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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Oct 16. 2015

어떤 미국인

나의 약점이 그의 강점

거래하는 미국업체가 있다. 이 업체는 반도체 중고장비를 사서 작동가능 상태로 만든 다음, 이를 되파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 하는 용어로 ‘리펍’하는 회사다. 신제품도 만들어서 파는데 신통치 않다. 나도 그것을 업의 한 아이템으로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장비를 주로 이 업체를 통해서 하기로 협의가 되어있고 실제로 실행하여 5억대 프로젝트를 함께 한 바 있다.  


이 업체와 거래하면서 경험한 사실은 사소한데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미국업체답지 않다. 사장이 구 소련체제에 있던 동유럽국가 출신의 이민1세대로 돈에 환장한 것 같다. 사사건건 돈돈 하는 것이다.


고객이 장비를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해서 장비가 동작을 멈추면 이에 대한 해결을 주안점으로 일을 처리하고 비용이 크지 않다면 사후에 정산하는 게 반도체장비업계의 미덕이다. 장비다운(멈춤)은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돈이 해결되지 않으면 움직이질 않는다. 따라서 한국에서 내가 일단 먼저 지불을 하고 서비스를 진행하곤 했다. 나중에 고객으로부터 받을 때도, 그냥 안고 갈 때도 있다. 참을 만 했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벌이진 일로 나는 완전히 마음이 돌아섰다. 완전 싸가지 없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보통 반도체 장비를 ‘리펍’하려면 수없이 많은 부품과 장치가 필요하다. 중고든 새것이든 납기가 중요하여 가능한 중고부품을 사용할 경우가 많다. 하여 해체하고 버리는 장비에서 필요한 부품을 적출하여 사용 가능한 상태로 만든 다음 보유하는 것이 상례이다. 나도 일부 그렇게 하여 창고에 두고 있다.


거래하는 한국 고객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왔다. 부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보유창고에 없다. 미국업체에 연락했다. 다행히도 해당 부품을 중고로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부품이 맞는지 사진과 이메일로 몇일 오갔고 해당 부품이 맞다는 회신을 받았다.     


고객은 고마워하며 발주를 했고, 나도 바로 미국 업체에 발주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발주서를 보내고 다음날 메일을 받았다. 혹시 자기가 하는 프로젝트에 하는 곳에 사용할지도 몰라서 팔아도 좋은지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대응하다가 보면 미처 그것까지 생각이 미칠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정하며, 팔지 말지를 결정해 달라고 했는데 답장이 없었다. 전화를 했다. 받지를 않았다. 그렇게 주말이 흘러가 버렸다.


미국회사가 출근하는 월요일을 기다려 한국시간으로 월요일 밤에 전화했다. 받지 않아 음성메세지 남겼다. 팔겠다 – 탱큐, 안팔겠다 – 안타깝지만 오케이. 그러니 결정해서 연락을 주라고.    


메일로 답장이 1시간후에 왔다. 당장 급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서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급하게 필요하면 가격을 다시 매기고 싶다고 했다. 영업 오래했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나쁜넘. 그래도 급하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총 가격이 얼마인지 다시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하루가 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보내온 견적서를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새것의 2배 가격이 적혀 있었고 그것도 미리 돈을 보내주면 선적하겠다는 것이다. 첫 거래도 아니고 수억 원대 거래를 해왔는데 2백만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니 화가 불끈 쏟았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익을 더 누리겠다는 것이다.  


급하게 다른 미국업체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와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 업체에서 조금 전 연락이 왔다. 도와주겠다고.  


물에 빠진 사람, 일단 건지는 게 세상 살아가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 오늘 새벽 안개가 내 마음 같다.


기존 업체에게 메일을 보냈다.


“견적 감사합니다. 검토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연락은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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