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

by 이기문

남한산성을 보았다. 삶과 죽음이 실리와 명분과 공존하며 대결했다.

하나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새해에 명에게 예를 올리는 장면. 이 장면에서 나는 조선을 대변하는 하나의 힘을 보았다. 급박한 순간에도 기록하는 사초의 힘과 함께.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조선을 세우고 500년을 이어오는 힘이 되지만 또한 이것이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예를 찾는 것을 신흥 강자 청의 칸은 가벼이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피해갈 수도 있었던 전쟁을 끌어들인 것도 (조선의) 명분이고, 완전한 파국을 피해가게 한 것도 결국 (청의) 명분이었을 터.

청에 비해 작고 무력하지만 축적된 문화의 힘은 결국 청의 최고 권력자로 하여금 스스로 기다리는 인내를 가지게 한 것은 아닐까. 힘으로 순간을 복속해도 시간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래도 실익 없는 명분은 이유 없다. 국민 위에 있는 국가가 이유 없듯이.


<명분, 이유 있고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