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 언제나 봄이다
내 베프는 키가 크다. 내 베프는 잡기에 능하다. 당구는 400. 포커는 타짜 수준. 골프는 싱글. 내 친구는 나 보다 못하는 게 없다. 근데, 딱 하나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결혼이다. 32살에 다른 친구들보다는 늦었지만 내 베프 보다는 빨랐다. 그래서 내 아들이 그의 아들보다 크다. ㅋㅋㅋ
오늘은 내 베프의 생일. 카톡으로 커피 선물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1992년 봄에 보내온 편지를 찾아 읽어 보았다. 옛날 타자기로 한 자 한 자 쳤을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 따뜻하다.
재은이 보아라!
먼저 너에게 어울릴듯한 시를 한 수 적는다.
행군.
하늘의 달빛 은은히 퍼져있고 발밑의 강물은 고고히 흐르는데
어깨 위 배낭은 가슴을 짓누르고 전투화 열기는 식을 줄 모르누나.
끝없는 행군은 골골이 이어지고 철모의 뒷 표시는 어둠을 밝히는데
흐르는 땀방울 가슴을 적시우고 구르는 돌멩이 발끝을 찌르누나.
흐르는 구름은 달빛을 가리우고 늘어진 배낭은 촉촉이 젖었는데
한줄기 바람은 산내음 실어오고 한 모금 담배연기 그 사람 오게 하네.
그동안 잘 있었느냐? 너를 못 본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었구나. 니가 있는 그곳의 생활이 어떤지 무척 궁금하구나. 물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있는 이곳 대성산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것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질 정도로 완연한 봄이로구나.
지금쯤 2년차들은 쌍봄을 즐기고, 1년차들이 누비고 다닐 캠퍼스가 무척이나 그립다. 우리가 한때 1년차 시절을 겪었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꿈만 같구나. 다시 캠퍼스 잔디밭에 앉자 술 한잔 할 날을 기다려본다.
나는 지금 81미리 소대장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군생활을 뜻있고 보람되게 보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참고적으로 내일 사단장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 받기는 싫지만 주겠다는 성의를 봐서 받기로 했다. 너무 내 자랑만 해서 미안하나 상복이 많은 걸 어쩌겠냐.
재은아! 나는 너를 믿는다. 항상 자신감에 차있는 너의 모습이 보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건강해라. 그리고 시간이 나면 서로 상면이나 한번 하자꾸나. 편지도 자주 하고 이만 줄인다. 멋진 소대장이 되어주길~~~
1992. 5. 14.
강원도 철원에서 병선이가...
<그는 나에게 언제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