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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Dec 21. 2015

실수를 대하는 자세

주차장에서 벌어진 황당할 뻔 한 사건

010-7xxx-2xxx. 낯선 번호다. 12:54 , 12:54, 12:55. 3번이나 연이어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기를 외투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미팅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진동소리를 듣지 못했다. 벌써 시간이 18분이나 흘러있었다. 낯선 번호였지만 이동주차 요청 건이란 것을 직감했다.


2번을 돌며 빈 주차공간을 찾다가 약속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비어있는 지정 차 주차구역에 대고 미팅을 온 것이었다. 전화했다. 한참 신호가 간 후 받았다. 굵은 목소리에 화가 전해졌다. 무조건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바로 빼겠다고.


자기도 바쁘니 알아서 빼가라고 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당황했다. 대게는 화를 내고 이러면 어떡하냐고 하면서 일은 정리된다. 그러나 심상치 않았다. 차가 있는 곳을 갔다. 아뿔싸. 내 차 앞에 주차 브레이크를 한 그의 차가 가로막고 있었다. 내차 오른쪽에는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왼쪽에는 막혀 공간이 없었다. 꼼짝할 수가 없다.


다시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이런. 어쩐다. 일 단 좀 기다리자. 5분을 기다려 다시 전화했다. 한참 신호가 간 후 받았다. 아직 볼일이 남아 있어서 1시간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 전화가 끊어졌다.


지나 가시던 60대 후반의 노인이 다가왔다. 창문을 내렸다. 일순 사태 파악이 되셨는지 다가와서 말했다. 이 차주는 여기에 사는 사람인데 아마 집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창문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기가 오랫동안 보아 왔는데 성질이 보통이 아니며 ‘곤조’가 대단하다고 했다. 안 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생 깨나 하시겠네…”하고는 가던 길을 총총히 가버렸다. 단단히 잘 못 걸렸구나.


같이 간 직원이 경찰에 신고 하자고 했다. 그러면 일이 더 커지니 기다리자고 했다.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가능하시면 빨리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점심을 아직 먹지 않아 배는 고프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 때문에 초조했다. 그러나 기다렸다. 잠시 후 문자를 보낸 지 5분쯤 지났을까? 험상궂게 생긴 스포츠머리에 덩치 큰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직감했다. 차주구나.


얼른 내렸다. 다가가서 무조건 죄송하다고 외쳤다. 그는 곧장 자기 차에 오르더니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시동을 켰다. 표정에서 벌써 화는 풀려있었다. 시동을 건 후 그는 차를 몰고 그냥 가버렸다. 차로 돌아와 우리도 우리의 갈 길을 갔다. 18분 후에 전화했다가 15분 만에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갈 수 있었다.


대개 실수나 사건 그 자체보다 이를 바라보는 태도나 그 이후 수습과정에서 더 서로 감정이 상해 일이 커질 수 있다. 실수는 실수이며 이를 더 크게 만들어 감정 악화로 이어져 악연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끊어 번지지 않게.


실수, 인정하고 사과하고 풀고 갑시다. 우리는 서로 달라도 같이 잘 살아갈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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