치 활동과 관련한 조항은 “공무원은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며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1949.8.12.), “공무원은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며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1961.9.18.) 등으로 선언적 수준, 또는 공무원의 품위나 직무상의 책임 수준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정권이 들어선 뒤인 1963년 개정 이후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공무원의 모든 정치활동을 불법화하고 형사벌적 책임을 부과하는 강행규정으로 바뀌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자체를 법률 형식을 통해 박탈해버린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이런 규정을 빌미로 공무원의 탈정치화나 정치 영역에서의 국민 배제라는 권위주의적 국가체제를 고착시켜 나간 것으로 해석했다.


3


교육공무원인 교사들에 대한 정치활동 금지와 관련하여 <국가공무원법>이 두고 있는 강행규정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것은 교사들이 자신들의 지위나 권한을 이용해 특정 정당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굳이 해석하자면 직무상의 의무이지 신분상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우리 정부와 사법부는 이를 신분상 의무로 해석해 일체의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는 <헌법> 제20조(“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교육기본법> 제6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는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2(“공무원은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등에 따라 교사들에게 종교 중립성이 요구되지만 사적 영역에서의 개인적인 종교 활동에 대해서는 폭넓게 허용되는 것과 배치된다. 교사 개인의 종교 활동이 직무인 교육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넓게 허용되는 것처럼 정치 활동의 자유 역시 개인적 차원에서 금지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김행수(2011), <교사 입장에서 본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2011년 8월 8일 참여연대 국회 공청회 자료, 47~48쪽.]


4


형평성 문제도 있다. 고위 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있지만 하위직 공무원은 안 된다. <정당법>과 <선거법>에서는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고 하면서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 교원은 제외”한다는 예외 조항을 삽입해 형평성 시비의 단서를 마련해 놓았다. 교사와 교수에게 정치적 ‘능력’이나 ‘감각’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정영태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정리한 내용[정영태(2011),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활동 금지: 외국 사례와 헌법 재판소 논리 비판>, 2011년 8월 8일 참여연대 국회 공청회 자료, 12~13쪽.]을 토대로 이 문제를 짚어보자.


교육은 본질상 이상적이고 비권력적인 특성을 가지므로 현실적이고 권력적인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있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의 주요 논리다. 교육감 선거를 포함해 교육현장 자체가 정당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인문학이나 사회학 분야의 교육은 과목 성격상 내용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에서 문제가 있다.  


초중등생은 미숙하지만 대학생은 성숙하며, 교사는 단순 교육 기능을 수행하나 교수 등 대학교원은 교육과 연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므로 이들 사이에 정치적 자유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 있다. 초중등생과 대학생의 속성 차이를 과장하면서 차이를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가령 초중등생에게 비판적 사고능력이 부족한 것은 청소년이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런 능력을 배우고 훈련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교사가 정치적 자유를 가지면 학생들에게 특정 지식이나 가치관을 주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 또한 현실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희박하다.


10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 현실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들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투표는커녕 정치 자체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정치 냉소주의자 어른들보다 낫다.


교사와 교수의 직무상 차이(단순 교육 기능 대 교육과 연구 기능 병행)에 관한 주장 역시 뜯어볼 점들이 많다. 교수들이 다루는 연구주제나 방법은 그 선택 과정이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연구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교사들이 초중고에서 실시하는 교육 또한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목적과 관련되므로 정치적 성격을 띤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활동이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떤가. 교사의 정치활동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 여부는 경험적 문제이지 사전에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습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복무규정과 학생・학부모의 항의 등을 통해 규제할 수 있다.


5


한상희 교수는 그 위헌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직업관료(공무원)와 전문직(교원)에 대해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들을 대통령-총리-장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층제 조직에 의한 관료적・행정적 통제구조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통치권력을 절대화하는 유효한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조치는 권위주의 체제의 성립과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한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여론집단이 되는 공무원과 교원들의 입과 귀를 막아 버림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나 이해관계들이 유효하게 정치화되는 길을 협애화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의견・이해관계들이 행정과정을 통해 국가영역으로 포섭되는 것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항용 나타나기 마련인 소위 탈정치화 및 정치배제의 경향들이나 관료주의의 모습들(특히 관료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은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 한상희(2011),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헌법적 검토>, 2011년 8월 8일 참여연대 국회 공청회 자료, 35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제헌 헌법 전문이 실린 관보 1호(1948년 9월 1일 발행) 사진이다. 한국어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C%A0%9C%ED%97%8C_%ED%97%8C%EB%B2%95)에서 가져왔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먼지’처럼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