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눈물이 필요해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공부하면서. 공부가 쉬는 거지. 아내가 한마디 했다. 저것도 정상은 아니야. 물론 웃으며 말하니 기분이 하나도 나쁘진 않았다. 그래 좀 놀자, 안방으로 가니 아내가 TV를 틀어 놓았다.
마침 남자 프로 골프대회를 한다. 매치플레이 결승전. 아내가 좋아하는 문경준 선수를 이기고 올라간 박은신 선수가 이겼으면 한다고 했다. 아내의 말은 일단 옳다. 박은신 프로. 간간히 중계방송에서 힘 있게 강공으로 시크하게 스윙하는 그의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결승전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투어에 입문하여 13년째 우승이 없는 그다. 오늘은 우승할 수 있을까. 상대 선수도 11년째 우승이 없다. 경기가 워낙 박빙에 업치락 뒤치락이라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본다. 결국 결승전 마지막 홀, 우여곡절 끝에 박은신 선수가 승기를 잡았고 짧은 퍼트를 남겼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그를 시험하고 말았다. 살짝 비켜가고 말았던 것. 결국, 연장전.
연장 첫 번째 홀, 아슬아슬하다. 삶에서도 내가 의미를 두거나 나의 이해가 걸리면 무심할 수가 없다. 아직 깨달음에 도달한 것은 아니니까. ㅎㅎㅎ 평소 남아돌던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상대 김민준 선수의 세 번째 어프로치 샷이 감기면서 벙크 턱에 걸렸는데 수리지라 좋은 라이로 구제를 받았다. 어프로치샷. 조금 길었다. 그래도 온그린. 원펏이 만만치 않은 거리다. 그런데 그걸 넣어버린다. 파세이브.
이제 박은신 선수 차례. 세 번째 샷을 잘했지만 조금 길었다. 그래도 버디 펏은 충분한 거리. 그러나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비켜간다.
연장 두 번째 홀, 두 선수 모두 계속 우드로 티샷을 했다. 김선수는 오른쪽으로 살짝 밀렸고 오른쪽 언덕에 맞아 굴러서 러프에 다행히 떨어졌다. 박선수는 페어웨이 중앙. 그리고 둘 다 두 번째 샷은 잘해서 페어웨이 오른쪽, 그린으로부터 100미터 안쪽 좋은 곳에 떨어졌다. 두 선수 공의 차이는 2미터. 먼저 김선수가 쳤는데 아차. 공이 그린에 떨어졌지만 핀에서 상당히 멀리 갔다. 이를 본 박선수, 그림같이 1미터에 붙인다.
그린에서 김선수는 만만치 않던 긴 거리를 투펏으로 마무리하며 파를 하고 기다린다. 이제 모든 사람의 시선은 박은신의 공으로 향한다. 1미터 남았다. 이 펏만 성공하면 우승이다. 그런데 이것을 놓치면 아아 생각하기 싫다. 투어 13년 차의 이 선수는 드디어 첫 우승을 할 것인가. 선수의 긴장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배가 살살 아픈 것 같고 머리도 조금 어지러운 것 같다. 감정이입이 너무 심한 탓이다.
박은신 선수. 어드레스의 시간이 길어진다. 좀체 없던 일. 숨이 막힐 것 같다. 딱. 공이 굴러간다. 마지막 홀로 들어가는 장면. 웁스. 방송에서 상대 선수의 캐디 모자로 홀이 살짝 가렸다. 땡그랑 소리가 살짝 들린다. 환청일까 하는 순간 와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행히 공은 홀에 들어갔고 우승을 했다. 공을 넣고 뒤로 물어 나며 모자를 벗으면서 드러난 그의 얼굴. 본인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인터뷰에서 한설희 아나운서가 물을 때 "1미터 퍼트가 10미터 같이 느껴졌다"라고 했다. 어머니가 달려 나와 안으며 "우리 아들 고생했다 고생했어"하는 말에 나도 그만 눈물이 눈에 맺힌다. 집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에게 "믿고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이 말에 결국 나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감동스러운 장면에는 눈물을 흘려주어야 한다. 남자도 슬프면 울고, 감동하면 울자. 슬픔의 눈물은 마음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감동의 눈물은 다이돌핀을 만들고, 엔돌핀의 수천 배로 우리 몸의 면역성을 팍팍 키운다고 하지 않는가. 울자.
<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