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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21. 2016

세상에서 가장 짧은 여행, 소릿길 17센티미터

말소리의 생성 과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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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릿길을 따라가자. 1차 관문인 성문을 지난 여정은 ‘인두(咽頭, pharynx)’와 그 위쪽에 있는 ‘목젖(uvula)’으로 이어진다. 인두 부위에서는 두 갈래로 나뉘어진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허파에서 기관을 타고 성문과 후두를 따라 올라온 공기 덩어리는 인두와 목젖의 영향을 받는다. 공기 덩어리는 이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따라 두 갈래 길로 나뉘어 빠져 나간다. 각각 입과 코로 향하는 길이다.


인두와 목젖은 서로 어떻게 작용할까. 인두는 소리 통로인 ‘구강(口腔, oral cavity: 입쪽으로 난 통로)’과 ‘비강(鼻腔, nasal cavity : 코로 난 통로)’, 후두 사이에 붙어 있는 깔때기 모양의 근육성 기관을 말한다. 목젖이 인두의 벽에 가 닿으면 코로 가는 통로가 막혀 말소리가 입으로 통과한다. 목젖이 아래로 축 늘어져 있으면 코로 나가는 소릿길이 트이면서 숨이 코로만 빠져 나간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 ‘대부분’은 입으로 나간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구강음(口腔音)’이라는 식으로 따로 이름을 붙여 쓰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코로 나가는 소리는 몇몇 소리에 국한된다. 이들 소리에 ‘비강음(鼻腔音, nasal)’이니 ‘비음’이니 하는 말을 붙여 다른 소리들과 구별하는 까닭이다. 한국어에서는 ‘ㄴ, ㅁ, ㅇ’이 비강음에 속한다.


2


비강음을 간단히 살펴보았으니 여정을 입안 공간(구강)으로 잡아 보자. 여기서도 두 가지 코스를 고를 수 있다. 목젖에서 입천장을 타고 나가는 일종의 포물선 코스와 입안 아래쪽에 붙어 있으면서 앞으로 평평하게 뻗어 나가는 일자 코스가 그것이다. 이렇게 나누기는 했으나 실제 발성 과정에서는 두 코스에 있는 부위와 기관들이 따로 놀지 않고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포물선 코스는 목젖에서 시작하여 앞쪽의 윗잇몸까지 둥그렇게 이어지는 입천장 부분에 걸쳐 있다. 이 둥그런 부위의 앞뒤를 혀끝으로 훑어 보자. 뒤쪽은 연하고 부드럽지만 앞쪽은 상당히 굳고 딱딱하다. 뒤쪽을 ‘연구개(軟口蓋, soft palate)’나 ‘여린입천장’으로, 앞쪽을 ‘경구개(硬口蓋, hard palate)’나 ‘센입천장’으로 부른다. 연구개 안쪽 끝 가운데에는 부드러운 목젖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이 목젖 부위까지를 포함해 연구개로 보기도 한다.


입천장에 박쥐처럼 매달린 채 연구개와 경구개를 타고 앞으로 나오면 한자어로 ‘치조(齒槽, alveolar ridge)’라고 부르는 ‘잇몸’이 있다. 잇몸은 이가 박혀 있는 위아래의 뼈를 가리킨다. 잇몸에는 윗잇몸과 아랫잇몸이 있다. 이 중에서 말소리를 내는 데 쓰이는 잇몸은 윗잇몸이다. 잇몸을 중심으로 나는 소리를 ‘치조음’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ㄷ, ㅌ, ㄸ, ㄴ, ㄹ’이 있다.


잇몸에 붙은 이와 외부 점막인 입술(입술은 우리 신체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와 있는 점막을 포함한다.)도 소리를 내는 데 중요한 부위들이다. 아래윗니 중에서는 윗니가 말소리를 내는 데 동원된다. 마지막으로 두 입술 사이를 빠져 나오는 소리는 당신 앞에 있는 친구나 동료 귀로 들어가면서 하나의 말이 된다. 평범한 성인의 경우 성대를 출발점으로 해서 입술 끝에 이르기까지 소리가 거쳐 오는 거리가 대략 17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길고 평평한 혀를 따라 이루어지는 ‘일자 코스’에는 몇 개의 경유지가 있다. 혀의 제일 뒷부분에서 인두와 마주하고 있는 ‘설근(舌根, root)’이 첫 번째 장소다. 설근을 지나면 연구개와 마주 보고 있는 ‘설배(舌背, back)’와 경구개와 마주 닿는 ‘설면(舌面, front)’을 지난다. 마지막 도착지는 ‘설단(舌端, blade)’으로, 혀의 끝을 포함한 앞부분이다. 


말소리는 이곳 설단을 지난 후 위아랫니와 두 입술 사이를 거쳐 바깥 세계로 빠져 나간다. 언어는 ‘혀의 선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혀가 말소리를 내는 데 큰 구실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혀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사람이 다양한 말소리를 내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혀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tongue’은 그 자체로 ‘말’을 가리키기도 한다.      


3


우리가 거쳐 온 여정을 정리해 보면 크게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나뉜다. 맨 처음은 말소리에 필요한 공기 덩어리를 허파에서 기관으로 올려 보내는 ‘기동(起動, initiation)’ 단계다. 다음으로 공기가 후두 부위의 성문을 통과하면서 성대가 진동을 일으키는 ‘발성(發聲, phonation)’ 단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성문을 통과한 기류가 여러 발음 기관의 도움으로 다양한 말소리로 만들어지는 ‘조음(調音, articulaion)’ 단계를 거친다.


말소리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이 밖에도 인체의 많은 부위가 동원된다. 어떤 연구자들은 100여 개 이상의 부위가 쓰인다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실질적인 조음 단계에서는 아랫입술이나 혀와 같은 ‘조음체(調音體, articulator)’와 입천장(연구개, 경구개), 윗니, 윗잇몸, 윗입술 등의 ‘조음점(조음점, point of articulation)’ 정도가 활발하게 참여한다. 조음체는 말소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발음 기관을, 조음점은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고 조음체가 가 닿는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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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는 발음 기관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 이가 거의 없어 호물거리듯 말하는 할머니의 말에서는 치음인 ‘ㄷ, ㄸ, ㅌ, ㅅ, ㅆ, ㄴ, ㄹ’ 따위가 불안하게 난다. 보통 사람보다 혀가 짧은 사람이 혀짜래기 말을 하는 것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세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은 ‘ㅍ, ㅌ, ㅋ’ 같은 거센소리를 온전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거센소리는 성문 아래에서 강하게 압축된 공기가 마찰 소음처럼 방출될 때 나는 소리다. 그런데 이 시기 아이들은 성문 주위에 있는 후두와 성대의 기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공기 압축과 방출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언어(문법) 능력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것처럼 발음 능력 또한 일정한 순서와 시기를 따라 서서히 발달한다. 가령 두 돌 무렵에는 ‘ㅂ, ㅃ, ㄷ, ㄸ, ㄱ, ㄲ, ㅁ, ㄴ’ 등을, 세 살 즈음에는 ‘ㅍ, ㅌ, ㅋ, ㅎ’를, 그리고 네 살쯤 되면 ‘ㅈ, ㅉ, ㅊ’를 발음할 수 있게 된다. 치음 계열에 속하면서 혀끝과 윗잇몸 사이의 공기 흐름이 마찰을 일으킬 때 나는 ‘ㅅ, ㅆ’나 받침으로 쓰이는 말들은 모두 만 5세가 되어야 자연스럽게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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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발음에 문제가 있어서 교정 필요성을 고려하고 있다면 원인을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선천적인 발음 기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발음 기관의 오용이나 기타 후천적인 요인 때문인지 구별하여 대처해 나가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할 경우에도 발음 기관의 특성이나 발음의 발달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세 살짜리 아이가 ‘과자’ 대신에 ‘가자’나 ‘까까’로 말한다고 해서 다급하게 언어 치료 센터에 갈 필요까지는 없다.


아기들은 수많은 뒤집기와 배밀이를 거쳐 두 다리로 선다. 말 또한 수 없이 많은 옹알이와 중얼거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힌다. 아기들에게 인위적으로 말을 가르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말을 잘 못한다고 지나치게 다그치거나 나무랄 필요가 없다. 


어떤 아기라도 정상적인 언어 환경에서 살게 된다면 6천 종을 훌쩍 넘는 지구상의 어떤 언어라도 거뜬히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아기들은 말소리를 지각하는 감각이나 능력이 탁월하다. 아기들은 다른 소음보다 사람이 내는 말소리를 더 좋아한다!


보통 사람은 말소리 외의 소리를 1초당 최대 15개밖에 듣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상의 소리는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소음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말을 이해할 때에는 초당 20~30개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배워 나가는 아기들은 타고난 언어 기술자이자 말하기의 달인인 셈이다. 이들 어린 달인들은 말을 어떻게 배울까. 아이들은 예외 없이 모두 말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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