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문 Oct 09. 2015

삶, 불확실성

불확실성은 삶의 기본 속성

1993년 6월말에 나는 제대했다.

여름이 시작되던 때, 강원도에 있는 육군 예비사단을 전역했다. 대대장의 끈질긴 말뚝박기 권유에도 불구하고. 군대체질이라는 소리도 싫지는 않았지만, 제대했다.

대대ATT(Army Training Test). 대대 ATT는 통상 대대급 전시임무수행절차를 평가하는 훈련으로 실제 병력들이 출동하여 전시에 하는 행동을 몸으로써 체득하고 수행하는 훈련이다. 사단에서 평가관이 함께한다.

1992년 여름이 끝나가던  대대ATT 4일차. 전시 상황이 발생하고 국지전을 벌이다가 전투태세로 집결지로 이동, 방어작전을 수행하였고, 이어 역전의 기세로 공격으로 전환하는 날의 전야였다.

공격개시시간 8시간전. 경계근무를 확인하고 부대전체에 개인정비와 취침을 전파한 후 대대본부 막사로 돌아왔다.

참모판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간 어떤 작전을 펼지 구상하는 자리.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감안하여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작전을 수립하는 것이 참모판단의 핵심이다.


그러나 비올 확률 20%로 날씨는 맑아야 했고 안개 없이 시야는 뚜렷해야 했으며 공격목표에는 적 1개중대가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체크리스트를 손에 든 평가관이 입회한 참모판단. 인사가 인력상황과 전투력을 보고했고, 군수가 보급과 화력상황을 보고했다. 작전장교 보고가 이어졌다. 모든 상황들은 예행연습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날씨만 빼고.


비올확율 60%. 애매하다. “정보, 보고드리겠습니다. 적상황은…”으로 시작하여 “공격간 비올 확률은 60%로 예상됩니다. 이상입니다.” 단숨에 읊었다. 대대장이 물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거야?” 귀를 의심했다. “비올 확률은 60%로 예.상.됩.니.다.” 예상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으며 반복해서 보고했다.


“야! 정보장교. 그래서 비가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제길. 에라 모르겠다. “예. 비, 오지 않습니다.” 이어 작전장교의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작전계획이 보고되었다.

비가 오질 않기를 그때처럼 간절히 빌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제발, 비야 비야 오지마라!!!’ 강가에 묻은 엄마의 무덤을 걱정하며 비가 오질 않기를 바라는 청개구리의 심정으로.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결국 대대장의 강력한 장기복무 권유를 귓등으로 흘려 듣게 만든 사건이 되었다. 대대장의 그 돌발적인 질문이 아직도 들린다. 예상시나리오 대로, 계획대로 비는 오지 않아야 했고 다행히 오진 않았지만, 그 사람 바램을 뒤로하고 나는 말뚝을 박지 않았다.

제대 후 몇 년이 흘러 강원도 어느 부대로 가게 된 ‘동원예비군훈련’에서 그 대대장을 만났다. 그도 예비군으로 와 있었다. 그간 사정은 묻지 않았다. 그가 사준 닭백숙은 질겼다. 토종닭 이라고 했지만 질겨도 너무 질겼다.  

삶은 시나리오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기본 속성이다. 불확성에 따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마주하는 것. 그것이 삶을 대하는 바른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어떻게 맞서느냐가 그 사람의 ‘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정된 시나리오는 우리의 상상과 생각과 문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매년 연말에 세우는 내년 ‘사업계획서’, 그대로 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더라.


영화 '최종병기 활''도입부의 다급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활을 쥐어 주며 한 대사가 나는 좋다.


두려우냐? 나도 두렵다. 허나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작가의 이전글 가을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