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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Feb 26. 2021

친절

대항력

손님이 왔다. 나이는 내 나이 정도. 50 대란 얘기지. 울상을 한 얼굴로 아내 앞에 앉자마자 질문을 마구 던진다. 얼굴은 근래 잠을 잘 못 잤는지 핼쑥하기까지 하다.


요지는 이러하다. 친정어머니가 일산의 작은 아파트에 2015년부터 계속 전세를 살았는데 작년 초에 주인이 새로 바뀌었고 그 주인은 법인이었던 것. 그런데 작년 여름에 혹시나 하고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근저당 설정이 현재 매매가보다 많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되어 주인(법인 대표)에게 나가겠다고 했더란다. 주인은 선선히 알았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지난달부터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고. 덜컥 겁이 나서 전세금 날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아내는 나름 설명을 하는데 내가 옆에서 듣기로는 건성건성이다. 잠시 후 계약이 예정되어 있는 아내로서는 여유가 없는 것일 것. 안 되겠다. "손님, 이쪽으로 와 보세요."


얘기를 자세히 듣는다. 여기서 부동산 지식 한 가지. 전세를 들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어떤 채권이나 권리보다 내 전세금이 우선이어야 하는 것. 즉, 1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계약서가 정상이고 정당하다고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받고 잔금 주고 나서 입주하는 당일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이후의 권리들에 대해서 내 보증금은 대항력이란 것이 생긴다. 이게 무서운 것인데, 임대차 보호법에 의해 채권을 물권화하는 것이다.


손님의 질문은 이어진다. 만약 경매가 되면 제 돈은 다 돌려받을 수 있나요? 보통 시세보다 낮게 낙찰이 되던데 전세금보다 더 낮게 낙찰이 되면 어떻게 되나요?


흠흠. 대항력은 강력한 내 권리이니까 보증금보다 적게 보상을 받으면 다 받을 때까지 나가지 않고 살아도 되다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확정일자 전입일자 모두 다른 근저당 설정보다 우선순위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알려주었다. 이제야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안심을 한다.


이때 내 전화기가 올린다. 손님은 고맙다고 하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손님이 나가자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본다. 실데없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것. 내가 말한다.


"여보, 예수님도 부처님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둘러봐. 종교가 이익을 위한 기업이 되고 나의 불이익은 사회의 부정의가 되는 시대로 막 달려가잖아.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남모르는 타인에게 이익과 상관없이 베푸는 작은 친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후 전화가 왔고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아까 그 손님이다. 만약 전세보증금 빨리 돌려받으려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아내는 전화를 끊고 아는 경매전문가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그리고 그 손님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한 후, 나를 보고 말한다.


"좀 친절했나?ㅎㅎㅎ"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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